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국기 게양대를 손보며

책향1 2009. 2. 18. 12:25

국기 게양대를 손보며


바닷가에서는 국기도 바람에 잘 이기지 못한다. 바람이 세던 어느 밤을 지새우고 나니 역사관과 옆집 보건지소 국기도 낡아 떨어져 반쪽만 펄럭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교실의 액자 태극기는 치우고 소 태극기를 칠판위에 걸었다. 종례시간마다 하기식을 교실에서도 했다.

우리 역사관은 태극기 자체도 나만큼 늙었지만 줄이 소금기에 삭았다. 건드리니 하얀 파편이 옷에 날아 붙고 뚝뚝 끊어진다.

오늘 인접한 마을 어르신이 한분 오셨다. 조심스레 도와주실 수 없냐고 여쭈니 간단히 “그러 마” 하신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 걱정이 앞섰던게 사실이다.

게양대 스테레스  봉은 너무 무거워 보인다. 옆으로 옆구리를 찌른 세 개의 나사 중 두 개를 풀고 옆으로 누일 일이 걱정이었다. 둥치가 너무 육중한 탓이었다. 그래서 보건지소에 치료받으러 오신 어르신 두 분을 더 모셔 오시고 커피 한잔씩 대접을 했더니 젊은 양반이 별 걸 다 걱정한단다.

세 개의 게양대 중 우선 중간의 국기 게양봉을 눕히니 의외로 가볍다. 눕히고 꼭대기의 소형 도르래에 새로 사온 밧줄을 끼워보니 도통 맞지가 않다. 더 굵은 탓이다. 사달이다.

부탁드린 어르신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눕힌 상태로 내일 밧줄을 교환하거나 새로 구입해서 하려고 하니 어르신이 그럼 내가 바꿔 오겠다며 차를 몰고 나가신다. 참 고마운 분이다. 바로 차가 없던 필자를 감안하신 것이다.

 미리 공구상에 전화로 교환을 요구하니 쉽게 응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한참 만에 오신 어르신은 교환을 해주지 않아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고 했다. 공구상 주인 왈 “한 마끼(롤)가 아니고 잘라 간 것은 우리도 쓸모가 없다”며 새로 구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토막 난 밧줄을 다시 처리 하기는 난감하기도 하다.

필자가 곤란한 것은 필자 대신 교환을 위해서 간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분에 대해 미안 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한 롤을 다시 사가지고 와서 세 개의 게양봉 전체 줄을 교환했다. 혼자서 할 수 없던 일을 세 개 다 수리를 하고 나니 속은 시원했다.

전화 상으로 교환을 약속했던 점포 주인의 바뀐 말이 괘씸했다. 그들의 입장도 일리가 있어 항의는 자제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관공서 상대의 상인들은 판로나 대금 결제가 걱정이 없는 탓과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서 우호적인 편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조금 틀린다. 상인과 잘 아시는 분에게도 이러니 일반 시골 노인들이 가면 어떨까 상상이 간다.

일본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서비스 정신에 감복한다. 그냥 나타나는 손님 접대뿐만 아니라 전자제품 하자 보수나 불만족 구입 상품 반환 등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손님 존중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흔히 우리가 구입 상품을 교환 하려면 차액을 남겨 돌려주기는  커녕 다른 물품 구입을 요구하는 경우는 유명메이커나 시장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인터넷에서 규정에 맞는 반품의 경우 제대로 응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손님이 무안해 할 정도의 서비스 정신은 일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필요하다.     

 

2009.02.18 12:25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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