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양심
인간이면 어떤 형태이든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있다. 이는 보통 자라나는 주위의 환경적인 요인으로 부지부식 중에 인간의 내면에 형성된 자신의 최소한의 가치기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 중에서도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 하면 최소한의 양식도 없고 사람도 아니라는 가장 큰 욕이 될 수도 있다. 한 때 여러 “양심선언”이 봇물을 이룰 때가 있었다. 그 말 자체가 기본적으로 모든 진실을 밝힌다는 측면에서 사회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근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의 ‘구치 가방’ 양심고백 파문으로 그와 관련 프로그램의 존폐여부까지 거론되는 상황까지 왔다. 그 대단한 사회 고발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도덕적인 결함으로 존폐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를 정도가 된다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이는 수없이 일부 언론들이나 정당으로부터 편파성 논란에 싸여 비판을 받아오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비판의 영역을 구축해 오던 와중에 터진 기본적인 양심 문제라는 점에서 일반 시청자들에게 준 실망감은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들은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란 자괴감이 생기게 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의 이른바 ‘취업 장사’ 파문도 이와 비슷하다. 노동자의 권익과 회사의 발전에 힘을 모아야 할 일부 노조 간부들이 돈을 받고 취직을 시켜온 사실은 지금까지 그들의 활동에 동정적이던 일반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의 치명적인 도덕성의 상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과연 대기업 취직이 어렵기는 어려운가 보다는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같은 노동자가 돈에 눈이 어두워 같은 서민이고 같은 처지의 노동자를 갈취한 사건으로 그들을 ‘노조귀족’으로 비아냥거려도 할 말이 없을만한 사건이다. 즉, 기아의 노조위원장은 연간 예산 6억과 노조원수가 5,600여명이나 되는 민주노총 광주, 전남지역 200여개 사업장중 최대 규모이다. 자신들 또한 노동자이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노조 간부 등의 도덕성 상실은 갈 데까지 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자신들의 신분을 철저히 망각한 채 이루어지는 도덕성의 상실이고 불감증이다. 이런 도덕적인 불감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 온 유교적 가치와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결국은 이러한 불감증이 물욕이란 후천적인 관행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양심을 좀먹은 결과로 본질을 왜곡하거나 외면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극히 지엽적인 문제에 몰입하여 자신들의 본업이나 본질이 사라진 사례라 할 만하다.
지난 15일 읍사무소에서 있은 군수와 읍민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발생한 이른바 “응징” 발언 파문과 관련해 그 발언의 진위여부와는 다른 환경 단체의 처신과 일부 신문의 보도 내용에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누구나 상상은 항상 아름답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이 신문이란 대중매체로 상업적으로 팔릴 때는 책임이 따른다. 이런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논리나 잘못 전달된 사실을 기사화할 경우 신중을 기하고 확인해 보는 것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일종의 그런 기사화 과정을 간과하고 작성한 기사는 기사 작성자인 기자 자신은 물론 신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군민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직접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자리에서 일부 인사들의 전횡에 가까울 정도의 심한 발언은 참석한 읍민들의 수군거림이 그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자리의 성격과 잘 어울리지 않은 듯한 발언과 개발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경파괴 문제의 제기는 그 자리의 성격과 분위기와는 너무 동떨어진듯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친환경 농업 문제나 한려대교 건설 문제의 제기는 미리 작정을 한 ‘비난을 위한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비판을 하려면 읍민을 위해 다중이 모이는 대화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도 될 문제를 혼자만의 원맨쇼마냥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보면 그런 읍민과의 대화의 장을 여는 취지를 무색케 하고 회의감이 들게 했다.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당장 지역의 수장에 대해서 비난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과민 반응을 했다. 군민들의 정서와는 괴리가 많은 환경지상론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우리 지역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신문은 문제의 그 성명서가 나오기 전의 중도 과정을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발표된 성명서를 인용하고 선정적인 제목을 뽑은 기사는 지역의 단합을 위하기보다는 분열을 획책한다고 보일 정도이다. 또한 여러 차례 의견 수렴을 거친 후 상처가 나고 생명을 다한 일부인 4그루 밖에 베지 않은 가로수를 “의견수렴도 없이 시가지 간선도로의 가로수를 베고 주차장을 만들기도 하는 등의 행태” 운운은 사실 확인을 도외시 한 채 의도적으로 성명서를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군수의 발언에 심한 부분이 있었고...” 라고 어떤 단체 관계자가 말한 부분도 “(설사)하군수의 발언이 심한 부분이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신문이)쓰는 것은 너무하다”라고 해야 옳다. 군수의 감사 지시에 관련해서 담당부서에서 “결코 그런 일이 없었다.”는 항변은 묵살하고 “물타기 감사”로 비화시키는 등 이와 같은 언론의 행태가 처음이라면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일전의 이른바 “결산은 요식행위”라는 보도에서처럼 상식적으로 일반 독자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발언을 기사화하는 행태를 보고 신문의 권력화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우연한 실수마냥 우선 기사화 하고 그에 따른 항의를 받고 그 다음 주 신문에 정정보도문이나 싣는 모습은 무슨 변명을 해도 작심하고 우선 기사화 하여 치명적으로 도덕성을 훼손하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조그마한 정정보도문으로 임시변통하려는 기획된 의도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서 명백히 중간 과정을 생략해버리고 일부 생리에 맞게 적당히 거두절미해서 내용을 선정적인 제목이나 내용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단체에 대한 감사를 시작도 하기 전부터 ‘물타기 여론몰이’에 일부 언론이 앞장서는 모습은 남이 하면 간통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지역분열의 ‘북과 장구의 절묘한 조화’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함께 일하기 힘든 기자로 낙인찍히지 않으려거나 신문사 내부의 분위기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독자들이 이해해주지는 않는다. 자신들의 양심인 진리성을 담보하지 않고 사실 여부나 중간 과정을 확인도 않고 그냥 인용하고 보도하는 것은 최소한 문제가 생기면 정정보도문이 있고 아니면 성명서의 문제로 치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기자로서의 양심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지방 언론의 말단 기자로서 우리지역 수장의 체면을 깎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아무리 기자가 기사의 취사 선택권이 있다고 해서 입맛에 맞는 기사나 제목만 노려서 객관적이지 못한 사실을 사실로 인식시키는 현상은 언론의 역할을 일탈한 언론 권력이란 오해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을 도덕성이 상실된 진리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이 없는 이 시기에 진정한 어른은 마음의 양심이다.
좋은 신문사는 정해진 날에 신문을 만들고 신문기자는 고뇌하고 자책해야 한다. 자아비판에 능숙해야 좋은 신문을 만들 수 있다. 언론 권력에 도취되어 언론에 대한 자의식이 마비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것은 아무리 독자가 자신들의 알권리 위탁을 기자에게 했더라도 자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언론이 “제4의 권력”으로 영향력이 있는 권력이 돼야 할 것이다. 바로 “힘이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강력한 정의와 신문이 동의어가 되려면 기자 개개인의 양심이 똑바로 서야 한다. 신문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일 때 바로 이성이 없는 주먹이 되고 감정에 영합한 힘은 공권력보다 선정적인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정확성에 무신경하고 부정확한 것으로 가해를 해놓고 신문의 위력으로 그 피해를 묵살하고 애써 피해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사회의 어떤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사도 선량한 한 개인의 명예나 권리를 희생시켜도 괜찮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자는 누구보다도 양심적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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