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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우의 작품세계-단막극을 중심으로-

책향1 2008. 3. 25. 13:41

김흥우의 작품세계

-단막극을 중심으로-

 사진:<演劇原理>중의 김흥우 극작가 모습. 김정환 작 1969.8

 

 김흥우(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장,전 동국대 예술대학장)는 자신을 잘 나타내지 않는 연극인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연출한 연극공연에 자신의 희곡작품을 올리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자신의 불문율이다.

 

 덧붙이면 자신의 연극에 유명 배우를 기용하지 않고 무명의 신인들을 출연시킨다. 따라서 방송이나 연극계에 진출한 기라성같은 제자들을 길렀으면서도 그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극작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높은 작품성 만큼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흥행작가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해 왔다.

 

지난 3월 3일자 한국일보는 국립극장의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개관 기념 공연을 알리면서  "김흥우 초현실주의 연극 30년만에 재조명"이라는 제목으로 50여년 간 연극계에 몸담으며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희곡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김흥우의 작품은 그동안 한국 연극계를 주도해 온 사실주의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했다.

 

공연집단 현(顯)이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개관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3월 4일부터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이번 무대는 30년 전 발표됐지만 자유롭고 과감한 표현으로 외면당했던 그의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이들 작품 역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무대에 올랐고 신인배우들을 선보이는 공연이었다. 위의 표현이 정확하게 그의 작품을 지적했지만  일반인들의 안목을 초월한 작가의 초현실성으로 인해 선구자적인 그의 세계는 그 동안 제대로 조명하지는 못했다는 평이다. 

 

다시 말해 김흥우는 이미 작금의 사회 병리 현상을 예상한 범상치 않은 예지로 작품세계를 일궈 왔고 그런만큼 연극계의 사실주의 중시 경향에 무언으로 경종을 울렸다고 할 수 있다. 희곡 장르의 무한한 다양성에 순수예술성을 가미한 예지력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지나친 흥행위주로 나아간 점을 미리 예단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처럼 우선의 영리나 대우는 뒷전인  인간성에 바탕을 둔 그의 개성이 뚜렷했음을 웅변했다.

 사진: 김흥우 모습1995.6.3 백한(서울대 교수) 작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장으로 지난 2월 20일 임명된 그가 다른 지자체의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문화의 개척자임을 자임하며 남해군을 선택한 것도 그의 저변에 흐르는 불교의 이타정신의 구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불교전통의례와 그 연극 연희화의 방안 연구>에서 그는 천도재, 49재, 우란분재 등의 역사와 전통을 고찰해 전통을 살리면서 불교의례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연극 연희화를 제안한 점으로 불교적인 성향을 알 수 있다..

 

 

 “우란분재의 경우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와 고려 때에는 일반인까지 참여하는 의례로서 행해졌지만 조선조 이후에는 배불정책에 의해 사찰에서는 암암리에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 변형되어 백중놀이로 변해왔다. 우란분재등 전통불교의례의 연극 연희화가 정착 된다면 영산재 등과 같은 무형문화재적 가치를 가지는 것과 함께 포교는 물론 외국관광객 유치로 인한 세계적인 사찰로 부상할 기회”라고 지적하며 그의 심저에는 불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연극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한 그의 논문이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세미나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디지털 시대 가장 한국적인 연극개발 소재는 불교소재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한국연극의 모든 가능성을 불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演劇原理>(김흥우저. 도서출판 교육원.1969)의 서문에서 차범석은 "실제보다 이론에 앞서면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며 회갑을 맞이한 한국 연극계를 나무랐다. 이 말은 당시 대학 등에서 연극에 관한 학과가 신설되고 이론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무렵에 던지는 화두였다.

 

 당시 예총회장 이해랑은 같은 책에서 "연극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종합성위에서만 이루어진다. 연기보다는 그 이전의 생활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많은 연극 체험과 순수이론이 겸비된 김흥우가 단연 한국 연극계의 중추역임을 암시하고 있다. 

 


최근(2008년 3월) 공연에서 일부의 초현실성이란 부담에서 벗어나 기획의도가 시대를 앞서갔던 김흥우의 대표적 단막극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 시대의 "어렵지만 인간을 탐구했다"(일반 관객의 말)는 평을 받았다.


김흥우는 50년이 넘게 연극계에 투신해 왔으나 그 작품 세계는 본인의 열정적인 연극 인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일찌기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은 희곡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대표적 단막극을 무대 위에 형상화 시키는 작업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수십 년 전 씌어져 아직까지 무대에 오르지 않았던 희곡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과정은 그의 성품상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수십 년 전의 그의 작품이 2008년의 관객들을 만났다. 그의 연극인생을 따라 찾아가는 이 과정에 많은 후배들과 제자들이 뜻을 모았다. 김흥우라는 극작가 개인에 대한 재조명인 동시에 창작 희곡의 부재에 시달리는 현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활력소가 된 것임이 분명하다.

