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의 교육 후담론
공자의 교육 목표는 실천적인 것이었다. “실천적”이라는 말은 좁게 이해될 수도 있고 넓게 이해될 수도 있다. 좁게 이해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결과 직접적으로 실제의 생활에 반영되어 어떤 유용성이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개인적으로는 지식을 배워 관직을 얻는다던가 기술을 익혀 직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적으로는 국가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관리나 기술자를 양성하여 충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게 이해하면 고도로 이념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요구와는 무관하게 고답적인 이론이나 사상을 배우고 거기에 전념함으로써 고매한 인격을 갖추어 구체적인 현실에 초연함을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삶을 영위하고나 사회적 제도를 운영하는 원리에 관심을 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경우에 이론이나 사상은 그 자체에 가치 혹은 목적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 보다 나은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접적 혹은 간접적 수단이나 방법이 된다는 것으로 수용될 뿐이다. 공자의 교육이 “실천적”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의 것이다.
오늘의 지역사회 남해에 대한 담론은 지역사회를 위함이다.
오늘(11월 6일) 팔자에 없는 공무원 교육 "2008전직원 직장교육(Work-shop)"이 남해군 서면 스포츠 파크 호텔 회의실에서 정현태(사진) 남해군수가 참석한 가운데 있었다.
여기서 정치적인 판단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해박하변서도 숫자 개념 또느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대단한 군수는 좀 특별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충무공이 장계를 올리거나 칠천량 해전 날짜까지 기억하는 군수는 처음 봤다.
물론 기억력이 떨어지고 나이 차이가 나는 군수가 황홀해 보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만 그 해박한 역사적인 지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임진왜란이나 그 후의 팔푼이 도고 헤이하치로나 아님 넬슨 제독이나 이 시대의 영웅은 물론 아니다.
남해라하면 국란의 극복이 화두이고 수난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다. 유효적절한 비유에 결론은 정현태 특유의 "실천적 공복 마인드 제고"라는 의미가 녹녹하게 녹아난 것은 글쟁이식 은유임에 틈림이 없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모(母)는 무학이었지만 " 호적 떼 주는" 공무원을 선호했다. 성적이 좋지않아 홰초리도 맞았지만 정작 틀린 문제에 대한 해답은 들은 적이 없었다. 하천부지 땅 한평 넓히려 칠팔월 뙤약빛 아래 가슴나오는 삼베적삼이 땀에 젖은채 필자의 머리통만한 돌을 소쿠리에 담아냈다.
그럼 어머니에 대한 생각 즉 사친은 일반적으로 과거의 인물들의 감상적인 생각과는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정현태는 이순신과 서포를 예를 들었다. 물론 문과 무에 대한 설명을 예로하며 한번은 공무원의 사고도 바꿀 요량이었다. 어머니로 표징되는 따스함과 충무공의 충절의 차가움이 조화로움을 이루어 발언 요지를 극대화 했다. 대표적으로 사친시(思親詩)는 이러했다. 이 한시를 다 외우는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하고 남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틀리리라.
