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컴퓨터 고치려다1

책향1 2010. 9. 3. 14:05

컴퓨터 고치려다1


60을 바라보는 사람이 이런 말을 쓰려니 좀 어색하다.

자주 사용하는 컴퓨터가 "버벅"된다. 그래서 방안에 굴러다니던 예전 노트북 용 운영체제를 깔았다. 다행스럽게 파란 화면에 코딱지만 한 그림들이 뜨기는 뜬다. 인터넷도 해보니 제대로 작동한다. 그것만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척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컴퓨터를 만진지 20여년이 지나도 뭐 제대로 아는 게 없는 "후루꾸"다.

우리 시절 사람들 대부분이 거의 마찬가지지만 배우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컴퓨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 컴퓨터를 다룰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직장이던 병원에서 수작업으로 2장의 먹지를 깔고 300여명의 의료보호환자 진료비 명세서를 볼펜으로 꾹 눌러 작성할 때 들어온 컴퓨터는 신기한 물건이었고 아름다운(?) 머슴이었다.

보험 작업을 하면 총진료비에다 수가에 맞춰 본인부담금과 청구액을 산출해야 하고 전부 합친 통계를 수작업으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는데 이 신기한 기계는 그것을 알아서 다 해줬다.

거기다 3장씩 떡가래 뽑듯이 척척 잘도 뽑아냈다. 알고 보니 프로그램이란 게 있어 맞춰주기만 하면 알아서 하는 말없는 머슴이었다.

어설픈 풍각쟁이 같은 필자의 컴퓨터 능력이 학원을 죽도록 다닌 딸년보다는 좋다는 느낌이다. 딸년만 그런 줄 알았더니 아는 형님 아들도 그렇다.

그들의 워드나 게임 속도는 광속이다. 그런데 에러가 생긴 컴퓨터를 고치라 하니 쉬운 백신치료도 제대로 못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낸 컴퓨터 학원비가 아깝다.

한글을 치라니 그 광속은 자랑하지만 쉬운 한자에도 가로막혀 고속도로 수원 서울간이다. 한자 교육이 안 되는 교육현장을 탓할 수만도 없다.

이 몸도 중학교 한 학기 1주에 한 시간으로 한자교육이 마감되었다. 그래도 초등 3학년 때부터 읽은 신문 한자 실력은 지금도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그 실례가 바로 군지 교정 작업과 고비문 해석 작업이었다.

하지만 최신 컴퓨터 용어는 도통 이해가 안 간다. 설명서를 읽어 보면 머리가 아프다. 깨알 같은 글에다 전문용어 자체를 이해 못하니 컴퓨터 기초를 다시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버벅되는 컴퓨터를 도저히 용서치 못하고 굴러다닌 CD로 해결이 다 되었나 했더니 오른 쪽에서 "정품인정이 **일 남았습니다"가 뜬다. 노트북용 CD였지만 복제품이 아니라서 안심했더니 역시 대기업에서 만든 것은 "다르구나" 라는 사실을 실감을 시켜줄 뿐이었다.

하는 수가 없어 제조회사에 전화하니 복구용을 보낸다고 한다. 거금 1만원으로 이틀 만에 온 CD 1번을 넣고 나서 2번을 넣으라는 명령에 2번 CD를 잡으니 뭔가 따라 나온다.

아뿔사 비닐 포장용지가 반들거리는 거울 같은 새CD에 찰싹 붙어 있다. 개봉하여 둔 비닐에 있는 접착제와 정분을 일으켰다. 

그대로 요행을 바라며 그냥 롬으로 직행 시켰으나 뭐를 읽을 수 없다나.

다시  더 큰 요행을 바라며 알코올을 가져다 접착제 성분을 30분 동안 닦아냈다. 이제 괜찮겠지 했더니 "이제도 읽을 수 없단다". 컴퓨터도 선풍기도 부숴버리는 욕정을 겨우 참았다. 1번 CD를 까는 사이 선풍기 바람에 날린 포장 비닐이 강한 흡인력의 CD와 찹쌀궁합을 선보인 탓이다. CD와 비닐 접착제 그게 그렇게 궁합이 잘 맞는지 몰랐다.

별 수 없이 다시 전화하니 거금 1만원은 은행 속으로 유유히 다시 들어갔다.

 

 

2010,09.03 14.05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