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취기가 맞나 예초기가 맞나
잔디밭에 잡초가 무성하고 사무실 뒤편 바다쪽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도저히 보기가 흉해서 자르기로 결정했다. 봄에는 인부를 사서 이틀이나 제초 작업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또 무성해 졌다. 갈대를 퇴치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는가 곰곰 생각했고 인터넷을 검색하곤 했다. 그전에 강력 제초제인 근사미를 진하게 뿌려 시험을 했더니 그야말로 "기꾸도 안갔다". 잎에 노란 반점 몇개만 남기고 무성함을 계속 자랑한다.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번지는 갈대를 효과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위를 덮어서 햇빛을 차단하는 것이다. 짚 등으로 갈대 위를 덮어주면 된다. 갈대가 햇빛을 좋아하고 차단하면 그 왕성한 갈대의 번식력이나 맹아력도 그만 제어된다니 의외로 놀라웠다.
봄에 제초작업을 할 때는 잘라낸 가지를 까꾸리로 걷어 나무 밑에 쌓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알아야 편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었다.최종 결론은 자른 갈대의 줄기 잎을 그대로 두기이다. 자른 갈대를 그대로 두면 새로나오는 갈대를 어느 정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취기를 사용해서 자르기로 했는대 참 위험하다. 난생 처음해보는 예취기 작업이 서툴기는 당연하지만 그 강력한 진동으로 인해 팔과 허리가 아프다.
벌초를 하러 안 간 탓이다. 장성한 조카들이 있고 항상 객지에 있는 지차인 관계로 벌초 한번 해보지 않았지만 정작 업무적인 일에는 손수 하게 되었다.
통날로 된 예취기는 날이 빠져 날아가거나 작업중 돌에 부딪히면 그 파편에 눈을 다치기도 해 굉장히 위험하다. 또 신체를 다친 경우도 허다하고 작년인가 군청 고위 간부는 벌초시 벌에 쏘여 사망한 일도 있다.
아무튼 처음 해보는 예취기 작업이라 조심 조심 다루었고 지금은 제초 작업이 일주일만에 끝이 났다.
필자의 경우 지인에게 빌려온 예취기를 사용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안전날이 부착되어 있었다. 예취기의 안전날이라하면 배의 스크류같은 통날이 아니라 날 부분이 뒤로 접힐 수 있게 경첩과 같이 만들어 져 있다. 이 경우 풀이 베어지는 과정이 원심력에 의해 잘리는 것 같고 비교적 통날보다는 작업 능률이 떨어진다. 필자는 안전날이라서 매우 안심했지만 고음과 고속회전을 동반하는 예취기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안전모와 장갑을 꼭 끼고 해야한다. 힘이 빠진 오후 필자의 신발 위로 회전하고 있던 날이 지나 간 적이 있다. 다행히도 안전날이어서 망정이지 통날이었다면 발이 날아 갔을 것이다.
필자가 기계의 시동을 거는 모습을 본 지인은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고 했다. 즉, 날이 달린 작업대를 발로 밟고 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유는 시동이 걸리면 땅에 부딪힌 날 때문에 작업 손잡이가 튕겨 날아다닌다고 한다.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게되어 새삼스럽고 사고 없이 작업을 마쳐 다행이다.
처음 해본 예취기 작업이지만 인터넷 지식코너에 예취기가 맞냐 예초기가 맞냐는 질문이 떠 있다.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예초기도 어법적으로는 맞다. 단순히 풀을 자르는 기계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이는 예취기란 발음이 어려워 언어습관상 변한 말이다. 이중모음인 취로 발음하느니 "초"로하는 발음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참고로 예취기란 단어는 일본어에서 역시 한자만 빌려온 말이다. 원어 일본어에서는 刈り取り機이다. 물론 일본어에서도 예취기로 한자만 간단히 사용하기도 하나 이 말이 원말이다.잘라서 취한다거나 잘라 거둔다는 의미이다.가리도리기가 원음이다. 이는 엽서(葉書)라는 일본어가 하가기(はがき)이고 보통 "葉書き"라 쓴다. 하지만 음독 위주의 우리말에서는 바로 엽서로 쓰인다. 다시말해 일본어 뒷자인 기(き)를 빼고 사용한다. 다른 예로 다루다는 의미의 취급(取扱)이란 일제 단어는 도리아쓰가이(取り扱い)임에도 음독으로 국어에서 단지 한자음만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예취기 역시 이런 점에서 마찬가지이고 일제 단어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차라리 예초기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음이 어려운 일제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 우리말이고 자생어인 "예초기"를 단연 추천한다.
벌초를 많이 하는 시기에 안전 위주로 조심해서 사용하여 다치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란다.
2009.09.06 12:30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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