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단상
언젠가 홍역에 걸려
겨우 병원에 업혀 가던 날
논길에 앉아 도랑물을 손으로 떠서
먹이시던 기억
전 잊지 않지요.
독감 걸린 아들에게 문지방
때가 절은 문지방 축을 씻어 먹게 하던
그 정성 잊기 어렵다.
아들을 위해 옆집 계란 얻어오던
손은 동태를 날 무딘 정지칼로
토막 내던 그 손이었다.
산수를 못해 대나무 뿌리로 만든
매를 맞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공부도 농사만큼 힘든 일이라 했다.
배가 고픈 아들을 위해 땡볕에 걸쳐둔 아궁이에
금방 삼베 적삼 젖도록 땀을 흘리며
따닥따닥 소리 나는 보리 짚으로 불을 피웠다.
수학여행 가방이 없어 보자기로
물건을 싸고, 찢어진 교복을
커다란 바늘땀으로 기워주신 정성을
몰라보고 입기 싫어한 못난 아들
조용히 타일렀다.
보리밥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점심 먹으러 뛰어온 아들 담부턴
쌀밥만 도시락에 눌러 담아주셨다.
하천부지 땅 한 평 얻으려 애 머리만한 돌을
쇠망태기에 담아내던 무쇠팔로
겨울엔 땅콩 껍질을 까셨다.
업고 모심기 하며
가끔 논두렁 흙도 주워 먹은 아들이 이제
그때 어머니 나이다.
책만 보던 아이에게 어려운 일본 글자로 된
사전을 얻어주고 그 책에 낙서한 아들
한번도 나무라지도 않고 일자무식이던 어머니
자신은 알지도 못하던 산수에
그래도 성적이 떨어지니 걱정으로 한숨만 쉬셨다.
엄동설한 가슴이 나오는 삼베 적삼만 입고
흙 퍼 날라 담쌓고 몸에 좋은 미꾸라지 팔고
장에 가서 아들 고무신 사주시고도
장에 데려가기 싫어하셨지만
이제 알았네. 주전부리가 싫어 울며 보채는
아이 꼭 떼어놓고 가던 그 마음을.
외양간 시렁위에서 떨어진
마늘 몇 개는 소똥에 절었어도
그 몇 개 시장 길가에 펴놓고
객지 아들 차비 준다고 파시고
10리길 걸어오신 거 잘 알죠.
가뭄에 두레질로 논에 물댈 때
누가 수세 내라고 고함지르고
그래도 억척같은 손으로 하루 종일
물질하셔 그해 굶지는 않았다.
일본서 전대로 몸에 두르고 온 돈
하나도 못쓰고 일본서 온 친척에게
아들에게 자전거 하나 사주라고 간청했다.
1만 엔이 7천 원 할 때
꼭 7천원만 손에 들고 25년 일본 보험 증서만
보여 줬다.
아버지는 머슴으로
어머니는 온갖 동네 허드렛일로
이제 저 하늘 가셨지만 못다 이룬 꿈
이루려는 오늘도 어머니가 그립다.
2009.07.24 10:24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