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부족 우리나라 언론의 좌경성향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좌파적인 경향은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그 중에서 언론과 교육현장의 좌파 성향은 그 영향력 때문에 그냥 좌시하는 것은 미래를 위하는 길이 아니다. 여기서 교육이나 언론이 아무리 학구적이라 해서 시대의 흐름을 초월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단현실을 떠들지 않더라도 외세의 침입에 무단히 싸워왔던 선조들의 정신까지 좌, 우파를 나누면 관점에 따라 너무 큰 차이가 나지만 그 갭을 채워주는 지식인은 부족한 느낌이다.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외형적으로는 좌우 성향 구분이 확실하지 않지만 보수와 진보로 나누면 확실한 선이 그어진다. 당연히 우파 중에도 매파와 비둘기파, 중도파가 있다. 진보 중에도 당연히 나눠지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매파나 비둘기파 등의 구분은 정책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 언론의 편의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정치 성향을 무시한 변신들이 어지러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다만 언론들이 보도 편의를 위해서 구분하는 경향은 노후하다. 최근 전체적인 신문 논조들은 좌경적 이념이 조탁된 색채의 기사가 많다. 그 증거로 물론 보수 정당에 있지만 진보성향의 사람들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실증하고 있다.
어떤 언론에도 완벽한 공정성은 없다. 특히 경제력이 미약한 매체들은 쉽게 편파적이 된다. 그러나 거대 언론들이 지난 10년 동안 줄기차게 좌파성향의 정치인들을 띄우고 우파성향의 정치인들을 비하해온 편향적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반역적이기까지 한 미성숙 정치인들을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류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띄우는 선동행위는 국가의 미래와 국민 정서를 위해서 매우 해롭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공중파 방송에 자주 등장하여 대중성을 얻은 사람은 대부분 진보세력이고 심하게 말하면 좌파 성향의 인물들이다. 그 동안 정치 환경으로 인해 키우지 못한 한으로 일거에 좌파성향의 학자, 시민단체 운동가, 언론인, 정치인들이 많다. 좌파정권의 어용언론이 만들어낸 유명 인사들은 강정구, 송두율, 김정란, 김용옥 등이 있다. 이들은 달변과 궤변으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진정한 자신의 상을 유려하게 표현하여 이름을 알린 공통점이 있다. 일방적으로 방송이 뱉은 막강한 혜택은 앞선 국민들은 건전한 투표행위에 의해서 반대급부를 좌파세력에게 행사했다.
부지불식간에 퍼진 사상은 좌파방송뿐만 아니라 급기야 보수언론들도 우파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불이익을 주기에 바빴다. 위에 든 강정구 교수에 대한 이념 논쟁 와중에 우파 언론들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동창회에서 나서서 손을 보는 희안한 경우가 있었다. 주성영, 박진 등 이념만이라도 올곧은 정치인들에 대한 은근한 폄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대로 한나라당 내에서 젊음과 패기로 신선감을 줄 수 있었던 원희룡, 남경필, 정몽준 등에 대한 은근한 부각은 언론인 자신들이 이룩하지 못한 선망감의 표현이라 하지만 그 도가 넘쳤다.
그 단적인 예가 전여옥의원에 대한 잣대이다. 표절로 상급심 판결을 앞둔 현재 그의 공천 과정부터 문제되는 것이 건전한 사회의 일반적인 관념이지만 무슨 일인지 애써 외면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 주성영 의원은 좌경언론에 의해서 성추행범 즉, 파렴치범으로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인격파탄자로 (사회에)오인시켜 왔다. 시대를 읽지 못한 주성영 의원 자신만의 실수로 보기에는 거대 언론들의 파워가 너무 컸다.
“시대와의 불화”로 한 때 왕따된 우리 시대의 작가 이문열 씨는 자신의 우익 성향과 2004년 한나라당 공천위원장을 역임 한 사실로 좌파들의 변신 비난에 “고약한 시대에 험한 구설(口舌)을 만났다”며 천교도혁명이 실패한 후에 자신의 이상과 권세를 읽고 사면의 적들 속에서 고독과 빈궁에 빠진 채 <실락원>을 쓴 밀턴의 암담한 처지와 비교했다.
