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김삼웅씨의 “후광 김대중 평전” 반박

책향1 2009. 9. 14. 17:15

김삼웅씨의 “후광 김대중 평전” 반박


김대중씨에 관한 연구는 시기별로 쟁점이 다르거나 논리가 유달리 다른 면이 있다. 특히 장준하 선생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도 그런 면이 유달리 많았다는 점은 그 만큼 의혹이 많았고 정치적 판단이 앞섰다는 점을 숨길 수 없다. 최근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오마이 뉴스 블로그에서 “[72회]교통사고 위장 살해기도” 란 제목의 김삼웅 씨 글을 보고 『월간조선』2002년 2월호 조갑제씨 기사가 떠올라 다시 읽고 이 글을 적게 되었다. 김씨의 글은 인용문이라 할지라도  단정적인 제목이나 인터넷 게시, 인용 자체가 김대중씨 주장을 그대로 미화하고 있다. 참고로 김씨나 필자도 직접 현장 취재는 하지 않고 글을 작성한 맹점이 있음을 감안하시기 바란다. 다만 김대중씨의 자신에 대한 주장이나 김씨의 개인 주장보다 실제로 현장 취재를 한 객관적인 월간조선』 기사가 더 신뢰성이 있다.

 블로그 글의 작성자인 완도 출신 김삼웅씨는 자신의 인터넷 프로필에 서울신문 주필과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강의하고  독립기념관장,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부원장을 역임하고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독립기념관장 재직시 이명박 정부의 퇴진 압력을 거부하면서, 한편으로는 비공개로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이중적 행태로 인해 당 안팎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월간조선』기사는 김대중 연구3 「교통사고를 위장한 암살기도였다」“김대중 주장”과 이은 우종창 기자의 「트럭운전사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했다.

위 두 글, 김씨와 『월간조선』의 내용은 너무 상이하여 독자들의 가치관 혼란을 초래하고 있어 필자의 의견을 개진한다.

이 글을 적는 필자는 무명의 지방민이고 촌놈이다. 그에 비해 김씨는 필자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경력의 소유자임을 독자 여러분들이 감안하여 주시기 바란다. 김씨가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린 시점은 인터넷 상으로 2009/09/09 08:00이다. 김대중씨의 서거는 2009년 8월 18일 오후이므로 김씨의 글은 김대중씨 서거 후의 일이다.

일반인이 아니고 전직 대통령의 서거 후 어느 정도 일생이 미화되고 감상적으로 묘사되는 면은 필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해할만하다. 다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명인사가 쓰신 글이 정치적인 견해를 무시하더라도 진실에 가까운 내용과 너무 동떨어져 이에 대한 반박이나 오류 지적으로 논쟁에 종지부를 꼭 찍을 필요성이 있다. 장준하 씨 죽음에도 여러 논쟁이 있었고 김대중 씨의 교통사고에 대한 논쟁은 언제까지 소모적인 정치적인 판단에 가까운 글로 논쟁만 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두 사건에 대해 모두 진실을 파헤치고 논쟁은 거둬야 한다는 게 필자의 소회이다.

김씨는 인용글 주석6에서 김대중씨의 육성이라며 “거기서 불과 30미터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만약 거기에서 물속으로 떨어졌더라면 모두 익사했을 것이다.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신의 가호였다고 할 수 있다….
트럭 주인은 공화당의 유력자인 변호사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제의 전국구 제8위에 올라 당선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나중에 잡힌 운전사는 살인혐의로 기소되었지만, 그 조사에 있어 기소를 결정한 검사는 모두 좌천되고, 바뀐 검사는 이 일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당시의 담당 검사였던 허경만(전전남지사)씨는 『월간조선』에서 "트럭운전사가 졸았다고 했다"며 "(현장에는) 스피드 마크가 있었다","(조수석엔)조수가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이는 암살 시도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김대중씨는 일본 NHK 취재진이 글을 구성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사고를 낸) 그 트럭운전사는 엄청난 대참사를 일으키고 도망쳐 버렸다”며 암살기도로 규정하고 있다.

또  “트럭 주인은 공화당의 유력자인 변호사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제의 전국구 제8위에 올라 당선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나중에 잡힌 운전사는 살인혐의로 기소되었지만, 그 조사에 있어 기소를 결정한 검사는 모두 좌천되고, 바뀐 검사는 이 일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고도 했다. 김씨의 글에서 (주석6)으로 나와 있는 부분은 바로 이 책에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용은 2000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도 “독재자들에 의해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고 했고 “이것은 나에게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처형될 뻔한 일에 이어, 두 번째 죽음의 늪에서 탈출한 사건이었다.”고 하며 “모두 신의 가호였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교통사고라는 것은 1971년 5월 24일 오전 9시 반경 목포 광주간 무안군 삼향면 대양리 앞 도로에서 김대중씨의 서울 자 3-8797 크라운 승용차와 경기 영 7-4755 트럭을 피하려다 2m 개울에 처박힌 사고를 말한다. 당시 김대중씨는 오른손에 찰과상을 비서실장인 이명우, 비서관 권노갑씨가 각각 중경상을 입은 사건을 말한다.

