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랑해요보물섬 2003.10태풍 ‘매미’로 무너진 고향

책향1 2009. 9. 21. 23:14

태풍 ‘매미’로 무너진 고향
글.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기라” 집 앞의 방파제가 앉아 연신 바닷가로 담배연기만 내뿜던 안모(45·남)씨는 필자를 보고 한숨부터 지었다. 자신도 2급 장애인으로 낚시꾼을 상대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창선 당저2리 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는 “그날 밤 목까지 찬 성난 파도 속에서 불편한 몸으로 어머니를 밖으로 대피시킨 일은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다”고 했다. 노모와 자신이 이웃집에서 먹고 자는 일이“미안하고 다시 일어 설 끼 구마”고 굳은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태풍 ‘매미’가 남해를 휩쓸고 간지 한참 지난 지금도 삼동 은점 마을에서 만난 최 할머니(79·여)는 기둥과 지붕만 남은 50년도 넘게 살아온 집이 온통 쓰레기 판으로 바뀐 후 마을회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아들 내외와 손자 세 명이 무사한 것만이라도 “다행이라”라고 거동도 불편한 자신은 감안하지 않았다. 고깃배 3척이 파도에 밀려 지붕을 올라타는 바람에 다 무너진 집에서 소금물에 진득하게 젖었지만 그래도 쓸 만한 가재도구를 찾고 있던 창선 사포마을의 김 할머니(66·여)는 “그래도 바다는 우리의 생명아이가”라며 우리 지역 특유의 말을 뱉었다. 바다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왔으므로 자신과 가족들의 어김없는 생명줄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젊을 때 겪은 또 다른 광풍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성난 광풍의 위세에 눌려 하늘만 잠시 원망하던 주민들이 몸을 아끼지 않는 공무원들과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을 보고 스스로 다시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온통 우리 고장을 찢어놓은 광풍의 상처를 스스로 보듬어야 한다는 의지를 도처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출하를 앞둔 시점에 급양 설비의 바닷물 침수로 양식 어류 약 100만 마리를 잃었다는 강모 씨(38·남)는 “평생을 바다만 보고 살아 왔는데 하룻만에 잃은 전 재산을 어디서 보상받을까?” 라며 “가능하면 기관에서 선지원을 해주면 훨씬 빨리 일어날 수 있을 텐데”라며 주섬 주섬 옷을 가다듬고 날아간 지붕을 수리할 채비를 한다. 비구름이 낀 이른 아침에 주민들은 어마어마한 쓰레기 더미를 치우며 흙탕물에 범벅이 된 옷을 개울물에 세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한숨 쉴 여유도 없이 빠르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밤새 몰아치는 비바람에 애간장을 태우던 읍에 사는 농민 최모씨(53·남)는 전 재산인 900평의 논을 둘러 보러 나갔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설마하며 TV로만 보던 우려가 현실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최 씨의 논이 벼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완전히 자갈밭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대 곡천 물이 터진 둑을 넘어 자신의 논으로 밀려들었던 것이다. 손으로 돌멩이를 걷어 내보지만 올 농사는 포기해야 겠 단다. 비가 오기 전부터 일조량이 부족하여 낱알이 제대로 들 지 않아 흉작을 예상했지만 자갈이 덮고 있는 논에서는 한 톨의 벼도 수확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익을 거의 벼농사에 의지했는데 완전히 물 건너간 셈이다. 피해조사를 나온 공무원에게 내년 농사를 위해서 “가능하면 빨리 기계라도 지원해 주고 인접한 소하천에 관을 묻어 주기 바란다” 고 하소연을 하며 “이제 노가다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겠다” 라며 종종 걸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453mm가량의 전국 최고의 강우량과 만 조시에 들어 닥친 해일의 피해는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서부 경남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우리 지역에 자매결연 도시나 인근 지역에서 많은 구호물품과 인력 지원을 받았다. 또 특별재해지역 지정은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직역은 각종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가 있어 실의를 딛고 일어서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산더미 같은 해일이 우리 군민들의 굳건한 재기를 위한 몸부림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연례 행사처럼 되어 버린 태풍과 적조에 공무원과 군인, 경찰이 아무리 피해를 줄 일려고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고 의지만 해서도 안될 것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복구 노력만 요구해서도 안될 일이지만 국가는 재난대비책을 완비하여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거대한 태풍의 내습 하루전에 주변 주민들을 대피시킨 미국의 예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보다 더 센 태풍이 내습해도 인명이나 재산 피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산 피해와 가족을 잃은 비통함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실감하기에는 너무 심하다.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고, 우리의 선조들이 아름다운 이 고장을 우리에게 물려 주었듯이 좋은 우리 고향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남해 사람이라면 빠짐없이 성심껏 마음을 모아야 한다. 지혜롭게 남해 사람들의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 다른 지역의 좋은 사례가 되도록 노력하자. 다같이 노력하면 못해낼 것 없는 남해사람들의 기질을 한번 보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이 아수라장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남해 사람들의 정을 두텁게 하는 계기로 삼아 우리의 저력을 내외에 한번 과시해보자.
뻘 칠한 바지를 입고 매일 같이 트럭을 타고 다니며 수해 복구 현장에서 만나는 군정책임자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생각해 보면 일사불란한 우리들의 단결된 모습을 확인케 했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어느 마을 입구의 개울 빨래터 옆에서 공을 차며 놀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과 미래가 있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