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를 통해서 비로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문리를 터득했다는 정현태 남해군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결코 단계론이 아니라 안으로는 평생 동안 수신(修身)하고 밖으로는 수신의 힘으로 제가(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군 청사에 있는 500년 된 느티나무처럼, 물건 숲의 나무처럼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 같은 군수’가 되고 싶다는 정현태 군수를 15일 오후 군수집무실에서 만났다.
-4수만에 꿈을 이뤄 남해 군수가 됐고, 남해 발전을 위해 정말 바쁘고 의미 있는 한해를 보낸 것 같은데. ▲짧은 기간인데 풍년농사 지은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군민들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62%의 압도적인 지지로 좋은 성과 얻었다. 군민들이 행정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라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결과다. 또 하나 화합 군정을 펼치라는 것으로 읽고, 당을 떠나 남해 사람 내외 모든 분들의 역량을 모아서 함께 가자. 여기서 선거와 정당으로 갈라진다면 남해발전의 동력 자체가 반 토막 나 버린다. 그래서 선거는 선거고 정당을 넘어 전체가 하나가 되자고 생각한다. 박희태 대표와 여상규 의원을 만나면 이런 말을 한다. 굳이 당이 있다면 우리는 남해당 이다. 남해당의 박희태 대표는 당 대표고, 여상규 의원은 원내대표다. 두 분을 모시고 우리 남해군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평상시 말씀을 드렸다. 그런 마음으로 뛴 결과 좋은 성과가 난 것으로 본다. -읍·면 연두순방 대신 15일 오전 군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군내 주요기관 업무 설명회를 열어 폭넓은 여론을 들었던 것으로 안다. 어땠나. ▲처음이라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행정이 할 수 있는 것은 제반 행사비용을 절감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돈으로 경제 살리고 일자리 창출에 투자하자는 취지로 기획했기 때문에 그런 취지로는 성공한 것으로 본다. 다만 남해군의 모든 기관이 함께하다 보니 시간관리가 좀 서툴러서 군민 참여 기회가 적었다. 오히려 설명하는 기회가 많고 주민 참여가 적었던 것이 아쉽다. -그 자리에서 새해 군민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했나. ▲첫 번째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다. 근본적으로 지역경제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조선 산업단지를 연내에 조기 착공해야 한다. 또 하나는 생계형 일자리 창출이다. 15억 정도의 예산을 편성했다. 다만 일시적이지 않고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노인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계형 대책이 되어야 겠다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가령 디지털 창업센터를 만든다든지, 관광형 포장마차를 만든다든지 하는 아이디어를 구상중이다. -올해 역점 추진할 사업이 남해 조선 산업단지 조성과 미래형 조선소 교두보 확보인데, 금융위기로 추진에 애로가 있을 것 같다. ▲지금 조선시황을 분석하면 중소업계와 기자재업계는 어렵지만, 대형 조선은 호황이다. 실제, 세계 최대 석유회사로 알려진 영국의 ‘로열 더치 쉘’社에서 무려 7조원 규모의 LNG-FPSO (부유식 천연가스 생산저장 장치)선박을 발주하고 있는데, 여기에 국내 굴지의 3사가 경쟁을 하고 있다. 350만 톤 급이다. 여기에 수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굴지의 국내 조선업체가 남해 조선산단에 입주할 것이다. 따라서 금융위기와 조선업 불황과는 관계없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인접한 하동에서도 대규모 조선산단을 조성중인데, 중복되지 않나. ▲왜 남해와 하동이 최근 조선단지로 각광받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선박용 후판생산 공장이 종전에는 포항밖에 없었다. 물류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비교적 가까운 울산 부산 거제도 지역에 조선산단이 구성되는 요건이 있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는 광양에서 선박용 후판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미 작년 7월 공장 착공식을 했다. 그러다 보니 광양만권을 둘러싼 호남 쪽은 이미 산단화 돼 있고 경남 쪽은 안돼 있기 때문에 인접한 하동 남해에 조선산단을 만들면 물류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다 광양만에 국제항로가 뚫려있고 이 지역은 이미 어업권 보상 등이 끝나 민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선산단 입지 장점이 있다. -2012년 열리는 여수세계 박람회에 대비한 남해군의 전략은. ▲여수 엑스포에서 가장 절실하고 어려운 점이 교통문제다. 여수반도가 호리병처럼 생겼기 때문에 지금 남해에서 육로로 가면 1시간이지만 뱃길은 20분이다. 엑스포 70%의 SOC가 전남지역에서 집중돼있기 때문에 육로와 철도로 움직이면 300-500만 규모의 영남권 관람객이 교통난을 겪게 된다. 이들 관람객을 남해 서상항에서 뱃길로 갔다가 다시 빠지는 교통편을 제공할 것이다. 단시간에 접근하고 교통 분산 효과를 거두는 일거양득 효과가 있다. 엑스포 조직위원회에 설득해서 20억 정도의 선착장 건설 예산까지 확보했다. 또 하나는 엑스포 주제 구현이다. 그 주제가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다. 경남 갯벌 50%가 남해에 있고, 남해에 20여 곳의 어촌체험마을이 있다. 세계인들이 남해에서 주제를 구현할 수 있는 갯벌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스포츠 휴양도시 남해를 활용할 것이다. 여수와 가장 가까운 남해 서상항 부근에 스포츠파크와 힐튼 리조트가 있는데, 이들 스포츠 휴양시설에서 국제스포츠이벤트 행사를 한다는 것이다. 