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明太)
노가리와 여자는 두들겨야 맛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 농담조로 여성에게 하니 멸치와 남자는 볶아야 맛이 있단 반론이 금방 나온다.
지역이나 상태, 잡는 방법, 시기 가공방법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바다고기이다.
본래 명태(明太)란 이름은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태(太)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잡은 고기라 해서 지명의 명(明)자와 성씨의 태(太)자를 붙여 사용한 이름이다. 어쩌면 극히 한국적인 생선으로 명태가 일본어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어에서 명태는 멘다이(明太)로 원어인 스케도다라(スケトウダラ)보다 많이 쓰인다.
명천은 2005년 10월 일본에서 반환된 유명한 북관대첩비가 있었던 곳이다. 이 비는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러시아군을 두만강 밖으로 구축하기 위해 함경북도 임명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2사단 17여단장 이케다 마사스케(池田正介) 소장이 발견하고 일본은 "양국의 화의(和意)를 손상할까 우려하여 옮겼다"며 야스쿠니 신사 내에 있었다. 북관대첩비는 1709년 숙종임금이 1592년 임란시 의병장 정문부가 주축이 되어 관북지방에서 일본군을 8차례나 격퇴한 것을 기려, 북평사(北評事)로 부임한 최창대(崔昌大)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에 세웠다.
당시 정문부 장군은 이붕수(李鵬壽)를 비롯해 경원부사(慶源府事) 오응태(吳應台)등과 힘을 합쳐, 함경도에 피신 중이던 순화공 등 두 왕자를 왜적에게 넘긴 국경인 일당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이 위대한 승전비는 숙종 35년(1709)으로서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0여년 지난 후에 세워졌다.
일본에 빼앗긴지 100여년 만에 반환되었지만 일본에서는 “명태”라는 이름은 아직 남아있다.
한 때 명태는 우리니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으로 뽑혔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만 보면 고등어로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강원도, 경기도 이남에서는 북어(北魚), 동해 연안에서는 동태(凍太)라고도 하며, 신선한 명태를 선태(鮮太), 그물로 잡은 명태를 망태(網太), 낚시로 잡은 명태를 조태(釣太)라고도 부른다. 또 그 새끼는 노가리이다.
명태는 잡는 지역에 따른 이름도 있다. 강원도에서 잡히면 강태이고, 함경도지역에서 잡으면 왜태라 한다. 맨손으로 잡으면 수태, 그물로 금방 잡아 올린 명태는 망태이다. 손에서 놓쳐버린 명태는 낙태라고 한다.
명태를 잡는 방식에 따라 바다에서 금방 잡은 명태는 생태(선태)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냉동처리 하지 않은 신선한 명태를 말한다. 바싹 마른 놈을 방망이로 후려쳐 야속한 서방 속을 푼다는 놈은 북어 또는 건태라고 한다. 내장과 아가미를 뺀 반건조 상태인 것은 코다리이다.
모양을 봐서 대가리가 없는 놈은 무두태, 몸통이 없이 잘려나간 것은 파태, 색깔이 검은 것은 흑태라고 한다. 또 작은 것은 애기태(앵치), 애기태를 말려 도마에 올려놓고 칼 등으로 두들겨 찢어먹는 놈은 노가리이다. 노가리와 성어의 중간크기 명태는 얼치이며, 산란을 한 명태는 꺽태라고 한다.
계절별로도 이름이 다르다. 1월에 잡히면 일태, 이월에 잡히면 이태, 은어 때 오고난 뒤에 잡히는 은어바지, 섣달 초순 무렵부터 떼 지어 몰려오는 섣달바지, 끝물에 잡은 명태는 막물태라고 한다.
동해안의 모진 찬바람에 얼리고 녹이기를 되풀이한 명태가 황태이다. 20마리씩 싸릿대로 엮어 걸아 겨울철을 난다. 한겨울 대관령 덕장에서는 황태 만드는 모습이 하나의 풍광이다.또 덕장과 관련된 작업이나 상태를 두고 순 우리말도 부지기수다. 여러 이름만큼이나 한국인에게 친숙한 명태가 온난화로 근해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
명태알을 소금에 절여 삭힌 것은 명란젓, 창자를 이용해 발효시킨 것은 창란젓이다.
덕장에서 매달려 매서운 추위 속에서 얼리고 말린 황태를 명태 중에서도 최고의 맛으로 친다. 구룡포 과메기도 이런 과정을 약간 거친다.
'황태찜' '황태탕' '황태찌게' '황태구이' '황태조림' '황태무침' '황태국' '황태칼국수' 등 이름이 명태 중의 황제로 이름값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름이 많은 것은 그만큼 다양하게 이용하였다는 증거라 할 만하다. 소나 명태는 죽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이 이용하게 한다. 말없는 나무도 소도 명태는 죽어도 버릴 것이 없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죽으면 이름만 남기고 떠난다. 그 것도 유명인만.
2009.2.8.11.03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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