일본유배사.日本 島流し物語

조선과 무역을 한 아베노 무네도

책향1 2012. 2. 3. 10:50

 

조선과 무역을 한 아베노 무네도



아베노 무네도(安倍宗任. あべのむねとう. ? ~1108)는 헤이안 시대 중기의 장군이다. 그를 말하자면 이 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젠구넨노에키(前九年の役)란 그의 아버지 형과 함께 일족이 미나모토 요리요시(源頼義.みなもと の よりよし)와 싸운 일이다.

11세기 중반부터 조공에 태만했던 아베 가의 태도를 고치려고 1051년 군을 동원하자 싸움이 시작되었다. 분전을 했지만 형과 일행은 최북단에 살해되었다. 그는 항복하여 미나모토 가에 연행되었다. 그 무렵 무이츠노구니(陸奥国. むつのくに. 현재의 이와데 현)를 기반으로 했던 그에게 관료들은 “오슈(奥州)의 에미시(蝦夷. 야마토 정권 하에서 이민족 시 되던 하층 집단)는 꽃 이름도 모를 것”이라고 모욕했다.

이외에 차별 대상으로 부라쿠민(部落民)이 있다. 부라쿠는 원래 집단 거주 지역 즉 마을을 의미했으나, 전근대 일본의 신분 제도 아래에서 최하층인 천민과 신분제 철폐 이후의 근현대 일본에서 여전히 터부시 되는 천민 집단의 후예로 차별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 사회의 특정 계층을 가리킨다. 아이누인,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류큐인이 일본 내의 대표적 소수 집단이다.

귀족이 매화꽃을 보이고 무엇인가 하고 조롱했는데, "일본 매화꽃을 보더라도 오미야비토(大宮人. 궁중에서 종사하는 사람)는 무엇이냐 라고 한다“고 노래로 대답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그는 시코쿠(四國)의 이요노구니(伊予国. 시코쿠의 북서지방에 위치. 현재의 에히메 현)으로 유배를 갔다.

현재의 이마바리(今治)시 도미다(富田) 지역에서 3년을 살았다. 그런 와중에도 조금씩 세력을 모으고 재기를 모색했다. 이것이 발각되어 1067년 큐슈(九州) 의 치쿠젠노구니(筑前国.ちくぜんのくに.현재의 후쿠오카 현 서부지역) 무나카다군(宗像郡)  치쿠젠 오시마(筑前大島)로 다시 유배되었다.

이곳의 다이묘였던 무나카다(宗像)에 의해 지리적 이점을 살린 조선, 중국과의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아베는 오시마(大島)의 경승지에 자신이 신봉하던 약사유리광여래를 모시기 위해 안아키라인(安昌院)을 건립했다. 이곳에서 1108년 77세를 일기로 숨졌다.

수상을 지낸 아베 신죠(安倍晉三) 등이 그의(살아남은 3남)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신죠의 아버지는 아베 신타로, 할아버지는 아베 칸(安倍寛. 중의원)으로 가업이 정치인 일본의 명문이다.

아베 칸의 처, 아베 신죠의 할머니는 오시마 시즈코(大島淨子)로 할아버지인 오시마 요시마사는 1850년생으로 육군 소위로 임관된 후 보병 제9 여단장으로 1894년 동학란에 일본군의 최초 파병 부대장으로 한국 땅에 와서 온갖 잔인한 짓을 다하고 곧이어 터진 청일전쟁에도 참전한 후 그 공으로 1895년 남작으로 귀족이 되었다.

 이토오 히로부미나 데라우치 총독 등과 마찬 가지로 하급무사 집안 출신으로  한국의 불행이 출세의 기회가 되었던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