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의 어거지
국제문제 대기자께서 국내문제에 드디어 부엌칼을 내밀고 있다.
국가이익을 위한 원칙을 버리는 도덕적 용기가 전국적인 지지를 받기 위한 과정인지 의아하다. 대기자께서 너무 장황하게 설명을 하셨다. 그럼 이명박정권의 대국민 약속을 어긴 사실도 예문으로 장황하게 좀 나열하시는 것이 훨씬 공정하지 않을까. 나아가 이명박정권의 약속파기로 인한 폐해도 좀 적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건 겁이 나서 못하겠다면 대기자의 망발에 가까운 논리성으로 박 전대표의 포퓰리즘에 초점이 맞춰진 대기자의 글은 바로 친이세력들의 논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수차례 박 전대표의 세종시 발언은 진정성, 즉 정부의 신뢰를 말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이해한다. 그런데 메이저 신문의 대기자는 누구나 알만한 박 전대표의 발언을 “지역세력에 호소하는 표퓰리즘”에 대기자의 지식을 총동원했다.
그런 머리로 정권이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에 대해서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다. 아예 시도 조차 않는 것은 대통령 그림자만 봐도 500m 앞에서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형국이다.
일본을 두고 우리 정치인들은 일본왕의 존재를 부러워한다. 왕정제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통합이 일본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걸 말한다.
대기자께서는 이런 말도 아실 거다. 법을 어기고 정부에서 시키는 일을 하지 않고 거꾸로 하면 돈 번다는 말.
대기자가 박근혜 전대표의 용기를 요구했지만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에 도덕성을 걸 정도라면 대기자의 논리근거가 곡학아세의 논리로 사용되고 있어 배운 자의 도덕성에 결정적인 흠집이 있다. 아는 지식을 엉뚱한 논리에 사용하는 것은 공인인 대기자의 노릇이 아니다.
대기자도 자제분이 있을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원칙 신의도 없이 시류에 맞춰 잘 살아라 하시는가 아니면 원칙을 지키고 정도로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가.
대기자의 용기가 이런 국민들을 향해 적당히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엉터리 교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언론 자체의 도덕성에 의문이 간다. 쇠고기 파동에서 혼자 “(외국산)쇠고기 열심히 먹겠다”고 기염을 토하시더니 이제 너무 많이 드셔서 배탈이 났는가보다.
대기자께서 친이 일각의 마녀사냥식 활동에 스피커 역할을 자처하신다면 소생도 할 말이 없다. 입이 없다는 친이 세력들의 자평이고 보면 왜 국민들이 박전대표의 입만 바라볼까.
이건 대기자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실꺼다.
입에 발린 거짓으로 표를 얻으려 하지 않은 원칙론자의 도덕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추월불가능한 도덕성을 적당한 타협에 걸라는 대기자의 논조는 일종의 모욕이다. 대기자 역시 공인이므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고 일기로 그냥 저장해 두시라.
신동아 7월호에서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재’의 리더십을 나무라며 “독선”과 ”교만“으로 국민과 고립되는 결과로 말했다.
세종시 문제에도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은커녕 도리어 독선과 교만함을 나무라야 하는 것이 대기자의 자세다.
도리어 이명박 정권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경기표를 의식한 표퓰리즘을 까발려야 옳다. 이런 일도 않으면서 정당한 발언에 삐딱한 사시는 건강에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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