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돌이'들의 말로
'탄돌이'는 2006년 12월 1일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사용한 신조어로 주 의원은 "탄돌이들이 노사모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 당시에는 의원답지 못한 적절치 못한 용어 사용이라고 빈축을 산 바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느낌은 비속어임에도 불구하고 해학이 넘치고 무릎을 탁 칠만한 유효적절한 발상이다. 2004년 제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의 전신)은 소위 ‘탄돌이’라고 불리는 초선 의원 108명을 당선시켰다.
‘탄돌이’는 이들이 그해 정치권을 강타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후폭풍으로 손쉽게 당선됐다는 점을 비유한 용어. 이들 중 수도권 의원은 41명(당선 이후 탈당 및 다른 정당 입당자 포함)에 달한다.
4년이 지난 현재 이번 총선에서 이들의 운명은 ‘태풍 앞의 촛불’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대선 참패 후유증이 워낙 큰 데다 호남 지역구 의원들처럼 지역기반도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 실제로 지난 대선 참패 속에서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전 대선후보는 호남 지역에서 80%의 득표율을 올린 반면 수도권에서는 서울 24.5%, 인천 23.8%, 경기 23.6%에 그쳤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전국적으로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겠다’는 사람은 53.9%에 달했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지지자는 9.4%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통합민주신당 수도권 초선의원들의 지역구에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및 정계입문 희망자들이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108번뇌"108명의 초선 탄돌이 의원들은 2004년 5월 말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중국식 코스요리를 먹으며 의기양양하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길거리에서 마치 "지갑 줏 듯" 당선된 이들의 보무는 당당했지만 당내외에서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목청을 높이는 이들 앞에서 당 지도부는 망연자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 초선 의원은 “선배 의원들이 초선 군기 잡겠다고 하면 물어뜯겠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들어 냈고 당 안팎에서는 “2008년 18대 총선이 닥쳐야 이들이 ‘국회의원 되기’의 험난함을 알 것이다”는 탄식이 나왔다. 지역과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했던 그들이 과거의 권위주의에 대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급진적인 용어나 행동으로으로 엉터리 세력의 지위확보를 하려 했으나 어느덧 18대 4·9총선이 90일도 남지 않았다. 108명이나 되던 초선 의원은 몇 차례 탈당과 합당,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을 거치며 100명이 채 남지 않았다. 살아 돌아올 가망성이 낮은 곳으로 나가야 하는 이들의 머릿속은 번뇌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왜 386정치인들에게 실망했는가? 그것은 누구보다도 386들이 서민을 팔고, 깨끗한 정치를 외치고, 개혁을 외쳤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비친 모습은 말만 무성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고, 자기들끼리 코드로 뭉쳐서 기득권을 행사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도덕적으로는 더 파렴치하고, 기득권과 잇속을 지키기 위해서 끼리끼리 코드로 무장된 모습이었다. 즉, '무능력' '부도덕' '파렴치'가 국민들에게 비친 386정치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정서에 피로감이 든 이 무렵
이제 절망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들 앞에는 선거라는 거친 황야의 전투에서이고 여기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황야의 전투가 권위주위와 싸워 이긴 자만심에 경종을 울리는 기회이고 얼마나 힘든 싸음이라는 점을 깨우쳐주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2008.2.20.9시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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