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정현태 남해군수, 마음의 여백을 울린 감성

책향1 2009. 10. 14. 14:59

정현태 남해군수, 마음의 여백을 울린 감성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인간이기에 더 애조 어린 감성으로 작용한다. 누구에게나 눈물은 있고 거친 감성이라도 있다.
가을에 접어든 온도차는 찜질방 냉온탕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로 들판 곡식이 영글어가니 저절로 고개 숙인다. 도로에는 칡넝쿨이 쏟아져 내리듯 길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너울너울 가을 햇살을 타고 있다. 계절의 시간이 초록에서 이미 짙은 홍엽으로 자리를 옮겨가 앉는 중이다.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수피아마을 쪽으로 내려다보니 미인 눈썹은 곱게 이어지면서 첩첩이 몇 겹의 산이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바다와 그 경계를 이루듯 어여쁜 눈썹을 보다 우거진 숲을 보는 아찔함, 숲의 깊이가 한달음에 달려오는 느낌이 위협적일 정도이니 순간 아찔하다. 바다 곁의 숲에 사는 무수한 생명들이 건강하다는 증거쯤으로 이해하면 되려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흙을 밟을 수도 없고 구경조차 힘든 일상공간에서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몽돌과 만나는 일은 생산적인 이미지로 원만함을 이루고 있다. 경외, 두렵지만 공포의 대상이 아니고 낯설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숲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간절하다는 건 몹시 부족한 결핍의 반증이라는 정도를 헤아리며 숲을 두루두루 눈여겨본다. 나무와 나무들, 그들이 어울린 공간, 그 빽빽한 밀도와 생명성이 신비하게 보이기도 하고 두렵게도 보인다. 녹색 숲이 짙어지고 짙어지면 희망의 숲이 되는 일을 수피아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두렵지만 아름다운 체험임에 분명하다.  
고불고불 논길 따라 벼 이삭도 발을 차는 곳 그 빛깔이 바다와 대조되는 눈썹이 경계를 나타내는 그 속에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짧은 시간의 미학. 감성적일 때 감성적이지 못하면 불행하다. 감성은 내면의 여유에서 생기는 본성이기에. 그 감성의 흐름을 눈물로 승화시킨 작지만 큰 예술의 힘은 지대하다.
바쁜 일상에서 눈물 흘릴 힘도 없다면 신산한 삶에 자극이라도 있음 좋겠다. 그 귀뚜라미 휴대폰 송신음같은 음정 맞출 때 그는 흐느꼈다. 거기에는 언어의 신묘한 조탁으로 윤동주가 있고 가슴에 품은 별을 헤는 정현태도 있었다. 모두가 눈물 한소쿰 걷어 내고 아무리 바다를 쳐다봐도 마음에 일렁이는 잔잔한 파도 밖에 없었다.
 대신 적막함을 덮은 홍엽과 늙은 나무와 우는 것처럼 들리는 갈매기 소리를 애향의 흔적으로 받아들이고 한참 그 풍경 소리와 낭송시에 귀 기울이는 걸로 가을을 가름했다.
등대불빛 은은하게 받아들이는 바다와 숲의 절묘한 조화는 시가 있으므로 가능했고 감성이 사람 마음을 움직인 탓이다.
몽돌이 들어난 물가는 원만함을 만들었고 그곳에서는 비린내는 한참 후에 확 느낄 수 있었다. 저 물들, 잠잠한 수면 아래에도 감성은 살아 있고 그 가운데 물고기들의 고향집도 있었다. 물결은 너무도 차분하게 옛 감성을 일깨우고도 그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피아 숲속을 이어 비어 있는 공간에서 마구 자란 풀들은 바람 따라 허리를 휘며 땅으로 눕고 있었다. 문화 공간을 마련하는 듯 감성을 빚어내는 공간으로 아마도 필요한 마음의 여유 공간이거나 그가 빛냈다. 어느 쪽에서부터 날아온 건지 새소리, 굵고 깊은 소리에 슬픔이 진하게 들렸고 별 소리 없이 날아드는 물새들의 날개짓도 한층 힘겹게 다가왔다. 별들도 조용히 마음에 앉았다.

 

 

2009.10.14 14:59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