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황소 한 마리가 봄이 펴진 담벼락 밑에서
되새김질 하고 있다
아마 저놈이 작년 봄 햇빛 아래서
속곳 이 잡던 할머니를 들이 받은 놈일거야
뒷걸음에 쥐도 잡았지
매일 새벽 소죽 쑤고 따뜻한 밥을 준 할머니를
들이받고도 눈만 껌벅껌벅 주는 밥만 잘도 먹는다
저놈이 새끼 낳으면 할머니는 개다리 밥상에 찬물 한 사발
받쳐 놓고 건강을 빌겠지
올해도 탈없이 쟁기질 제발 잘 하기만 바라며
뿔로 허공을 들이박을 줄도 모르면서
언젠가 이까리에 잡혀 논이랑 따라 똑바로 가며
순응의 아름다움에 세상을 향해
부뚜막 냄새나는 누런 오줌 누겠지.
2014.5.18. 11;25 남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