크게 보면 이 사건이 암살기도냐 우발적인 사건이냐 는 문제이다. 우종창 『월간조선 』기자가 현장 취재를 하고 면밀하게 관계자와 한 취재 기록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결론 내고 있다. 상세한 부분에서 김대중씨 주장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월간조선』의 기사로 종지부를 찍은 게 아니라는 점이 김씨의 논란을 일으킬 만한 글이다. 논리적인 지적에도 소귀에 경읽기식 대처는 김대중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도덕성의 소유자인지 되돌아 보게 한다. 

위의 김대중씨의 노벨상 수상 연설대로 독재자의 살인음모가 맞다면 그의 생전 주장에는  많은 모순이 있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월간조선』의 기사처럼 많은 도덕성을 요구 받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격에도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당시 사실에 대한 김대중씨의 암살기도 주장의 근거로 삼는 “트럭이 내차를 향해 급커브 틀어 돌진”, “운전사가 사고 낸 뒤  도망…, 형을 다 살지 않고 나온 뒤 의문의 죽음, 사건 담당 검사 갈려버리고…” 등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사고 운전자는『월간조선』 취재 당시 부산에서 살고 있었고 대항할 힘이 없는 사람을 내버려 두라고 까지 했다. 사고 운전자가 사건 당시 도망은커녕  구조 활동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급커브로 돌진 했다는 주장에 대해 “마주 오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는 걸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다. 물론 담당 검사가 갈린 적도 없다. 5:0은 히딩크의 패전 기록뿐만 아니라 "김대통령이 후보시절 고발한 5건의 명예훼손 사건 그뒤" "김대통령이 5:0전승중이었다".(월간조선 1999년 12월호 참조)

이런 현장 취재 기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글에서는 김대중씨의 일방적인 주장만 언급되고 있다. 권력자의 주장도 서민의 주장도 똑같이 언급이 되는 것이 공정하다. 또 이런 사실이 파악이 되고 인쇄되어 널리 베포된 유력 대중지를 김삼웅씨는 아예 읽지 않았는지 의문스럽다. 물론 그가 줄기차게 공박해온 보수언론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읽어 보았다면 김대중씨가 민주인사로 추앙받지만 사실에 대한 진실 확인을 게을리 했다는 증거이다. 새삼 동정적인 여론이거나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한 정치에 대한 해바라기 근성이 대 논객에게도 예외가 없는 듯해서 안타깝다. 동정적인 여론이 밥먹여 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평전"이므로 직시해야 한다.

명백히 자신을 미화하기 위한 허위 또는 과장된 주장을 소개하고 당시 트럭 운전자였던 소시민에 대한 인격권을 무시하여 우월적 지위의 권력자들이 득세하는 한 선진국은 멀었다. 하물며 이런 허위 주장에 부화뇌동이나 하는 저명인사들의 뇌구조를 알고 싶다. 아무리 죽은 자에 대한 예의나 감상적인 주장이라도 진실을 도외시한 주장은 사회정의에 대한 회의감마저 돌게 한다. 당사자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의 한 사람을 살인자로 몰 아무런 증거가 없다.또 개인의 주장이나 논리를 대중에게 강요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일반인들에게 자괴감만 주는 주장은 사회지도층이 자제해야 함에도 도리어 자랑스러워한다면 바로 곡학아세임에 틀림이 없다.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여 그렇다면 더욱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이 글은 다분히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가에 대한 지나친 개인미화가 주는 악영향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 이런 식의 미화는 결국 김대중씨를 변방의 정치인으로 머물게 하는 계기가 될 수있다.

김씨는 자신의 경력과 어울리지 않게 평생을 우려먹은 김대중씨의 말이나 일기 등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객관적인 자료는 무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추모무드에 편승한 광란의 굿판을 집어치워야 한다.

비록 당시의 정치 상황이 그럴 개연성이 있다 손 치더라도 그것은 추측으로 끝이 나야 함을 알아둬야 한다. 역사 학자이기도 한 김씨는  지난 8월 25일  미디어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던 박정희 전두환도 용서한 사람"이라며 언론들은 오늘날 저널리즘이 추락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오보는 용납할 수 있지만 의도적인 곡필은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고 끝을 내고 있다.


2009.09.14 17:15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