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책향1 2014. 5. 18. 11:30

 

 

황소

황소 한 마리가 봄이 펴진 담벼락 밑에서

되새김질 하고 있다

아마 저놈이 작년 봄 햇빛 아래서

속곳 이 잡던 할머니를 들이 받은 놈일거야

뒷걸음에 쥐도 잡았지

매일 새벽 소죽 쑤고 따뜻한 밥을 준 할머니를

들이받고도 눈만 껌벅껌벅 주는 밥만 잘도 먹는다

저놈이 새끼 낳으면 할머니는 개다리 밥상에 찬물 한 사발

받쳐 놓고 건강을 빌겠지

올해도 탈없이 쟁기질 제발 잘 하기만 바라며

뿔로 허공을 들이박을 줄도 모르면서

언젠가 이까리에 잡혀 논이랑 따라 똑바로 가며

순응의 아름다움에 세상을 향해

부뚜막 냄새나는 누런 오줌 누겠지.

2014.5.18. 11;25 남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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