 


65년 작 "영 아닌데"는 지금과는 달리 아파트 문화가 없던 시절의 아파트 생활이 그려졌으며 결혼과 연애의 다름의 세태를 예상한 듯 이미 무분별한 성관념을 질타했다. 

 사진: 김흥우 단막극 選 포스터

 

 

"천하 대장군"은 "영 아닌데"와 같이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는 연극이 아니다. 난해한 만큼 던지는 메세지가 중후하다.

 

 또한 관객 역시  많은 혼란을 겪게 된다. 무대는 관객들이 이것인가라고 생각할 때쯤, 반전을 일으키며 이해할 수 없음으로 일관하지만 반전은 재미를 위한 것이고 주제의식을 북돋아 주고도 남음이 있다.

 

음악은 악기자체로서 극의 상황을 전달하는데 중요한 힘으로 작용하지만, 이 연극내에서는 음악이 곧 극의 일부분이며,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는 악기소리로서의 진행뿐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 역시도 극에 들어가는 연주로서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주인공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극을 좀더 쉽게 풀어갈수 있는 조언자이다.

 

 이 극에는 여러 가지 설정이 존재한다. ‘사냥꾼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의 쌍둥이 형제와 아버지’, ‘곰’, ‘조상’, ‘어머니의 한’등 1인극인 이 연극내에서 주인공은 여러의 이야기들을 이끌어 내어 하나의 주제로 융합시키는 작가의 솜씨가 천부적이다.
 

 

 무대에서 승려는 사냥꾼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흐름의 중반이후, 승려는 사냥꾼이 되고 사냥꾼은 승려가 되어 둘의 이야기를 나누어 간다.
곧 한 명의 자아 속에 또 다른 이가 실제적 존재로서 등장하며 내면에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부류, 또는 그 이상의 존재를 나타낸다. 말없는  부처세계에서 어떤 상상력을 자신의 이미지로 수용했다.

 

 사진  <천하대장군>의 공연 사진    

 

‘중생의 고행’과 ‘밝아올 화엄세계의 영생’을 무대를 통해 현현하고 있다. 이렇게 재생된 상상력은 대체로 그의 불심이 내면에 원류로 작용하겠지만, 보편적으로 극작가들은 산사나 부처님, 그러니까 시적 대상사물에 대한 혜안(慧眼)이 그의 지적자양과 동시에 발양(發揚)되는 것을 무대에서 큰 울림으로 목도(目睹)할 수 있게 된다. 인간 내면에 작은 감동을 이끌어 내는 조탁된 솜씨로 무대에서 울리는 중생들의 아우성은 곧 인간의 본심 중 본능과 양심의 갈등 과정을 통해  인간 삶의 목표나 가치관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극에는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곰은 조상이다’라는 알 수 없는 말들이 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찾아간다. 이 작품에서 김흥우의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끝을 표현하고 사냥꾼이 어머니를 위해 죽이고자 하는 곰이 인류의 시작점인 것을 의미한다.

 

 처음과 끝이 시작점도 그리고 끝점도 없음을 의미하는 점은 불교적인 윤회관을 우회적인 표현으로 "무상(無常)"을 실천하고자 하는 불교관을 그대로 적시했다. 이 무상은 ‘곰을 죽이라’고 하는 그의 어머니는 처음 낳은  쌍둥이 중에 한 아이만을 키우게 된 사연에 의해 자신의 병이 생겼음을 알고 후회 아닌 후회의 말로 처음을 없애고 모든 것을 태어나면서 빈손인 "무(無)"로 돌아가는 함의가 있다.  

 

김흥우의 희곡들이 높은 예술적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널리 공연이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초현실성으로 인한 난해성과 그가 주는 이타 정신의 실행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 쉽지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서 일반의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예술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보배로운 존재이다.

 

  인간 본연의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숨쉬고 있다.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며  마치 거울을 보듯 자아를 찾게 하는 힘이 강렬하게 작용한다. 


  자신의 내면을 살피게 하는 연극으로 그의 작품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므로 순수 문화적인 차원의 연극으로서 효과는 모두 발휘하는 점이 김흥우 희곡의 특장이다. 

 

다만 일상의 쉽고, 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다른 연극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시선과 철학이 주는 정신적인 중량감이 그가 연극계 50년이 진행된 역사만큼 존재하는 생의 무대이다.

 

시대를 초월한 그의 작품이 순수 문학의 경계를 넘어 관객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학계를 떠나 새로운 개척자적인 문화 창달의 백척간두에서 보이는 그의 열정으로 보인다.


외연을 넓히기 보다 내공으로 쌓은 순수문학적인 정열이  구도자적인 그의 불심과 함께 묻어나 사회에 권선징악을 알리고 있다.이 시대의 인간성 탐구 극작가로 내일의 세계를 예지하는 힘을  쪽빛 바다를 무대로 남해에서 펼쳐 보이기 바란다.

 

 

2008.3.25.14시 작성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