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그녀"와 "생방송"

책향1 2009. 9. 30. 11:39

"그녀"와 "생방송"

 

맥주집에서 한 잔하다가 일본풍인 맥주집 장식이 화제가 되고 결국 ‘생방송’과 ‘생맥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필자는 단연 발군(?)의 일본어 실력으로 위 두말이 대뜸 일본어라 했다. 그런데 상대 왈 “일본어가 아니다” “그럼 생맥주를 (우리말로) 뭐라 표기하나?”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어는 아니나 일본에서 조어된 한자어이다. 편하게 일본어라 하지만 일본출신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국어와 일본어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도통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하기사 필자가 자주 일본말투를 지적하므로 이골이 났기 때문일지는 모른다.

참고로 포털 다음의 국어사전에는 생방송을 아래와 같이 설명해 두었다.

미리 녹음하거나 녹화한 것을 재생하지 아니하고, 프로그램의 제작과 방송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방송. ‘현장 방송’으로 순화.

 

생맥주에 대한 같은 사전의 설명은

살균하기 위해서 열처리를 하지 아니한, 양조한 그대로의 맥주. 열처리한 맥주보다 맛은 더 신선하나 맛이 오래 유지되지는 아니한다.

 

위 두 단어에 붙은 “생”자가 문제시 된다. 방송이나 맥주를 일본 조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논할 필요가 없다. 원래 언어는 잘못된 말이라도 오래 사용하거나 널리 사용되면 표준어도 되고 외래어로 정식 대접을 받는다. 그 대표적인 예는 ‘멍게“이다. 서울말 우렁쉥이보다 더 널리 사용되므로 결국 하나의 단어만 지정하던 표준말에서 두 단어 모두 표준어로 지정하게 되었다. 80년대 초반 방송에서 우렁쉥이에 관한 뉴스에서 그림을 안보고는 우렁쉥이가 뭔지를 어학에 관심이 높은 필자도 몰랐다. 멍게라 하면 금방 알아들었을 경우이다.

“그녀”라는 말을 예를 들어보자. 언필칭 물론 자체만으로는 우리말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말의 어원 등을 눈여겨보면 뭔가 생각할 겨를이 있다.

2009년 6월 11일자 서울신문 「우리말 여행」에 이 말에 대한 소개가 있다. “ ‘그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광복 이후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에 대한 거부감도 있어서 1965년 한 잡지에선 논쟁이 일기도 했다. 최현배, 이숭녕, 허웅 등 7명이 참여했다. 반대하는 쪽에선 일본말 ‘가노조(皮女)’를 흉내 낸 말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찬성 쪽에선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다고 했다. ‘그녀’는 글에서만 쓰인다”라고 했다.

기사의 내용대로 꼬집어 말한다면 말 그대로 문어체인 셈이다. 문어체, 보통 글에 쓰인다는 말이다. 그리고 영어를 번역하다보면 너무 자연스레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기사대로 광복 이후부터 사용되었다는 점은 영어의 보편화와 관련이 있다. 이 말에 왜색을 없애기 위해 옹호론자들은 영어 "She" 의 직역이라고 한다. 일본 국화가 벚꽃이지만 제주도 원산으로 말하며 약간의 위안을 얻는 격이다."그녀"는 1926년 8월에 발표된 양주동선생의 『신혼기』에 처음 보이고,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4년 이후이다. 

1958년 1월 31일자 잡지『 주간 희망 』에서 이섭 선생은 "3인칭 표기와 남녀,평등" 제하의 기사에서 "그녀"란 단어의 문제점을 이미 지적하고 있다.  김석호선생은 「'그녀'는 어불근리(語不近理)」로 배척할 것을 강조 하였으며 당시 최현배 선생은 발음이 그년과 비슷하므로  “그미”라는 말을 제안했고 김동리 선생은 “울녀” 사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여영택 선생은 새롭게 “그냐”를 말하기도 했지만 원래 우리말 ‘그네’가 가장 적합하다고 여긴다.

사실 일본어 가노죠(皮女) 역시 영어를 옮기다가 생긴 말이다. 그럼 “그녀”의 원산지는 어딘가? 당연 일본 쪽이다. 우리말에 적당한 말이 없어 일본에서 조어된 말을 그냥 받아쓰고 있는 격이다.

필자가 이 말을 일본산이라며 사용말자는 논리가 아니다. 이미 우리말 깊숙이 들어와서 자리 잡은 경우이고 역시 적당한 말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생방송”.“생맥주”에서 ‘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다음 사전의 설명처럼 ‘현장방송’으로 순화하자는 말은 일본말의 직역임을 여실히 나타내는 말로 제대로 어원이라도 알고 쓰자는 의미이다. 이때의 ‘생’자는 일본말로는 음으로 읽지 않고 같은 의미의 “나마 호소(생방송)” “나마비루(생맥주)”이다.

 

 

2009.09.30 11:39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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