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 선생과 남해
올해는 ‘삶과 글이 같았다’는 요산 김정한(樂山 金廷漢·1908∼1996) 선생의 탄신 100주년이다.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 중이다. 그중 으뜸은 17일부터 시작되는 “요산 김정한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이다. 백미인 기념 소설집의 제목은 ‘부산을 쓴다’로 정해졌다. 부산에 롯데자이언츠와 국제영화제만 있는 게 아니라 요산정신도 살아있음을 내외에 알리는 듯해 보기가 좋다.
외부 문학행사가 많지만 선생이 일제시대에 6년간 교원으로 재직하던 남해공립보통학교(현 남해초등학교)와 1년간 재직하신 남명공립보통학교(현 남명초등학교)를 가 볼 일은 자주 있다.
요산의 소설 회나뭇골 사람들(1973)의 배경을 상징하는 '회나뭇골 사람들'의 표지목은 남해읍 남변리 길 가운데 있는 회화나무 밑에 2003년 10월 19일 부산작가회의에서 세웠다.
향토 문인들은 회나무골의 회나무는 지금의 생생반점이 있는 남변리 1312번지 부근의 미소식당과 달궁 사이로 추정되는 남문지 바로 앞 왼쪽에 있던 거대한 회화나무가 주인공이라 한다. 안타깝게도 그 나무는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60년대 초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존하지 않지만 그래도 30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는 회화나무가 실존하므로 그 자리를 대신하여 선생의 문학적인 기념비로 삼고자 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
부산민족작가회의 관계자들은 당시 선생의 제자라는 어른을 만나 선생에 대한 얘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 어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요산 선생은 금지되고 있던 우리말 수업을 계속하였고 내선일체 교육에 저항하거나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거의 독불장군"으로 통했으며 남해에서 '소설 쓴다는 김선생'하면 모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시대를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권위주의 정부시절에 많이 보았다. 선생은 가족과 직업과 그의 삶 등 모두를 걸고 싸웠을 것이다. 그 아픈 속속을 필자같은 범인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만 선지자로서의 각성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강인한 신념 없이는 도무지 걸어가지 못할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가족도 버리고 허허벌판 만주로 민족해방운동을 위해 떠난 이들이 떠오른다. 광복의 빛을 보기 힘든 암울한 시절에 모든 것을 저버린 그들은 아마 선지자임에 틀림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친일인사 재산 환수 어쩌고 하는 보도나 친일인사 선정이나 발표에 시비가 걸리는 것을 보면 나라의 도덕성을 생각하게 한다.
교육자로서의 요산은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노골적으로 항일 정신을 발휘했으며 말과 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웠다.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려운 길을 스스로 택했으며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족정신으로 일관했다. 필자와 같은 범인은 투명한 물안 보듯 제 밑천이 일천하여 내다 비치지만 선생은 살아생전에도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고 돌아가신 후에라도 역시 그러했다.
사하촌(1936),항진기(1937),기로(1938), 그러한 남편(1938),당대풍(1938), 월광한(1940),추산당과 곁사람들(1940)은 연대로 보면 남해에서 교직 생활 중 집필하였고 그 중 사하촌이 1936년 1월의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었고 출세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생존 싸움이라 할 만한 물싸움을 그리며 당시의 상황을 암묵적이고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기득권인 승려와 제목 그대로의 절 밑 사람들과의 갈등을 토속성 짙게 그린 작품이다. 특히 사하촌이란 제목과 보광리, 성동리란 지명은 남해를 표현했던 것이라 보인다.
낙일홍에서는 암울한 일제의 폭거에 맞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민족적인 각성을 위하여 민족성이 강한 초등학교 교원이 벽지로 좌천되어 겪는 현실을 고발하고 민족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친일파와 일본인들로 부터 받은 우리 민족의 고난상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정신을 리얼하게 그렸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길’이 개인과 민족의 살길임을 보여주려 했다. 일제의 미움을 받고 요시찰 대상이 되어 후에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검거되고 직장을 잃었다.
시대가 혼탁해 질수록 선지자로서의 정신은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또 선생의 상념에 내재하고 작품에 녹아 있는 남해의 아련한 추억은 시대를 초월한 일품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일제강점기 남해를 그린 작품이 부족한 만큼 질박하고 텁텁한 막걸리 같은 남해 방언과 함께.
2008.10.09 17:18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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