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사 묘정비 이전 논란에 대해
예전 국립중앙박물관 고미술실 입구의 경주남산삼릉계석조약사불좌상은 경주 남산에서 발견되어 1915년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옮겨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신라 불상 중 보존 상태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도 1972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두 문화재의 경우 그래도 훼손이 덜 한 이유가 접근이 어려운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고 더 이상의 훼손 방지를 위해 지금은 박물관 실내에서 보존되고 있다. 묘정비 역시 그나마 잘 보존된 것도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보호 인력과 시설이 충분한 곳으로 옮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묘정비는 분진과 소음, “충분한 관리” (남해군보도자료 인용) 등을 이전 사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구실로 보이고 문화재법 위반 의혹을 받으며 옮겨야 할 만큼 중하지도 않다. 궁색한 이유를 댈게 아니라 좀 더 솔직하게 상품화를 위해 옮겼다고 하는 것이 옳다. 이제 계획도 없이 충분한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남해군이 답해야 한다.
학예사격인 사람을 두 명이나 두고 있는 남해군이 원래 위치에서 보호 비각 등을 세워 보호를 했어야 하나 방치 상태로 두었던 사실은 남해군이 문화재 보호에 얼마나 관심이 부족한지를 여실히 나타냈다.
누가 뭐래도 문화재법의 본래 취지처럼 문화재는 원래 위치에서 제 가치를 한다. 남해군향토유적등보호위원회 위원 J모씨의 글 제목처럼 “남해의 중요한 향토 유적”(남해뉴스 기사 인용)이라면 도 지정 이하 문화재라도 그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므로 문화재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순리지만 스스로 편법임을 자인하고 있다.
묘정비 이전을 찬성한 위원회 7명의 위원들 중에 문화재 보존이나 연구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제대로 된 심의보다 서면심의로 특정인이 옮기자는 의견을 내자 아무런 의식 없이 찬성해 놓고 이제 와서 변명이나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묘정비 보호를 위해 남해군은 오래전에 두른 철책밖에 없다. 그런 남해군이 묘정비의 보호를 위해 유배문학관 내로 옮긴다는 것은 자가 당착이다. 아시다시피 유배문학관은 보호 시설이나 장비, 연구 인력이 전혀 없는 곳이다. 또 남해군이나 일부 찬성자들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봉천사가 훼손되었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그럼에도 남해군은 기정사실화할 뿐 아니라 고증되지 않은 봉천의 하류인 유배문학관이 적지인양 우기고 있다.
유네스코가 채택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이 있다. 이는 강대국이 약탈한 문화재를 본래의 소유국가에 돌려주자는 취지로 마련한 협약이다. 국가 사이의 문화재 소유권 문제를 다룬 유네스코 협약이 묘정비 이전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남해군과 일부 이전 찬성 동조자들과 말꼬리 잡기 좋아하는 사람은 외국으로 반출도 아니라서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우길지 모른다.
유네스코 협약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문화재는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뜻이 함축되어 있다. ‘문화재는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한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논리다. 역사와 더불어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산물이 문화재다. 그래서 문화재는 역사의 제자리를 떠나서는 결코 가치를 세울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문화재 보호의 근간을 흔드는 일에 일부 언론과 인사가 동조하고 남해군이 나서는 일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문화재 보호를 계도해야 할 남해군이 나서서 자신들의 문화재법 위반 논란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으로 문화재 보호에 앞장 서야 할 학예사들이 혹 정치권 성향이나 윗사람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면 남해군에 존재 이유나 쓸모가 없다. 초기, 담당 실무 팀장이 묘정비 이전에 반대한 사실이 알려졌다. 논란을 없도록하려면 위원회의 심의 회의록이라도 공개해야 한다.
문화재 이전을 세계 어느 나라의 언론도 찬성하지 않으며 어느 식자층도 동조하지 않지만 남해군은 예외인가 보다. 이 부끄러운 현실에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 옮겨진 비의 훼손을 크게 우려하지 않으면 필자는 이전한 비석을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남해군은 이 비석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스스로 밝혔으므로 모순을 고쳐야 한다. 논란이 거세지고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법적으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길이 해결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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