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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표현 한다는 것은 강한 심념을 갖고 있었다고 말 할 수 있고, 그런 체험을 말하자면 무기로써 화단에 임한다고 한다는 것은 강한 망설임이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전쟁이 끝 난지 34년, 그 라이프 워크의 원점으로 됐다.<불교전래>(1959년)부터 20년이 지나 작자는 역시 원폭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확실히 긴 세월을 안고 온 마음의 큰 짐으로 대한다. 하나의 구분이 있다는 측면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비규환의 지옥 그림이 아니라 또한 시민을 많이 몰아넣은 무차별 살생전을 소리 높여 규탄하는 것도 없었다. 그런 류라면 차라리 전후 잠시 기억이 선명한 가운데 그릴 수 있었다는 대답이다. 이 작품은 <히로시마 생변도>라 제목이 붙었는데 생변(生變)이라 함은 살아서 변하는 것이다. 전후 오랫동안 발을 들인 적이 없는 히로시마에 원전(院展)이 순회하게 되어 자주 발을 옮기는 중에 거의 폐허가 된 히로시마가 전쟁 전을 참아낸 번영을 서서히 찾아가는 것이 눈에 띠고 히로시마는 부활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났다고 한다. 거기에 끊임없는 시간의 흐름과 다부진 인간경영을 느꼈다는 것이다. 업화로 타오른 히로시마의 모습은 죽은 자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진혼의 노래가 있으므로 참화를 겪고 새로운 삶을 계속하는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상에 진좌하는 부동존은 못난 인간의 업을 꼭 바라보면서 새롭게 살아보자는 생의 강한 의지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작가로서 우연히 주어진 업으로 살아남았고, 자신의 생이 재확인이었다.
말하자면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의 엄청난 희생 위에 저의 일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는 섬광에 타버린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느끼는 동시에 유계(幽界)에서 자신의 일을 주시하는 엄청난 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에 생각에 이를 쯤, 지금 순간순간 잠시라도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경험이 히라야마 이쿠오의 그림에 직접적인 뭔가가 드리워 져 있다고 하는 이유는 아니다. 차라리 그러한 제제(역자주:제목)를 피해서 왔던 것이고, 회화로써 조형상 문제로써 이것 또한 별도의 말이다. 그러나 작가로서 걸어온 길, 그 방향성의 근저에서 규정하면, 또 그 작가의 저류에 항상 흘러 내려오고 있는 것에는 역시 히로시마에서 체험이 있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작자는 자신이 가는 방법, 가는 길의 마지막을 타오르는 화염에 중첩시키면서 살아서 계속 그림 그리기는 것, 한 사람의 피폭자로서 생의 의미를 이 작품 안에 확실히 재확인 하고자 했다고 생각 되는 것이다.
∏ 초기의 화업
히라야마가 태어난 1930년(쇼와 5) 세토나이카이에 떠 있는 이쿠치(生口)섬이었다. 히로시마와 미하라(三原)의 중간에 위치하는 이 섬은 고래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으로 중요시 되고 있었다. 하루 중에 조수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고, 간만의 경계에서는 조류의 흐름이 완전히 멈춘다. 특이한 자연 환경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은 「움직임과 조용함이 일체가 될 때 자신은 자신의 미를 보게 되었다」「이 움직임과 조용함이 혼연일체를 이루었던 모습을, 저는 조수의 흐름에서 배우고자 했습니다」고 말하고, 확실히 그 작품에 공통적으로 정지하고 고여 있는 듯 한 공기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바다의 모습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실크로드와 같이 냉온 차이가 확실하고 태양광의 명암 차이를 확실하게 띠우는 대지를 그리고 있어도, 항상 따뜻하며 조용한 분위기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 그런 탓이다. 실제로 그의 집은 소봉가(역자주: 작은 땅을 얻어 부치는 소농가라는 의미)로 8형제의 3번째였다. 아버지 다네이치(峰市)는 종교심이 뜨거웠고 독실한 사람으로 그 때문에 재산을 거의 잃어버린 사람을 존경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어머니 히사노의 교육방침은 엄격하였지만 그것으로 인한 어떤 부자유스러움은 없었고 구김살 없이 어린 시절을 세도 바다 내의 작은 섬에서 보내게 되었다. 1943 (쇼와18)년 세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히로시마시의 슈도중학교에 입학하고 피폭된 것이 3학년 때였다. 전후 히로시마 현립 다다노우미(忠海) 중학교에 전입 숙부의 시미즈 난잔(淸水 南山)의 집에서 다녔다. 시미즈 난잔은 동경예술학교에서 오랫동안 조금과 교수로 근무했던 인물로 회화를 지망하여 동경예술대학에서 배우면서 동급의 히시다 슌쇼(菱田春草)의 빼어난 재능을 보고 회화를 포기하고 조금으로 옮겼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 그림을 그렸고 또한 대단한 재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화가가 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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