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유배사.日本 島流し物語

구운몽과 호색일대남

책향1 2012. 2. 3. 10:24


구운몽과 호색일대남


 「구운몽」과 일본 중세소설「호색일대남」의 비교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는 설성경 유배문학관 명예관장의 지난해 12월 3일의 세미나에서 발표 내용 때문이다.

「호색일대남」은 에도시대의 소설작품으로 이 책을 중심으로 일본의 산문 문학이 분류 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친 소설이다. 근세 소설의 분류에서 1686년 간행된「호색일대남」(고쇼쿠 이치다이 오도코, 好色一代男)을 전후로, 그 이전의 근세 소설을 가나조시(假名草子), 그를 포함해 계통을 같이하는 소설을 우키요조시(浮世草子)로 구분하기도 한다.

 우키요조시의 의미는 속세, 그 시대를 묘사한 글 즉 그 당시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사이카쿠는 전대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금전, 성과 같은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서술하여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문학의 장을 열었다. 사이카쿠의 작품은 우키요조시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헤이안(平安)시대에서 쓰였던 품위 있는 어휘와 속어의 적절한 조탁과 활용으로 그 가치가 높다.

「호색일대남」은 제목부터 원색적인, 내용도 그대로이다. 여자는 좋아 하지만 자식이 없는 그야 말로 플레이 보이란 의미다. 이하라 사이가쿠 (井原西鶴, 1642~1693) 41세 때의 처녀작이다. 이외에도「이쿠타마만구(生玉萬句)」,「사이카쿠다이야수(西鶴大矢數)」,「고쇼쿠이치다이온나(好色一代女)」등이 있고 대부분 봉건사회에서 일탈로 보수적이었던 사회분위기를 일파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이 한 인물의 일대기적인 성격을 담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호색일대남」은 요노스케(世之介)라는 인물의 13세부터 60세까지의 삶을 담고 있고, 「구운몽」은 비록 꿈이긴 하지만 양소유라는 인물의 삶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하고 있다.

「호색일대남」는 주인공의 아버지인 유메스케(夢介)가 호색한이고 그를 거친 수많은 여성 중 한 명과의 사이에서 요노스케가 탄생한 순간부터 60세까지의 일생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 있는 반면, 「구운몽」에서는 양소유의 세계가 꿈이나 환몽이 아니고, 공사상을 깨닫기 위한 선의 구조로 보아 현실세계, 선의 세계, 다시 현실세계의 복귀로 이원적 구성이라 할 수 있지만 맨 처음의 현실세계는 또 현실세계와 꿈의 구조로 나눌 수 있다.

즉, 성진이 팔선녀와 만난 후 절로 돌아와 잊지 못해 육관대사의 벌을 받는 부분부터 꿈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의 환생부터 또 다른 꿈이 시작되는 삼중구조이다. 비슷한 주제지만 기술 방법만큼이나 구운몽이 훨씬 심오하다는 의미이다.

두 작품 모두 성리학이 유행하던 시대의 작품이지만 「구운몽」이 유교 가르침을 주요이념으로 내세운 반면 「호색일대남」의 경우는 사실적인 묘사의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다. 하지만 「구운몽」과 「호색일대남」모두 이상주의와 도교 사상이 강하게 표출되는 점이 동일하다. 「구운몽」이 환생을 통하여 주인공의 잠재적인 세속의 갈망을 그리고 있다면 「호색일대남」의 경우 직접적인 성적 쾌락으로 거침없는 생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60세에는 주인공 요노스케가 호색선(船)을 건조하여 수많은 물품들을 싣고 떠나면서 “배는 사랑의 바람이 부는 대로 밀려갔다” 라는 부분은 이상주의 세계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구운몽」은 유불선 사상으로 모두 해석이 가능하고 특히 환생이라는 설정부터 불교의 윤회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성진이 꿈을 통하여 자책을 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각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이르는 말 중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비록 산중에 있어도 도를 이루기 어렵고, 근본을 잊지 않으면 홍진에 가서도 돌아올 길이 있으니 네 만일 오고자 하면 내 손수 데려올 것이니 의심 말고 행하라" 라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사이가쿠는 오사카의 중산층 상인으로, 중년에 이 작품을 집필하였는데, 전통적인 하이카이(俳諧)의 단점 보완을 노린 것이 「호색일대남」의 집필동기이다. 당시 17세기 조선과 마찬가지로 유교 영향이 강한 시기였지만 ‘나’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부유한 상인이 누릴 수 있는 유희와 자유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호색일대남」과「구운몽」이 큰 차이점으로「호색일대남」의 요노스케가 온갖 주색을 밝히고 윤리도덕을 어기면서 인생을 낭비하여 자신을 궁핍하게 만든 것에는 욕망의 절제는 찾아보기 힘들다.「구운몽」에는 성진이 현실에서 세속을 갈구하다 꿈에서는 양소유가 되어 입신양명과 부귀공명을 누린 것을 육관대사라는 보조인물을 통해 욕망의 절제라는 큰 가르침을 얻게 된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성진이 함부로 굴어 도심(道心)이 바르지 못하니 마땅히 괴로운 세계에 있어 길이 앙화(殃禍)를 받을 것을 사부께서 한 꿈을 불러 일으켜 성진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후략>”와 “<전략> 정욕을 금치 못해 중한 책망을 입었는데, 사부께서 구제하심을 입어 한 꿈을 깨었으니, 원컨대 제자 되어 길이 같기를 바랍니다.”에서「구운몽」은 성진과 팔선녀가 꿈을 통하여 인간의 부귀영화는 한낱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 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불도에서 정진을 다짐한다. 이는 서포가 관직에 있다가 유배를 당하는 등 인생의 부귀영화라 함은 이미 헛된 것임을 이미 알고「구운몽」에서 가장 강조하고픈 주제다.

「호색일대남」에서 요노스케가 19세가 되던 해에 출가를 하지만 이는 불법으로 귀의라고 보기 어렵다. 마지막 60세에 “<전략>설령, 색정 밝힌 죄의 후유증으로 허덕이다 그곳 땅 에 해골이 되어 묻힌들 또 어떠리. 마누라도 자식도 없는 일대남으로 태어났으니 도무지 서러울 게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배에 몸을 실은 행위는 도교적 이상향을 찾는 모습이다.

일본 문화 저류에 흐르던 와비(侘び)와 사비(寂び)에서 일탈과 「구운몽」의 유교적 저변에서의 일탈 역시 시대를 초월한 작가정신의 발로이다. 서포가 유학자로서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철학적인 작품으로, 사이가쿠는 경험에 따른 인생무상을 말하는 점이 상이하다.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적인 소설”, “남성의 욕망을 한껏 표출한 흥미 본위의 소설”, “불교적인 깨달음을 통해 인생무상을 갈파한 사상소설” 로 전개 방법은 다르지만「구운몽」「호색일대남」은 당대 사회에 특정한 메시지를 던진 “이념 텍스트”임에는 틀림없다.


*2011년 1월 13일자 남해시대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