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우노스케(佐佐木卯之助)의 기념비
사사키 우노스케(佐佐木卯之助. ささきうのすけ. 1795~1876) 는 에도江戸) 막부의 간부였다. 1824년 소슈(相州. 필자주: 사가미노구니(相模国)의 별칭) 포술 훈련장(炮術調練場)의 책임자였지만 1835년 평정소의 판결로 이즈노구니(伊豆国)의 아오가시마(青ヶ島)로의 엔도(遠島) 형에 처해졌다. 그 이유는 농민들이 출입이 금지된 훈련장 내에서 경작을 묵인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후에 땅 조사에서 확인되었다(사사키 사건).
이 사실로 인해 장남인 기쿠지로(菊次郎)와 함께 1836년 3월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1868년 12월 메이지 원년에 사면되었지만 1876년 유배지에서 결국 사망했다.
당시 그 지역에 “덴보(天保)의 대기근”이 발생했으므로 사사키의 배려에 지금도 농민들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탓으로 가나가와 현 치가시키(茅ヶ崎)시 지역 촌장 등의 주도로 추도비(아래 사진 참조)를 세우고 그를 기린다.
“덴보의 대기근(天保の大飢饉. てんぽうのだいききん)은 에도 시대 말기인 1833년부터 시작하여 1839년까지 일본 동북지방(현재의 후쿠시마, 이와데, 아오모리 현 등에서 지속된 홍수와 냉해로 인한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근을 말한다. 비록 그가 유배를 떠났지만 대기근에 농민들이 연명할 수 있도록 한 그의 배려를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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