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죠지(道成寺)이야기
도죠지(道成寺)는 와카야먀현(和歌山県) 히다카군(日高郡) 히다카가와쵸(日高川町) 카네마키(鐘巻) 1738번지에 있는 일본의 유서깊은 고찰이다. 이 일본의 고찰을 글제로 적게 된 연유는 필자가 학창 시절 병적일 정도의 관심을 보인 이 절의 창건설화 때문이다. 오죽하면 1988년 첫 일본 방문에 입이 나온 집사람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동경으로 가지 않고 교토로 가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교토 국립박물관 전시실 입구에는 도죠지 연기설화(道成寺緣起說話) 회화도(繪物)가 보관되어 있다는 자료를 보고 이를 보기 위함이었다. 도죠지에 대한 관심은 과거 우연히 본 일본 TV에 노(能)가 나오고 그 내용이 의상대사 설화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6월 30일 단아한 색채와 치밀한 묘사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13세기의 고려 시대의 불화 '미륵대성불경변상도(彌勒大成佛經變相圖)'를 일본 교토(京都)시 묘만지(妙滿寺)에서 발견한 곳도 교토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죠지를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다만 피상적인 내용이라서 좀 더 상세하게 알리기 위해서 이 글을 적는다. 정부의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해 논란이 심할 때 지한파 일본인은 "시코쿠(四國)보다 작은 한국 시장 규모로 그다지 기대 않는다"는 반응과 함께 재일 지식인은 "사실상 일본내 연예인들 중 한국인이 많으므로 결국 한국인끼리의 거래"로 말해 탁견이 놀라웠다.
『하얀 도성사(道成寺)』라는 이름으로 1985년 11월 3~4일 서울 호암 아트홀에서 전통무용 음악극이 공연되었다. 한일교류기금 금상을 수상했고, 주인공은 한국무용가이고 사물놀이 대가 김덕수 씨의 부인인 김리혜 씨이다. 김씨는 승무(무형문화재 27호)와 살풀이춤(97호) 이수자로 1981년 한국전통 춤을 배우려고 한국으로 건너온 25년 경력의 재일동포 2세다. 여기서 “하얀‘은 백의민족을 나타낸 말이다.
"하얀" 의 의미가 우연이었는지 실제 줄거리 원형과의 관계는 알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은 2007년 11월 5일 자 한국후지제록스 최고고문인 다카스키 노부야 씨의 칼럼 「와사비와 비빔밥」에서 “쯔즈미(일본 전통 북)는 와사비와 같이 예리한 울림이 있다.'동'을 표현하는 국악은 장구, 꽹과리, 대금, 징, 태평소, 아쟁 등으로 연주하며 이는 비빔밥 같은 어울림이 있다. 키보드는 와사비와 비빔밥을 잘 조화시킨다”고 하며“ 하얀 도성사 공연은 한국과 일본 문화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고 확신한다”했다. “정과 동”의 조화가 기우로 끝났다는 김덕수 씨의 말도 있었다.
또 인형 애니메이션의 대가 카와모토 키하치로(川本喜八郞)의 대표작인 부조리 3부작 중 한 편인 『도성사』는 애니메이션이 단순하게 아이들의 볼거리 수준이라고 폄하하시는 분들께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전통예술인 노(能)와 분라쿠(文楽)의 애니메이션화이다. 물론 기본적인 이야기는 수행승을 향한 한 여인의 집요할 정도의 애증극이 중심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가부키 『도성사 아가씨(娘道成寺)』 도 국내에서 이미 공연되었지만 내용은 전부 비슷하고 도죠지의 연기 설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기 설화는 일본에서는 많은 그림과 글로 이루어진 일종의 절의 창건기이다. 일본에서 전통극인 노와 가부키 등에 자주 등장하는 도죠지의 연기 설화의 원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 전설은 일본 기슈(紀州) 지방에 전해지는 전설로 마음을 준 승려 안진에게 배신당한 키요히메가 격노한 나머지 뱀의 몸으로 변해 도죠지라는 절에서 범종 안에 숨은 안친을 태워 죽이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설화지만 헤이안 시대의 『대일본국법화험기(大日本国法華験記)』, 『곤쟈쿠모노가타리(今昔物語)』 등에 나타난다. 역사서『고지키(古事記)』의 혼모토모카즈키왕(本牟智和気王) 편에 이즈모의 히카와(肥河)에서 있었다는 ‘뱀 여자와의 혼례이야기’가 있다. 이 전설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잘 알려져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929년(延長6年) 오쿠슈(奥州) 지방에서 구마노(熊野)에 온 수도승 안진(安珍)은 마스나오시(真砂庄司)의 딸인 기요히메(淸姬)의 정열에 구마노를 떠났던 안진이 다시 돌아와 머물기로 약속했다. 약속한 날짜에 돌아오지 않은 안진을 기요히메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무시하고 안진을 찾아 나섰다. 온갖 정성을 쏟아 찾아 헤매지만 사람이 변한 것을 알고 “나무 금강동자를 구해주소서(南無金剛童子、助け給え)”며 안진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끝에 다시 찾아 나선 기요히메는 전생에 악업을 만들면 금생에 연으로 갚겠다며 나무관세음을 읊으며 차생에 영원히 구해주리라 했다.
