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誤譯)유감
작년 10월 중국의 자매도시 관계자의 남해 방문 시 대표자나 도시에 대한 한글 표기 문제를 지적한 바가 있다. 당시 이양(益陽)시나 대표자였던 류궈샹(劉國尙)시장에 대한 잘못된 한글표기나 호칭은 국제관례에 어긋나고 초청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지난 4월 15일 오후에는 문화체육센터에서는 많은 각국 선수단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아시아 청소년 여자축구(U-17) 선수권대회의 전야제가 열렸다. 전반적으로 통역자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였으나 눈에 거슬리는 세심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일본 축구협회 홈페이지에 ‘2002 JAPAN-KOREA’로 표기했다며 문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독일 축구협회에서도 이렇게 표기했다고 말썽이 인 적이 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가 월드컵 유치 시 폐막 전을 일본에 양보하고 명칭문제를 양보 받았다. 사실은 우리는 실리보다 명분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그 전야제에서 번역자는 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을 영어로 통역하면서 “JAPAN, KOREA” 월드컵이라 했다. 물론 즉석 통역이고 시사용어 구사에 약해 보이는 여성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심려가 깊지 않은 솜씨였다. 공식 명칭은 언제든지 사실 그대로 불러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스스로 주는 떡도 못 먹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번역 문학 대부분이 사실상 중역(重譯)이었던 적이 있다. 학창시절 여러 차례 탐독했던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 전집이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충격은 너무 컸다. 일본 문학가였던 김소운 씨는 목근통신(木槿通信)에서 식민지의 청년으로 가슴 설레게 했던 대동강 변 부벽루를 산보하던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가 사실은 일본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금색야차(金色夜叉)를 베낀 아류작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의 문화적인 충격을 말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에 번역을 얼마나 세심하게 정확히 하느냐는 그 나라의 수준을 결정한다. 고려대 교수이며 영문학자였던 최재서나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를 쓴 이인직 같은 분이나 세계적인 대문호인 괴테나 조이스 등도 처음에는 번역가로 문학을 시작했다.
성경 구절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되어있으나 원래는 “밧줄이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로 돼 있다는 것이다. 번역자가 밧줄(gamta)을 낙타(gamla)로 잘못 읽은 탓에 밧줄이 낙타가 돼버린 것이다.
이런 잘못된 번역이 머릿속에 박히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고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최근 독도 문제나 교과서 왜곡문제로 파고가 높은 한일 관계를 감안하면 세심하고 정확한 번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을사조약을 최근에 왜 ‘을사늑약’이라 표기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문장 하나로 장시간 고뇌하는 번역가들이 많이 나오고 번역가를 대접하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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