이는 좌파들에 의한 또 다른 분서갱유 즉 ‘책 장례식’이 있었고 김대중 정권의 신문사 세무 조사에 대해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 등을 직접 맞서 싸웠다. 2004년과 2005년 당시 ”지금 실패 중이지만 반드시 재기할 것“을 외치던 그에게 보수언론들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통합민주당 대표인 손학규를 꺾은 박진 의원에 대해서도 신선감과 청렴성이 돋보이는 정치인이지만 주류 언론의 보도 대상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언론인들에게 스며든 좌파적 성향으로 자연스레 당대표를 꺾은 우익인사가 과거처럼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익 인사들의 원칙을 벗어난 좌파적 발언이나 언론이 우대했고, 좌파성향의 인사들의 과격발언이나 해괴한 발언만 즐겼다.
무슨 이유에서건 한국 언론은 보수 세력에 대적하는 정치인들의 미숙하고 배반적인 언동을 종종 대서특필한다. 정상 근무 시간이 끝나고 간부들이 퇴근한 후 인터넷판에서 벌어지는 좌경적으로 보이는 편집은 언론사 간부들의 무책임성을 반증한다. 보수적이라는 '조중동'마저도 야간에 벌어지는 우파세력과의 거리를 두는 이중작태는 버려라.
사실 최근 남경필, 원희룡, 정몽준의 언동들은 정상적인 이성과 양심을 가진 국민들의 눈에 정상에서 일탈하거나 패륜적이기까지 했는데 언론은 그들을 부각시켰다. 이상득의 공천 취소를 위해서 남경필의 행동은 국민들의 형님공천에 대한 반감을 의식해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하거나 도덕성 재무장을 위한 것으로 외형상 보이나 사실은 해당적이고 폐륜적 이었다.
친박연대의 한나라당 복귀를 반대한 원희룡 의원의 주장을 보면 공천 과정의 이방호, 이재호 식 주장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즉 2이(李)의 숨겨진 속셈인 당내 패권쟁취에 있었던 것이지 그들의 주장처럼 국가나 우리나라의 정치, 국민들을 위한 정치가 아니었음은 현명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2이(李) 보다는 신선감이 있어 보이는 원 의원의 경우 언론들의 굿판에서 장구와 북을 치고 국민들이 깨춤을 추게 하려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우파적 얼굴로 한나라당내의 좌파성향의 정치인들을 좌경화된 언론이 적극적으로 띄우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 아니라 일부언론인 자신들의 치기어린 패기를 가장한 횡포이다. 언론보다 더 높은 국민의 시퍼런 눈에 국민들의 눈에 좌경적 소장의원들의 세련되지 못한 언행은 한나라당의 이미지인 우익을 이용한 언어 폭탄이다.
지난 총선 직전에 'MBC 여기자를 성추행 했다'는 소란의 정몽준 의원 역시 그에 대한 언론들은 협의로 그 ‘성추행’을 강조 했지만 정말 그의 한나라당 입당 등 그의 변신에 대한 해명이나 변명은 한 줄도 적지 않았다. 거대 광고주에 대한 예의가 지나쳐 도덕적 의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 그와 담박에 박근혜 전 대표와 비교 해보자. 좌파 언론에 의해 매도되는 ‘독재자의 딸’도 천막에서 생활했고, 지금 친이로 행동하는 대다수의 의원들이 그의 덕을 보았다. 그렇지만 왠일인지 흘러간 과거지사이다.