히다카강에 도착한 안진은 배로 건너는데 기요히메를 건네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기요히메는 독사로 변해 강을 건넜다. 이 장면은 분라쿠 중의「日高川入相花王」가 되었고 무대는 당연 도죠지이다.
도성사로 도망 간 안진은 여성을 동정하지 않는 스님에 의해서 종 속에 숨게 되었다. 안진을 쫓아온 기요히메는 종을 에워 감고 불을 태워 안진은 죽고 기요히메는 강물에 투신자살한다.
이런 내용은 일본에서는 가부기(歌舞伎) 등으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위의 연기설화 내용이 상세하지 않지만 대략 우리나라 설화와 많은 닮은 점이 있다. 물론 사람 이름만 다르고 몇 가지 부분이 다른 점이 있지만 의상대사 설화와 많이 닮았다. 의상대사의 설화는 영주 부석사나 삼국사기에 많은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의상(義湘)대사(625~702년)는 당대 활약이 많았고, 그 만큼 설화가 각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 원효(元曉)대사와 함께 650년(진덕여왕 4) 의상과 함께 당나라 현장(玄奘 : 602~664)에게 유식학(唯識學)을 배우려고 661년(문무왕 1)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바닷길로 당나라에 가기 위해 당항성(黨項城)으로 가는 도중 비 오는 밤 어느 땅막(土龕)에서 자게 되었다. 해골에 고인 물을 모르고 마실 때는 그렇게 달고 시원한 약수였지만 해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튿날 아침에 깨어보니 오래된 무덤임을 알았다. 비가 계속 내려 하룻밤을 더 지내다가 귀신인 동티를 만나 심법(心法)을 크게 깨치고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원효는 모든 진리를 체득하게 된 것이었다. 또한 그는 "또 무엇을 구하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에는 있으며 당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하여 더 이상 입당 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곧바로 되돌아와 이후 저술과 대중교화에 몰두했다.
이후 의상대사는 혼자 떠나게 된다.
중국 등주에 도착하면서 몸이 불편하여 한 불자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 집에서 선묘(善妙)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선묘는 첫눈에 반하여 의상을 유혹하지만 의상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스스로 평생 의상을 스승으로 삼기로 작정한다.
그 후, 의상이 당나라에 머무는 동안 마음껏 공양을 하다가 의상이 귀국하자 용이 되어 따른다. 또 용이 된 선묘낭자는 의상의 귀국길을 돕고 부석사를 창건할 때, 먼저 자리를 잡고 저항하는 소승 잡배들에게 큰 돌로 변하여 공중으로 세 번 날아올라 이들을 쫓아낸다.
그리고 선묘는 석룡이 되어 무량수전 본존불 대좌 밑에 머리를 두고 굽이를 틀어 그 꼬리 끝이 무량수전 앞뜰 석등 아래쯤에 묻혀 있다 하고 실제 부석이란 바위가 부석사 무량수전 옆에 있다.
이쯤에서 도죠지의 기요히메를 선묘로 안진을 의상대사로 하면 뱀 또는 용으로 물과 밀접한 점은 결국 일본 도죠지 설화는 바로 의상대사의 설화가 원천이다. 물론 국내에 동일한 설화에 대한 논문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다만 위의 훌륭한 공연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공연 기획자들이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일본 다카야마지(高山寺, 젠묘지(善妙寺) 등 수십 곳에서 선묘가 신으로 존재하고 있는 점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의상대사 설화가 머나먼 일본 땅에서 전이되고 분화 발전되어 다시 『하얀 도성사』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상징적인 일본 문화 그 기본 줄거리가 한국산이다. 또 다른 "기무치”이다. 일본의 흉내와 재생산은 문화상품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결국 재일교포의 말이나 가가미 신사의 수월관음도와 몽유도원도의 고국 나들이와 같이 한국원산 문화상품을 마치 자신들의 자산인양 도리어 한국에 판매하고 있다. 언제나 실리 위주의 일본과 명분만을 쫓는 한국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김치를 한국에 팔고 냉장고를 에스키모에게 파는 격이다. 백운산 털개회나무가 미스김라일락으로 한국에 도입된 꼴이다. 그러나 기요히메나 선묘의 사랑은 아직도 지속된다.
2009.6.24.12.50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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