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변절’
황석영 씨의 이 대통령 외유에 동행한 사실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의 단순한 동행을 보고 논란이 이는 것이 아니라 MB정권을 “중도 실용”정권이라고 표현한 정체성 논란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5.18민주화 운동”을 “광주사태”로 폄하 했다고 하나 의도적으로 사용한 용어가 아니면 일상용어로 흔히 사용하므로 각설은 필요 없다.
다만 그가 논란의 대상이 된 명확한 사실은 용어 보다 그의 정치적인 변신 때문에 진보 계열 학자들부터나 그 반대편의 비난을 받는 일이다.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황당하다”라는 평에서 “코미디”, “자기망각”이란 표현에서 중앙대 겸임교수인 진중권씨로 부터는 “기억력이 2초라는 금붕어도 아니고 호모 사피엔스가 얼마 전 자신이 했던 언행을 어떻게 까맣게 잊을 수 있느냐” 며 힐난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외형상 보면 황석영 씨는 “훼절”에 가깝다. 지난 좌파정권 10년 동안 문화 예술계에서도 소위 ‘보수’는 찬밥 신세였다. 그 대표적 인사가 소설가 이문열 씨다. 2003년 한나라당 공천심사 위원을 한 이 씨는 그 동안 진보 세력으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받아 왔다. 그가 월북한 아버지를 두고 있고 어렵게 자란, 외형적으로 진보일 수밖에 없는 이 씨를 비난한 글들은 수가 없이 많다.
2004년 2월호 『월간 조선』과의 회견에서 "정치적 태도와 방식으로서의 진보와 보수, 어느 것이 옳은지 하는 것은 이미 지난 문제다. 새의 양날개처럼 상호 보완해 가면서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이 씨와 상응하여 열린 우리당에서는 황석영 씨를 영입하려다 실패했다.
황 씨는 13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에서 기자들과 만나 MB의 이념 정체성에 대해 " 李대통령 스스로 중도실용 정권이라고 얘기했고, 또 중도적 생각을 뚜렷하게 갖고 있다고 저는 봤다"며 "큰 틀에서 동참해서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말에 화답하듯 15일 <중앙일보>는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이 대통령이 소설가 황석영 씨를 조만간 '유라시아 문화 특임대사'에 임명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좌파정권에서 통일운동을 벌여 온 인물이 일국의 대통령 지근에서 전향한 사실도 없이 활동하는 경우는 놀라울 수 밖에 없다.
황 씨는 사실 이적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1989년 평양을 임의로 방문한 뒤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독일·미국에서 사실상의 망명생활을 했고, 1989년~91년간 다섯 차례 밀입북했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만난 뒤, 북한으로부터 25만 달러도 받았다. 1993년 수감됐지만, 김대중 정권하에서 1998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노무현 정권 들어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대표 중 한 명으로서 송두율 석방운동 등을 벌이기도 했다.
북한 체류 당시 김일성은 그를 "재간둥이"라는 말을 들었고 김일성이 빨치산 시절부터 즐겨 먹었다는 "언 감자국수"도 함께 먹는 등 친분을 과시했다.
북한의 노동절 기념 행사에서 그는 노동자들의 무등을 타고 "반제. 통일"을 외친 열혈 남아이기도 하다. 김일성을 세종대왕과 이순신에 비유 미화한 희대의 극렬 좌파이기도 했다. 후에 그를 "소영웅주의"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영웅심리"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문열 씨의『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레테의 연가』,『젊은 날의 초상』,『변경』,『황제를 위하여』등 한 때의 젊은이들의 사고 중 한 쪽을 장식할만한 작품들 속에서 어떨 경우 명시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드러난 사회인식과 보수 정당의 공천심사위원과는 사실 상충하는 면이 있지만 자전적 소설인 『영웅 시대』에서 그는 영웅사관과 철저한 이데올리기적인 허무주의가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허무감에서 오는 그 자신의 현실 인식을 황색 언론가와 어설픈 논객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흑백 논리 재단이 한 몫을 더했다.
문인에 대한 사상의 변신을 욕하는 사회 일각의 ‘진보적인 자세’는 비난받아야 한다. 간단한 이유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좋은 작품으로 의미 전달만 하면 된다. 일반인들의 정치적인 재단으로 문인을 비난함은 정치 만능적인 자유언행의 만행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황석영 씨의 변신 자체도 크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그를 보는 필자의 시각 중에는 그가 방북시 한 행동 때문이다. 198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실행위원, 1985~87년 민중문화협의회 대표실행위원, 1989년 민족예술인총연합회 대변인 등을 역임했다. 그의 진보적인 사회 활동과 최근 MB정권의 행태에 맞물려 그는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필자는 그의 혁혁한 사회 활동과 최근의 변신 중 방북 활동에 무게를 둔 비난을 한다. 1989년 그의 방북에는 그의 방북 중의 활동과 함께 자신의 들뜬 소영웅주의가 한몫했음은 이미 증명되었다. 인기 없는 MB 정권의 진화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두고 볼 일이다.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친북좌파와 손을 잡다니 몽환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해서 너무 헛갈린다.MB가 좌익과는 손잡지만 박근혜에게는 손을 내밀지 못한다. 권력을 반분하기 싫고 박근혜는 실패를 반분할 의사가 없다.
2009.05.15 17:02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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