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가수 김용임론

책향1 2011. 1. 10. 21:39

 

 

가수 김용임론


가수 김용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단, 그의 노래와 아는 것 이상 알려진 가창력 정도를 귀동냥할 정도이다. 이 글의 동기가 그녀의 노래가 축제판 싸구려 음원을 파는 노점상의 단골인 탓이다.

무엇이 그녀의 노래가 축제 판 입구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는 모른다. 지역적인 특색이지만 이곳은 축제가 많다 그 중 "마늘 축제"에서 단연 그녀의 노래는 입구부터 요란하다. 사실 필자는 노래에 그냥 흥겨워하는 정도 외에는 문외한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클래씩은 말해 뭐하리. 다만 그녀가 전하는 짙은 "호소력"을 알고 싶다.

“론”이라 하면 논문 류로 착각하실 독자분도 계시겠지만 간단한 필자의 개인적인 소감을 적는 경우로 무난하게 봐주시길 바란다.

바로 얼마 전 그녀의 가장 알려진 노래 중의 하나인  “내 사랑 그대여”를 블로그 배경으로 깔았다. 그전에 조금 진한 술집에서, 아마 그 노래가 유행을 시작할 무렵, 역시 축제장에서 들은 노래를 마담에게 시켜보니 잘도 구성지게 했다. 그 후 그녀에 대한 관심이 자주 갔지만 그 이전에 “노을”에서 “사랑의 밧줄”을 억지로 자주 들은 탓도 있다. 당시 19세기 정도를 연상할 만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주인이 자주 흥얼거린 탓이다.

그 이후 언젠가 펜 카페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개편되면서 접속이 힘들어 포기했다. 하지만 예의 그 주인은 가게를 옮기고도 여전히 흥얼댄다.

김용임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예전 생각이 난다. 그렇다고 감상적인 연애가 아니다. 5학년 6반인 필자는 시 나부랭이도 적지만 시를 쓰려면 감상적이지 않으면 적기 힘들다고 흔히 말한다. 그런 식으로 분류 한다면 필자도 조금 감상적임에 틀림이 없다.

우선 블로그에 올리니 신식 노래 분위기에 맞지 않은 노래로 보고 조금 필자를 탓하는 독자도 있다. 가수만 아니라 연예인 모두는 개성이 있고 나름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얼굴로만 먹고 살지 말고 가수는 가창력으로 탤런트는 연기력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얼굴 문제가 아니라 고생을 했지만 최선을 다한 성공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단 의미다.

김용임이 필자와 성과 이름 중 두 자가  같아 술집에서  내 동생이라 우스개 포함 “구라” 친 적이 있지만 새빨간 거짓이었다.

다만 그녀가 구성진 목소리에 가창력을 더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목소리가 가창력에 한 몫을 한다면 옳은 말이다. 어떤 기자는 “럭셔리”로 표현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 구사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럭셔리가 중년들 가슴을 파고드는 호소력의 생산 동력이다.

가정에서 주취로 집사람에게 행패를 부리는 중년들이 많다. 모두들 “술구세”를 말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모두 외로움 때문이다. 그 험한 인생을 살아온 중년들의 사고를 전혀 이해하지 않고 들어 주려 하지 않는 주위를 보면 일종의 벽을 느끼는 것도 일반적이다.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개똥철학, 인기 없는 사회 루저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려 하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히는 게 중년들이다. 그 현상에 약간의 위안을 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 그녀의 “내 사랑”이다.

그녀는 늘 당신만 믿고 싶다고 구성지고 “럭셔리”한 목소리로 외친다. 거기다 “가창력”이 더 해지니 축제장 입구부터 요란하다.

사회 현실을 묘사하는 유행가이지만 대중적인 히트를 얻으려면 철학이 존재해야 한다. 노래만 보면 그녀는 현실 감각이 있고 나름의 기름진 목소리가 있다.

그녀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화려한 방송 무대는 아니지만 비록 축제장 떠돌이 노점상의 스피크에서 울리는 노래지만 중년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증거다.

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고생했던 과거에 덧칠된 현실이 묻어 눈물로 나올 때가 있다. 이 노래의, 감상할 줄 모르는 음악치가 느끼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녀는 "행사의 여왕"으로 불리며 군림(?)하고 있다.

유행가는 그래서 좋은 것이고 암묵적인 중년들이 표현 못하는 정서를 은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거리를 맹타 중이다. 도피처를 찾지 못한 중년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대없이 못살고", "죽는 날까지 같이 살자"는 그녀가 얼마나 이쁜가.가사의매력으로 본다면  "실패한 사랑에 내이름을 지우고"의 현숙도 비슷한 경우이다. 고만고만한 중년들의 마음을 잘 꿰뚫어 본 가사이다.

그녀가 무엇을 노리든 필자는 알 수 없다. 노래로 정서를 달래는 이런 현상은 아마 그녀가 가수로 역할을 다 하는 이유도 될 수 있다.

마음이 배가 고픈 중년들의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연유 하지 않은 고운 정서, 중년 가슴을 웅변하는 노래로 그녀는 성공했다고 본다. 거기에 예술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런 좋은 노래가 좌판에서 팔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그녀의 가창력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개인적으로 대성을 바란다.

   아래 사진은 제7회 보물섬 마늘 축제(남해군)에서의 그녀 모습이다.

가창력이고 미모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