약간의 시설 보완해서 여수가 가지고 있지 않는 시설과 여수에서 할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특화해서 여수엑스포를 지원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락사 일대를 중심으로 한 한중일 삼국의 역사현장을 관광자원화 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소개해 달라. ▲남해와 이순신은 두 가지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장군의 순국지라는 점과 23전 23승의 빛나는 해전 역사 중 유일하게 조명연합군과 왜군이 국제전을 치른 곳이 노량해전이라는 점이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은 막부시대로, 명나라는 청나라로 넘어가게 되는데, 유일하게 조선만이 살아남는다. 비록 엄청난 상처를 입었지만 승전국이라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그래서 임란 당시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이 곳에다 동북아의 평화를 갈망하고 실현하자는 취지로 평화공원을 만들고, 2012년부터 ‘이순신 동북아 평화제’를 열기로 했다.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을 참여시켜서 동북아의 평화를 기원하자는 것이다. -군 청사 안에 있는 고목도 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나무 대접하다 보니 사람이 대접받지 못한다(웃음). 조선 태종 때 남해에 공도정책을 써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켰다. 그러다가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해서 남해안의 왜구 침략이 사라진 이후 다시 남해섬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당시 남해 현청자리가 지금 군청 자리인데, 그때 심은 나무가 지금의 느티나무이다. 남해와 역사를 함께한 나무다.
-정 군수 취임 이후 자치통신사라는 특별한 시책을 펼치고 있다고 들었다. ▲역사 속 외교 관계를 보면 조공외교 등 여러 형식의 외교가 있었지만, 통신사 제도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교류하면서 쌍방이 대등한 관계로 평화적인 교역관계를 형성한 유일한 제도였다. 그래서 저는 자치영역에서 선진문물을 배우고 서로 간 우의를 돈독히 하자는 취지로 통신사 제도를 접목시켰다. 자치통신사 일행으로 가면 배우는 것이 많고 좋다. 행정에 있어서 품질도 중요하지만 속도전도 필요하다. 다른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선진시책을 집단적으로 순식간에 가장 빠르게 배우고 흡수하는 장점이 있다. 가면 배우는 것이 많다. 개인적으로 가면 그 곳 단체장들이 부러워하더라. 어떻게 시간이 나더냐고 묻더라. 사실은 그 시간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선친께서 ‘행진’이라는 이름에서 ‘별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현태’로 바꾼 가슴 찡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성명철학 하시는 분이 3가지 이름을 지어놓고 하나를 고르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현태’라는 이름을 골랐는데, 그분은 “그 이름은 아들에게는 좋은 이름이지만, 자네에게는 좋지 않다”며 극구 말렸으나 아들에게 좋은 이름이면 상관없다면서 골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그해 아버지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 목숨하고 바꾼 이름이다. 이름값을 하는 게 효자이다 고 생각하면서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실망하지 않은 것은 물론 용기와 희망도 잃지 않고 살아왔다. 더 열심히 하겠다. -선거 후유증인지 아직 지역이 화합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구설수에 오르고 급기야 경찰에 출석하기도 했는데, 이번 기회에 좀 소상하게 밝혀 달라. ▲어떤 실정이나 도덕적인 문제로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번뇌해야 하고 군민에게 불신과 걱정을 안겨 줘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마음의 고통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군수라는 자리는 결국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책임져야 하고, 군민들이 잘못한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에서 무게를 두고 있는 부분은 선거 비용 정산과 관련해서다. 법정 선거비용으로 1억 1100만원을 쓸 수 있었는데, 5천만원을 선거 전에 한분에게서 빌렸고, 또 5천만원은 선거 후에 빌렸다. 정산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선거비용 보전금이 약 8500만원 나왔다. 이 돈으로 앞에 빌렸던 분에게 5천만원을 은행으로 보냈고, 다음 빌린 돈은 3500만원을 우선 보냈고, 그 후 1500만원을 보내면서 이자로 200만원을 보내고 영수증까지 받았다. 이게 전부인데, 경찰이 돈을 빌려 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소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나. ▲오늘날 대립하고 갈등하는 국회 중심의 정치와 정당이 상극의 문화라면, 상극의 땅에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으로 상생의 씨앗을 뿌리고 싶다.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마음으로 공적인 일에 나의 사사로움을 배격하고, 윈-윈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의 정치를 하고 싶다.
대담=한중기 편집국장
■정현태 군수 프로필 ▲1962년 경남 남해 출생 ▲진주고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졸업 ▲민주화 운동 관련 6개월 간 옥고(1985) ▲전교조 기획 홍보위원(1990∼1997) ▲남해신문 편집국장 ▲16대 국회의원 출마(2000) ▲남해군수 출마(2002) ▲청와대 NSC홍보담당관, 바른역사 기획단 기획팀장(2003∼2006) ▲남해군수 출마(2006) ▲한국도로공사 이사 ▲6.4 재보선 남해군수 당선(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