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코로나로부터 잊은 과거

책향1 2009. 9. 24. 14:08

코로나로부터 잊은 과거 

 

일본 도요타가 한국에 진출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럴만도 하다. 국내 업체들의 피해를 염려해서다. 자동차는 단순 상품이 아니라 국가의 국격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는 상품이다.
오리엔트 시계가 “우리의 시계 오리엔트 시계가 9시를 알려 드립니다”고 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그 오리엔트시계, 70년대 중학시절 애지중지 차고 다녔던 그 시계는 우리의 시계가 아니라 일본 3류 시계회사 제품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식민지 청년시절 일본문학가 김소운씨도 가슴 설레이던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장한몽이 일본 오자키 고요(尾崎紅葉)가 쓴 금색야차(今色夜叉)의 아류였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던 모습과 같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걷던 대동강변은 결국 일본 유명관광지인 아타미(熱海)였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어느 일본인은 책에서 (역사왜곡 등으로)반일 감정이 높을 때 “일본인 승차 금지” 딱지를 붙인 코로나 택시를 타니 기사가 “우리 차”라 했다며 꼼꼼하지 못한 이중적인 한국인을 비웃기도 했다. 그 글에서 대만에서 같은 코로나를 타면 “우리 차”라 하지 않는다고도 하며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꼭 37년 만이다. 도요타가 한국 진출을 우려하는 말들이 많다. 여기서 우리가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도요타의 절대적인 그들만의 상업성이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도요타는 이미 1966년부터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었다. 다만 이름만 신진자동차였다. 1966년 5월 26일 시판에 들어간 신진자동차의 '코로나1500'은 일본 도요타와 기술제휴로 선보인 신차였다.
 코로나는 열악한 우리나라 도로 사정에 알맞다는 평가를 받으며 말하자면 오리엔트 시계처럼 거의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다. 1972년 11월까지 4만4,248대가 생산된 뒤 생산이 중단됐다.
이전에 독일의 그 유명한 할슈타인 원칙이 있었다. 1955년 소련을 제외하고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서독의 외교상 원칙이다. 이것을 응용하여  경제적으로 서서히 일어서려던 중국의 주은래는 중국이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와 관계를 맺는 나라까지도 거래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주은래 4원칙'을 발표하자 중국 진출에 뜻을 두었던 도요타가 그해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해 기술과 부품 공급을 일절 끊었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본이 약했던 우리나라 기업은 속수무책이었다. 도요타는 그 예의 탐욕적인 상업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경제규모나 구매력으로 볼 때 한국에서 철수하고 중국에 진출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본주의 영리회사의 속성으로 당연하게 여길지 모르나 그들의 무지비한 횡포를 기억하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한 때 독립문을 고가도로 때문에 옮길 때도 독립문 위로 지나다닐 일제 자동차를 운운하던 한국인들이다. 남대문 근처에 소니 광고판을 문제시 했던 한국인들이 이런 의리 없는 회사의 재진출을 지적하지 않는점은 이상하다. 냄비근성이라 할 만하다. 
50년대 중반에는 낡은 군용트럭을 개조한 버스, '쓰리 쿼터'라는 합승차가 조립돼 나와 민간의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였다. 1962년 재일교포 박노전씨가 '새나라자동차' 설립하면서 '새나라'라는 이름의 일제 승용차가 등장했다.
 새나라자동차가 63년 5월, 정치자금 등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당시 외환 사정의 악화로 현지 재조립방식인 세미녹다운 즉, 완제품 부품 수입이 금지돼 문을 닫자 부산에서 자동차 조립공장을 하던 신진공업사의 김창원씨가 1965년 11월 이를 인수해 신진자동차공업을 세웠고, 이듬 해 신진자동차로 바꾸었다.
하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도요타와 결별한 신진자동차는 같은 해, 제너럴 모터스 GM과 합작으로 GM코리아를 설립해 '시보레'와 '레코드' 양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국 경영난으로 이어졌고, 76년 한국 측 지분을 산업은행이 인수해 새한자동차로 회사명을 바꾸고 다시 1978년 산업은행 지분을 대우그룹에 넘김으로써 대우자동차, 지금의 GM대우가 출발했다.

한편 1968년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정주영씨의 현대자동차공업은 미국 포드와 기술제휴 및 조립 계약을 맺고, 포드의 인기 차종인 '코티나'를 내놓았다. 이후 현대는 1976년 완전 국산화에 성공한 '포니'의 신화를 이어가 에쿠스, 신형쏘나타 등을 생산 일약 세계 5위의 자동차회사로 도약했다.
GM과 도요타는 이런 한국과의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도요타의 앞으로의 행보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하더라도 그들의 과거의 횡포는 결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발전이나 나아가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을 결코 인정 못하겠다는 반증이다.
번듯한 자동차만으로 영리만 추구하려 들게 뻔하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경제적인 "왜란" 후의 "호란"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과거 돈을 쫓아 도망갔던 몰염치 도요타가 이제 무슨 감언이설을 할 지 두고 볼 일이다.
 의리와는 거리가 먼 기업 도요타도 이런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는 한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그들도 세계 시장에서 한국기업과 경쟁할 줄은 미리 몰랐을 게다.

 

2009.09.24 14:08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