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유배문학관.南海島流し館

『 유배연구논총1』 논문 비판

책향1 2012. 1. 16. 09:32

 

『 유배연구논총1』 논문 비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管原道眞)의 세계」를 중심으로-

 

필자는  2011년 8월 17일 남해유배문학관(이하 문학관)에서 열린 유배문학 국제학술 세미나에서 공식 발표된 일본 니쇼가쿠샤(二松學舍) 대학의 세리카와 데쓰요(芹川哲世) 교수의 「일본에 있어서의 유배문학」에 대한 비판(2011년 8월 25일자 남해시대 참조)을 한 적이 있다. 함량 미달 논문 등에 비판을 하지 않으면 잘못을 답습하기도 한다.

유배문학논총1』(이하 논총)이 발행된다는 말에 기대감이 있었다. 문학관의 장래는 어쩌면 연구 성과에 달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를 위해 발표 논문의 부실과 오류부분에 대한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의 경쟁적 발전을 위해 원래 논문은 비판을 받기 위해 쓰는 글이라 해도 무방하다.

논총이란 말은 논문을 모아 둔 것이라는 의미이므로 논총에 실린 글은 모두 논문이고 이 논총은 문학관에서 집필료 등을 주고 발행한 것이다. 공기관에서 집필료나 발행비용 등을 부담하는 논문은 그 성과로 당연히 평가받아야 한다. 함량이 부족한 글은 같이 발표된 여타 논문들의 품위까지 저하시킬 정도의 글 내용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당연하다. 집필료 등은 모두 국민의 혈세이기 때문이다.

경비부담 효과보다 성과가 적다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당연한 이치를 지적하면 “필자만 그런다”는 몰상식한 비판을 한 자도 이미 있다. 하지만 ‘온 돈 주고 반 머리 깎는 일’이 지자체에서 발생치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管原道眞)의 세계」는 이정희 위덕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가 쓴 글이다. 일본 학문의 신 스가와라는 필자의 글(남해시대 2011년 3월 24일 자 참조)에서 이미 소개를 했다.

이 교수의 이 논문은 전반적으로 논문이어야 하지만 논문이라기보다 전문성이 가미된 기행문 정도로 보인다. 다시말해 여행기에 주석 몇개 단다고 논문이 될 수는 없다. 논총 중의 여타 논문과 비교해 보면 그런 점이 도드라진다. 특히 제목을 광의로 해석하면 타당하겠지만 논문으로 발표하기에는 내용이나 구성이 엉성하여 제목에도 충실하지 못한 감이 든다.

전반적으로 성과로 내세울만한 위상 내지 학문적인 업적이나 새로운 학설은 전혀 없다. 새로운 학설이 아니더라도 논문은 기존 학설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정리할 수는 있지만 이 논문처럼 전문가적인 지식을 일반인들에게 알려주는 약간의 역할만 한다면 '반 머리 깎은 것'이 확실하다.

전반적으로 논문으로서 논거를 위한 불필요한 문장이 너무 많아 낭비로 보인다. 대표적인 시의 해석을 위한 꼬치(こち)는 우리말 꽃의 전이로 인터넷 다음 사전에서도 동풍이나 춘풍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꽃에 대해서 인용한 이영희 교수의 주장은 맞다. 다만 일본고어 속에는 우리말의 전이가 수없이 많다. 곰의 구마(くま)로 변이도 그러하다.

다시 말해 그 당시에는 한반도에서의 많은 도래인에 의한 이두식 표현, 즉 만요가나(万葉仮名) 식 표기나 한국어 전이가 대세로 당대의 학자 스가와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만요슈(万葉集)가 편집된 시기가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9세기의 스가와라가 한국어를 사용했다 해서 한국계라기보다 다른 사서 등에서 이미 한국계로 입증되었으므로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당시 우리의 이두식 일본어가 일본 전 사회의 대세였다. 한국인의 후계라는 점을 강조하기에 논증으로 부족하다.

242쪽의 매화나무 관련 스가와라를 매화를 처로, 학을 아들로 삼고 은거한 송나라 시인 임화정(林和靖. 967~1028)과의 비정은 비약이 심하고 차라리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가 동양 3국에서 칭송받고 학자들과 친근한 동양 문화속의 의미를 강조함이 맞다. 이이명 선생의 매화 관련 글인 매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인들의 그림이나 글에서 등장하므로 일반적인 현상 중의 하나이다. 

 240쪽에서 이 교수 자신이 스가와라가 한국계라고 밝혔음에도 248, 249쪽에서는 신라계 왕자인 천일창(天日槍)에 대한 내력 설명으로 장황하게 일관하고 있어 간단 명료해야 할 논문에 성의 부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69 쪽에서  "파란만장한 행복한 일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라고 하여 정선되고 함축된 용어를 사용해야 할 논문의 기본에서 벗어 났다.

마지막 270쪽에서는 갑자기 미치자네의 "유배"를 말하고  있는 점이 의아하다. 앞 부분에서는 언급 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마지막 쪽에서 유배를 거론하고 있다. 일본 유배사에서 직위와 녹봉을 받고 처소를 옮기는 경우는 좌천으로 구분하고 있으므로 유배로 단정 짓는 것은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한국에서 건너간 신라인의 후손으로 신이 된 유일한 사람"이라고 일본 전역에 신라계, 백제계의 신들은 무수히 많다. 도죠지(道成寺) 연기설화로 유명한 기요히메(淸姬)는 사실상 원효를 연모한 여성으로 신이다. 여행기에 가까운 글을 논문이라 우기는 불상사는 없어져야 한다.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서술이 많은 부분은 일종의 낭비고 논문의 질을 떨어뜨린다. 지불 경비에  따라 최대한의 효과를 노려야 할 논문 저술이 논문형 전문여행기로 대접 받는 일은 바로 "온 돈 주고 반머리 깎는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저작 작업에 관비를 지원받는 일은 일반인들에게는 하늘의 별따기다. 남해군은 책 출판 지원에 관한 일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지인 관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부실한 저작물이 양산된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인사들은 적당히 단체를 이용해서 한 해 몇권의 책을 내고 짜집기에 가까운 내용의 저서를 자신의 처세에 유효적절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저술에 대해 지원을 하려면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고 최대한의 효과를 노려야 혈세가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