다 찌그러진 당을 세우고 어려운 정국을 돌파한 가녀린 "선거의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덕을 갖춘 정치지도로 도덕성을 우위에 둬야 할 언론들은 국가의 장래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경제력만 돋보이는 정 의원의 ‘도덕성 상실’은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 보다 언론의 우월적인 정치 감각을 보여야 할 언론들이 자사이익에만 몰두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나라의 미래를 잊은 선정주의가 언론의 판단기준이 된 것 같다. 다시말해 언론의 여론형성 기능을 확대 해석한 망거이다.
정상적인 나라의 언론이라면 어떻게 한나라당에 특별당비를 수 억 원 냈다고 당대표에 무임승차하려는 정몽준 의원의 행위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할 수 없다. 그럼 양정례 당선자의 대한 상세한 보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그는 또 "야당 인사들을 이명박 정부가 중용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상한 논리의 정몽준의 발언은 대통령은 실권을 장악하자 친박 인사들 또는 우익인사를 포용하기보다 과거 정권의 좌경인사들은 포용한 이대통령과 그 맥이 통한다. 다시 말해 경선 시 부터 친박 인사들을 끊임없이 거세하려고 시도 했으나 도리어 일본신문들의 평가처럼 박전 대표의 입장만 키웠다. “그는 겸손해야 할 때 오만 했고, 권력을 나눠야 할 때 독점하려 했으며 친북을 정리해야할 때 친박을 정리했다”는 조갑제씨의 평이 정확했다.
이재오와 이방호를 주축으로 친북 좌경인사들을 배제하기보다 당내의 적을 우선적으로 쳤다. 경상도의 친박인사는 배제하면서 외무, 통일, 국방과 국정인사에 친노세력을 앉혔다. 다시 말해 좌경세력 척결을 외치던 사람은 철저히 외면했다. 한집안 식구인 친박세력이 어디 적인가? 아니면 좌경세력보다 더 미운털이 박혔는가 보다. “불도저대통령”으로 불리는 그는 성공한 인물들에게서 간혹 보이는 비민주적 독점욕과 아집이 현재의 정치적 작용에 적용되고 있다. 운전 미숙에 고장 난 불도저이다. 다만 언론들이 다소곳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은 채 남경필, 원희룡, 정몽준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언론들의 행태는 극히 비정상적이다. 한 가족이 축출되며 20여일만에 되돌아오겠다는 친박연대는 문전박대하고 이념적 적인 통합민주당을 '동반자'로 생각하겠다는 남경필은 출당되거나 통합민주당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
'조중동'의 간부들이 퇴근하고 난 뒤에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좌경적 편집 소문은 '조중동' 간부들의 무책임성 무딘 감각을 반증하고 있다. 소위 보수적이라는 '조중동' 마저도 우파세력을 경외하려는 듯한 해괴한 짓거리가 일부의 의견이라 변명하지마라. 광란의 좌파가 물러가고 우파세력이 등장하였으므로 이제 좌경세력에 보였던 날렵한 예지를 좀 보여주기 바란다.
10년 동안 우리 자신들의 정체성을 폄하한 친북적인 편집방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한의 이념적 내전 상태’를 노리는 좌파세력의 특징은 우리사회의 불신을 자아내고 대중을 해치고 결국 국가에 배반하게 하는 것이다. 좌파들은 목적 달성을 위한 무한한 수단으로 춤을 추고 있다.
그 논리에 진리의 매개체인 함량부족 언론들이 스스로 망국적인 갈등구조를 만들 것이 아니라 좌파들의 이념에 더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좌파이념의 독기에 중독이 불러올 사회적인 갈등 즉 빈자는 부자를 증오하고, 권력자가 권력자를 타도하거나, 지식을 오도하는 무도한 국가를 줄달음치게 그냥 방치할 순 없다.
언젠가 좌경화된 언론도 몰락한 좌파세력처럼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정상적인 우익을 폄훼하고 자신들 입맛에 맞는 얼치기 좌파 경향의 정치인만 줄 곳 양산하는 짓을 국가의 보편적 타당성과 미래를 위해 최소한 언론매체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언론으로 평가받기 이전에 기본적인 민주주의와 애국심을 스스로 추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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