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있었던 일
흔히 일상생활에서 법보다 상식적인 판단을 해야 편하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탈 때 줄을 서야 서로가 편하지만 아마 법에는 줄을 서라는 규정이 없을 것이다. 실생활에서 예의와 배려가 참 중요하다. “오모이 야리”란 일본어는 맘을 주다는 의미이지만 우리말로 적당한 말은 마음을 주는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광의의 배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툴레랑스도 포함된다.
일본 것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복잡한 전철에서 신문을 접어서 읽는 모습이나 상대의 불행을 감싸는 마음이나 발이 밟혀도 밟힌 사람이 도리어 사과한다는 글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한다.
이 모든 것은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 사실상 어릴 적부터 교육에 연유한다. 일본에서 튀어나온 못은 박아야 한다는 것은 순응의 지혜를 말한다. 전체를 중시하고 개인적인 행동에 제약을 가하여 사회적인 예의로 통하고 있다.
어제 밤(2009.7.22) 공설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을 왼쪽으로 돌며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필자는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바람에 모처럼 나온 운동기회를 놓치고 스탠드에 앉아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구경하는 신세였다. 본부석 바로 앞에서는 오디오를 틀어놓고 에어로빅을 하기도 하고 그걸 구경하는 사람도 박자에 맞추는 사람도 있었다. 얘기들을 데리고 나온 분도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젊은 부부는 4,5세 되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 와서 잔디나 트랙에서 뛰어 다니며 장마로 시원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대략 65세쯤 된 분이 새 자전거를 타고 아까부터 왼쪽으로 트랙을 열심히 도는 대다수의 사람과는 달리 역주행하고 있어 눈에 거슬렸다. 본부석 앞에서 트랙 일부분을 점령하고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 뒤편은 자전거가 지나가기가 사실 상 어렵고 젊은 부부의 아이들이 뛰어다녀 자전거로 막지나가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 나이 드신 자전거를 타던 분 왈 “아이들이 튀어나오지 않게 좀 잡아라”했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 ‘네“하고 금방 물러섰다.
하지만 약 20분이 흐른 후 그 젊은 엄마의 남편인 듯 키가 큰 분이 나타나 자전거를 탄 분에게 “왜 운동장에 자전거를 타는냐. 여기가 자전거 타는 곳이냐”며 항의를 했다.
급거 시비가 붙고 험한 말이 오갔고 결국 자전거 타신 분 왈 “나이가 몇 살이냐 아비뻘 한태”, “아비뻘이 운동하는 곳에 자전거를 역주행하냐 *발”이다. 또 “술 처먹고 왠 자전거냐”,“어른이 뭐라 카면 젊은 새끼가 들어야지”이다.
과거 어떤 외국인이 쓴 한국여행기에 “모시 한복을 곱게 입고 넓은 유유히 4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모습이 있었다. 또 시장에 가니 아주머니들이 “머리칼”을 잡고 싸우고 있었는데 결국 “나이” 싸움이더라 며 한국인들의 나이 싸움을 이상하다 했다. 다 맞는 말이고 부끄러운 한국인들의 자화상임에 틀림이 없다.
한복을 입고 유유히 4차선 도로를 건너는 할아버지에게서는 법과 규정에 대한 무감각을 상징한다. 머리칼 잡고 싸우는 시장 아주머니에게는 불필요하고 기묘한 나이 다툼을 상징한다.
논리에 막히면 나이를 앞세우는 비겁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의 젊은 논리가 산업화 후 나이 드신 분들과의 논리는 정치판의 보수와 진보 세력만큼 생각 차이가 크다. 운동장에서 술 취한 상태로 다른 사람과 달리 자전거로 역주행하는 분은 내가 내 맘대로 하는데 젊은이들이 예의 없이 덤비는 경우다.
젊은이는 늙었든 젊었든 간에 일반적인 상식이 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물론 후자가 맞다. 말로 해도 미안해하지 않는 나이 드신 분의 무례를 나무라야 하는 게 맞지만 운동장에서는 법이 없기 때문에 서로가 절대로 이해를 못한다.
입구에 자전거나 동물 반입을 금지하는 팻말이라도 세워뒀더라면 그걸 기준으로 잘잘못을 말하면 되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상식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도 결코 이해 못하고 도리어 큰 소리 치는 경우가 실생활에서 비일비재한데 혹시 정치권에서 배운 건 아닐까 심히 염려가 돼서 하는 말이다. 논란이 많던 미디어법이 어제 난장판 속에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2009.07.23 10:39 남해
'책향의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에서 있었던 일 (0) | 2009.07.25 |
---|---|
저작권 위반과 어떤 전화 (0) | 2009.07.23 |
남해군 축제 발전방향 (0) | 2009.07.22 |
어떤 친구의 변신 (0) | 2009.07.09 |
애처로운 몽유도원도와 수월관음도의 고향 나들이 (0) | 2009.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