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과 숭정기원후
여러 비문에도 있지만 특히 유명조선삼도수군통제사증시충무이공묘비(有明朝鮮三道水軍統制使贈諡忠武李公廟碑송시열 씀)로 시작하는 이충무공 비문 탁본에서 “유명”의 뜻을 물어보는 관람객이 많다. 비문 맨 앞에 있으므로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뜻을 '명나라에 속한 조선국'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나라의 조선국'이라고도 한다. 또 '명나라 시대의 조선국'이라고도 한다. 지역에서 발간된 이충무공 관련 서적에서는 “크게 밝은”으로 해석하기도 해 이를 두고 오역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유명” 이 말뿐만 아니라 신라 시대의 인물이면 '유당신라국(有唐新羅國)', 고려 시대 인물이면 '유원고려국(有元高麗國)'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 '유(有)' 자의 훈에 의해 '명나라의 속국인 조선'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명나라에 있는 조선국'이라는 해석하여 “숭정(崇禎)” 등 중국 연호 사용은 사대주의의 극치라고 한다.
있을 유(有) 자는 있다는 뜻 외에 위대하다, 크다라는 의미도 있고 그런 의미로 사용되어 대명(大明)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타국인 명나라를 높이고자 한 외교적인 표현이지 조선이 명의 속국임을 부각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니다. 연호 사용은 사대주의가 포함된 점이 틀림 없지만 당시의 상황 즉 세계최강대국 옆에 살면서 그렇지 않았을 경우의 국가 존폐를 생각한다면 현재 기준으로의 단순 사대와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유명(有明)의 '유(有)'가 발어사(發語辭)에 불과하다. 유 자는 명사 앞에 붙는 접두사로 유당(有唐), 유송(有宋), 유명(有明)과 같이 나라이름 앞에 붙는 발어사로 다른 예가 많이 있다.
이는 제문의 첫 시작인 유세차(唯歲次)에서 유자와 마찬가지이다.
제문의 첫머리에 나올 때는 의미가 없이 발어사로 쓰이며 감탄사 “아”와 비슷하고 이와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발어사는 문장을 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조사의 하나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명조선국(明朝鮮國)'이라고 하면 '밝게 빛나는 조선국'인지 '명나라 조선국'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명(明)'이 '명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유명(有明)'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유당(有唐), 유명(有明) 등은 국명을 나타내는 일상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특별히 명나라를 높이거나 조선을 낮춘 표현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유명(有明)'은 단순이 '명나라'로 풀이하는 것이 합당하다. '유명조선국'은 '명나라 시대의 조선국' 정도로 풀이하고, 굳이 '명나라에 속한'이나 '명나라에 있는' 등과 같이 사대주의적 의미까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명나라 시대”라고 하면 끝부분의 명나라 연호와 구색이 잘 맞다.
조선의 사회적인 통치 이념인 유학에서는 천하에 황제국은 단 하나로 보고 나머지는 모두 제후국으로 여긴다. 따라서 신라나 조선이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 않는 이상, 국명과 직함을 자세히 기술하는 비문에서 황제국의 국명을 제후국 앞에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명나라가 망한 후에 '유청조선국(有淸朝鮮國)'이라고 하지 않고 '유명(有明)'과 명나라 연호를 계속 썼던 것은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숭명 의리의 존중이거나 소중화 의식의 발로이든,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한계로 보이지만, '유명조선국'으로 표기한 것을 두고 필요 이상의 해석은 자학이다. 따라서 스스로 답답한 선조들이거나 약소국의 비애를 자탄할 필요는 없다.
비석에는 의례 주인공의 긴 직함이 붙어있다. 물론 중국에서 받은 관직과 우리나라 관직을 모두 적었다.
숭정(崇禎)은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 장렬제(莊烈帝) 때의 연호로 서기로는 1628년에서 1644년까지다.
따라서 숭정3년(崇禎三年)이라 함은 간지로 경오(庚午)년이며 서기로는 1630년(인조 08)이다.
보통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라는 말이 들어가면 숭정연간(서기 1628년~1644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대를 말한다.
가령 어떤 비문이나 고문서에 "숭정기원후삼갑자(崇禎紀元後三甲子)"라는 문구가 있으면 숭정3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숭정(崇禎)의 연호를 쓴 때부터 계산하여 갑자년이 3번째로 돌아온 해를 의미한다.
따라서 숭정연호부터 시작하여 첫 번째 갑자년에서 60년 후에 돌아온 두 번째 갑자년, 또 60년 후인 세 번째 갑자년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서기로 1804년(순조 04)이다."숭정삼갑자(崇禎三甲子)"라는 말도 같은 내용이다.
이와 같이 조상들이 유명이란 단어나 숭정 등 중국 연호를 사용했다고 사대주의의 극치로 보거나 약자의 설움을 들먹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어쩌면 조상들의 슬기로 이 나라가 유지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9.06.27 15:58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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