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군수의 "홍문연 승리"-창선면 수산보호구역 해제
기원전 3세기말 명문가 출신인 항우와 중농 출신에 불과했던 유방은 중국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뤘다. 유방이 항우를 이긴 이유는 다양하다. 결정적인 것은 유방은 항우에 비해서 낮은 데로 임하였고, 낮은 데로 임한 그에게 많은 인재들은 몰려들었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잘 활용하였다.
유방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념은 신하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어떤 상황에서의 그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낮추어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자리가 아니면 있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는 지혜를 유방은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였다.
이 둘의 싸움에서 객관적 힘의 열세와 개인의 능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나라를 열었다. 반면 명문가 출신의 항우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주위 사람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나 출신이 별 볼일 없었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알았던 유방은 자신의 고난에서 지혜를 얻었다. 결국 홍문연(鴻門宴)의 승패는 그들의 책사 번쾌나 범증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바로 유방을 위한 잔치가 되었다.
언젠가 시국사건으로 남해의 젊은이들이 구속되었다. 그 중 한명은 달셋방에서 어머니의 삯바늘질로 머나먼 서울의 대학에 다녔다. 가장도 바다에서 잃은 환경에 그의 어머니는 서울로 면회 갈 차비도 없었다. 안타깝게 여긴 주위 사람들이 아들의 옥중 뒷바라지를 위해 차비를 얼마 거출해주었다.
그 주인공은 정확히 26년 뒤 남해군수로 당선되었다. 그 5개월 만에 창선면민들의 27년 염원이던 창선면 일대 수산자원보호구역이 마침내 해제되었다.
지난 11월 27일 오후 2시부터 열린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남해군 창선지역 수산자원보호구역 해제가 최종 결정됨으로 창선면민들의 27년간 비원이던 수산자원보호구역 해제가 완결되었다.
1982년 수산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후 그 동안 남해군은 2003년 이후 창선면민들의 해제건의를 받아 군관리계획을 마련하고, 중앙도시계획 심의회에 모든 일정을 뿌리친 채 군수가 직접 참석하여 역동적으로 해제의 당위성을 설파하여 마음을 열었다. 그 동안 남해군은 농림수산식품부에 남해군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중앙도시계획위원들을 2차로 방문해 남해군의 지역적 특성과 수산자원보호구역의 보존가치 상실 등 해제 당위성을 집중적으로 설득해나갔다.
군수 개인의, 어쩌면 다른 행정구역과 연계되어 난망하던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뚝심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알려진 대로 지역의 많은 정치인들은 보호구역 해제나 조선소 유치를 공약으로 내건지 오래다.
물론 정치인들의 말로 치부하는 경우가 일반화되어 있었고 젊은 군수 역시 그럴 것이라는 속단도 없지 않았다.
젊음은 패기와 도전의식이다. 누구도 가지 않고 개척하지 못한 일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일조차도 무모하게 보이기도 했다. 남해조선산업단지 공유수면 매립승인 역시 무모했거나 남이 해놓은 일의 마무리로 치부했다. 시작도 어렵지만 열악한 경제사정상 그 진행과 마무리는 개인적인 뚝심이 없이 이루어 낼 일 이 아니다. 열정만으로 설명이 어려운 누구도 할 수 없던 일을 진정한 애향심도 없이 이루기란 어려운 일이다.
개인 정현태가 자신의 정치적인 성공을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모토로 하는 “같이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부자남해”를 위한 열정이 표현 되었다고 본다. 최소한 그 터전을 닦은 것은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의 심저에 그가 스스로 터득한 철학의 표출이 남해군민을 위한 길이라면 두려워하지 않은 진정한 용기가 있고 그 일단이 조선산단 매립 승인과 수자원보호구역 해제임에 틀림이 없다. 개인적인 고난이 공인에게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인내력과 용기는 서민적인 군수의 공익을 위한 결정에 자신의 희생을 염두에 두지 않았음은 틀림이 없다. 과연 수산구역 해제의 홍문연이었고 남해의 영광이다.
과거, 실용성보다 체면과 자신의 정치적인 영달을 위한 관료성은 결국 자신의 진로에는 영향을 주었지만 군민 전체의 실익과는 거리감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화려한 체면 관리에 열중한 사람은 언론에 지나친 간섭과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당파적인 이해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비판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논리에만 강한 공리나 화려한 외장보다 실질적인 효과와 혜택을 주는 사업 성공이나 그 기초를 채우는 일은 서민 군수의 확실한 실물경제 몰입이고 그가 추구하는 실용성은 그의 용기였고 그 실용성은 인간적인 체험에서 터득한 지혜이다.
멸치배를 탄 그는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바다 관련 사업은 그의 올인을 요구했을련지 모른다. 배위에서 세상을 잊고자 했을 수도 있지만 바다의 경제성을 피부로 느꼈다.
당위성 설명과 긴장으로 부르튼 입주위를 감추려고 바른"구치베니"처럼 그의 겸손한 꿈과 실용성이 더 크게 꽃피우기를 바란다. 모든 남해군민이 잘 사는 그날을 위해 그가 나아가는 길 중에 "홍문연"에서의 성과가 비록 조그마한 한 걸음일지 모르지만 분명 남해의 큰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한 것처럼 그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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