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라 하면 흔히 차키 등 영어가 떠 오르겠지만 출근 길에 키와 체를 보고 반가워서 글을 적게 되었다. 버스 정류장 한 켠에 키와 체를 파는 모습이 정겹고 옛 추억이 생각났다. 농경 사회인 과거의 우리 시골에선 너무 흔한 기구였고 살가운 모습이었지만 이젠 이런 모습도 보기 힘들게 되었다. 흔히 키는 치 또는 치-ㄴ로 불렸고 일부에선 챙이라고도 했다. 나락을 까부린다는 말은 바로 이 키를 이용하거나 바람에 날려 잡물을 제거하는 모습을 이른다. 물론 나락만이 아니라 깨나 콩, 보리 등에도 이용된다. 집집마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고 그 만큼 신산했던 삶을 살아온 여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기도 했다.
사진 : 필자사진
북데기(북디기)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데기는 탈곡기나 도리깨 타작을 하고 알곡을 거둬 들인 후 지푸라기와 알곡이 섞여 있는 상태의 것을 말한다. 탈곡기로 탈곡을 하면 멀리나가는 것은 알곡이고 탈곡기 바로 밑에 떨어진 것은 알곡과 섞인 북데기다. 이걸 이 키로 까부리거나 바람을 이용한다.
외국 나갈 때 환전하면 환율 때문에 한국돈은 마치 북데기 돈 같은 느낌이 든다. 북데기 속에 알곡이 적은 만큼 외화는 조금밖에 주지 않으므로 그렇다.
어릴 때 밤 오준 싼 아이가 이 걸 쓰고 옆집으로 소금 얻으러 보내는 풍습도 있었지만 어떤 연유에서 생긴 풍습인지 야뇨와 소금과의 관계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으밀아밀하면 좋을 아이에게 아마 창피감을 주어 조심하라는 의미로 볼 수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키는 왜 하필 그걸 덮어 쓰는지는 의아하지만 흔한 물건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액체나 가루를 구분하기 위한 체를 "채"로 표기하는 것은 생각에서 멀어진 물건이기 때문이다.
체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둥근 굽이 있고 밑에는 망이 있는 것이다. 깨나 가루 등을 칠 때는 구멍이 작은 소문 망이 필요하고 큰 것은 구멍이 큰 것이 필요하며 두 가지 모두 농가에서는 아주 요긴했던 것이다.
50여년 전 쯤 물건을 잔뜩 이고 진 방물 장사도 많았고 지게에 대소쿠리나 이런 것들을 양쪽에 주렁주렁 매단 모습은 한 때의 벅벅한 풍경이었다.
얼마전 지역 신문에서 노점상 문제점을 언급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이 키와 체를 파는 장소도 노점상이었다. 옷 등을 파는 노점상은 완전 기업화되어 차량으로 이전하고 군데군데 분산 시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 체와 키를 파는 분도 화물차로 와서 배분을 받아 팔고 있었다. 노령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버스 정류장에는 거의 대부분 노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옆에 이런 물건을 펼쳐 놓았다. 몇몇 노인들이 사가는 모습을 보니 기계문명이 발달해도 아직 사람이 손으로 할 것은 해야 하는 모양이다. 체로 친다라고 하고 키로 까부린다고 하는데 표준어는 모르겠다.
소소하지만 옛 생각을 소롯하게 나게 하던 체는 약 삼천원에 팔리고 있었다.
2008.11.12 11:38작성 남해
'우리말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꼬시”와 “닭도리탕” (0) | 2009.02.03 |
---|---|
"오꼬시"가 뭘까 (0) | 2009.01.09 |
피라미와 부추 (0) | 2008.11.04 |
오역 유감 (0) | 2007.09.15 |
"빠다"와 "웨하스" (0) | 2007.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