사친시
서포 김만중
오늘 아침 사친시를 쓰고자 하여 (今朝欲寫想親語 금조욕사상친어)
몇 번이나 붓을 적시다가 다시 내던졌는가? (幾度濡毫還復擲 기도유호환부척)
글씨가 이루어지지 않아 눈물이 이미 적시니 (字未成時淚已 자미성시루이자)
쓰고자 하는 마음뿐, 사친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集中應缺海南詩 집중응결해남시)
당신들은 일기를 쓰는가?라는 물음에 답은 전무했다. 전중에 일기를 상세하게 기록한 사람은 드물다. 전쟁 와중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는 매우 어려웠다. 선조의 명으로 움직이지 않은 대역죄인은 후세에 뭔가 교훈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고 그것이 곧 국난을 극복하는 철학이 스며 든 것이다. 현명한 일탈은 누구나 꿈꾼다. 그렇다고 해서 도전의식이 없으면 일탈은 커녕 반복적 내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 정현태의 철학은 실용노선으로 보인다. 그가 무한한 도전 의식과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충고는 사실 오랜 그의 생활철학이다. 그가 현실 정치에 나서고 여러번의 실패를 무릅 쓴 결과에서 어쩜 현명한 일탈을 선택한 도전적인 경험칙이다. 무한한 도전의식과 열정은 낙수가 바위를 구멍내는 일로 긴 여로 중의 일방식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트랜드는 지역의 상황과 그의 평소 지론이 융합점을 찾은 것이고 일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공적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범인들도 청소년기 등의 경험이 살아가는 방법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점은 부인키 어렵다. 유명작가 아카다카와 유노스케에게 미친 어머니 "후쿠"나 일본 최고 화가 히라야마 이쿠오의 15세 때의 피폭 체험이 그들 작품성향에 또는 화풍에 미친 영향은 그들을 키운 원동력이자 실력이 된 경우이다.
공자가 교육의 사회적 목적을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같이 기술적으로 유능한 관료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가 목표로 하는 “교육받은 인간”의 모습, 즉 군자로서의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은 물론 인을 소유한 인간이지만 더욱 완전하게 표현하면 지혜(知)와 인의(仁)와 용기(勇)의 덕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과업, 즉 학문(文)을 닦고 실천(行)을 중시하며 충의(忠)를 다하고 신의(信)를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술이 24) 그러나 공자가 그러한 덕목과 과업을 교육적으로 중시한 것은 그것들이 개인으로서 성공적인 정치적 생애를 살 수 있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교육을 받은 군자들이 통치에 종사할 때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학자를 양성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교양인으로서 정치에 종사할 지도자를 기르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가 일차적으로 가르치고자 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안에 들면 효도하고(入則孝),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에게 공손의 정의(情誼)를 다하며(出則弟), 근신하여 신의를 지키고, 넓게 여러 사람을 사랑하며, 어진이를 가까이 하라.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우라.”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옳은 것을 배웠으면 곧 행하여야 합니까?”고 물은 즉, 공자는 “부모와 형제가 계신데 왜 여쭈어 보지 않고 행할 것인가?”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염유(苒有)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공자는 “들은 대로 어서 행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염유가 무엇을 행하고자 할 때 언제나 주저함이 있고 자로는 오히려 행함에 지나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잘못에 벌하거나 무엇을 강제하기보다는 옳게 행동하도록 자극하고 권유하는 방법으로 가르쳤다.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전적으로 비형식적인 것이었다. 물론, 수업이나 시험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을 상대로 하여 대화하였고 때로는 질문을 하고 생각할 문제를 던져 주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가 가르치는 방법은 대상에 따라서 달랐다.
공복들의 나라를 위함도 지역을 위함도 군자가 되는 길이다. 또 문과 무 또는 이론과 실천적 접속은 강사의 말마따나 "묘함"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시의적절하고 유효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업보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자못 권위가 망치는 현장보다 "햇볕"은 바로 "좋은 것을 행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서민 풍의 막걸리적 논리가 시대적 접근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지역 발전의 열정적 첩경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중요성이 또 한번의 각성을 노렸다면 정현태는 성공했다고 본다. 그의 서민적 의미지는 관료성을 느낄 여지를 없애주고 공복들과 마냥 어울림이 공허하지 않고 참석자 누구나 허허롭지 않게하는 묘약이었다.
어진 지도자는 공자의 실천 방법처럼 인(仁)으로 무장한 군자이지만 역시 인간이다. 인간 냄새가 풀풀나는 인(仁)과 열정이 겸비된 양수 겹장의 지역 행정은 모두에게 따사로움으로 모두가 자각하지 못한 가운데 새로운 자세가 수혈되었다.
2008년 11월 8일 14시 작성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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