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초가집

책향1 2009. 10. 15. 11:05

초가집

 

초가집이 이제 구경조차 힘들다. 민속촌에 가는 발품이 없으면 발견조차 어렵다. 한 때 가난의 대명사로 초라하고 추운 집이었다. 민속촌이나 유명인 생가에서 보는 초가집은 우리가 경험한 처마가 낮고 꾀죄죄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초가집은 우선 추위 때문에 처마가 낮은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흙벽에 바른 벽지, 볏짚 이엉이 등이 아득함의 상징이다.

봄이면 햇살이 드는 양지 바른 곳에서 묵은 볏짚으로 이엉을 엮는 모습은 한 때의 풍경이었다. 물론 겨울 내내 새끼를 꼰 부르튼 손으로 이엉을 엮었다. 가을철 김치 담는 풍경과 대비되는 정경이다.

코 흘리게 시절 높다랗던 대청도 황소눈만한 물방울이 떠내려가던 마당도 넓었지만 성인이 돼서 가보면 그 야트막한 고향집을 느끼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개화기 낙동강 변을 여행한 일본인들은 초가집위에 널어 말리던 빨간 고추가 참 보기 좋았다고 썼다. 또 다른 일본인, 『風濤』의 이노우에 야스시(井上 靖)는 초가를 한산습득(寒山拾得)이라 표현했다. 어스름하게 안개가 피어나는 산 아래 쪽에서 숨은 듯 다소곳이 솟아 있는 초가집의 표현으로 탁월했다.

한국의 하천에 대해 그는 파랗고 맑은 물이 굽이굽이 양 기슭에 하늘 높이 솟은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강가의 하얀 모래는 하고 그것은 일본의 강도 중국의 강도 아니라고 했다.

어딜 가도 보이는 한국의 산하는 바로 그것이다. 깊지도 급하지도 않은 산하는 바로 은근을 자랑하는 한민족과 유사 이래 닮았다.

국도변에서 버스가 달리면 튕긴 자갈이 대문을 치던 집에서 멀리 떠나고 겨울이면 갈라진 흙벽 사이로 새어나오던 찬바람을 느낄 공간이 이제 없다.

콩나물 버스가 일으키는 부연 먼지를 덮어 쓰던 꼭 내 키만 하던 초가집도 추억 속에서만 찾아야 한다.  흰색 차선이 선명한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초가집을 그려본다.

 

2009.10.15 11:05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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