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소개

상추에 얽힌 사연-유태복

책향1 2007. 7. 7. 11:55
상추에 얽힌 사연 / 글: 유태복

지난겨울에 있어 던 일이다.
누구든지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연말이 되면 한해를 마무리 지어 보려고 송년회다 망년회다 하며 대중음식점에서 1차 첫 모임을 가지게 된다.
나 역시 대학원 반창회 한답시고 불고기식당으로 들어간다.
오래 간 만에 만난 친우들이 소주 한 잔에 “브라보” 내지는 “건배”하며 안주는 불고기 한 점을 싱싱한 상추 두어 잎에 말아서 먹으며 시작된다.
요즘은 횟집이든 불고기 집이든 상추가 기본으로 나온다.
동료들은 지난 학창시절에 있었던 웃음거리를 소주잔을 부딪치며 거나하게, 그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늘어놓기 시작한다.
나는 이 회식자리에서 불고기에 상추를 먹다가 문득 친우들이 이야기는 건성으로 들으며 잠시 그곳에 가기 전 추운 길거리에서 상추를 팔던 늙으신 할머니 모습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난 겨울은 어느 때 보다 썰렁했는데 그 날 그 시간은 그나마 조금 따스했던 해님마저 저 빌딩 너머 수평선 밑으로 사라져 가버린 때였다.
주름으로 가득 찬 얼굴의 그 할머니는 어둑어둑한 땅거미에도 아랑곳없이 제주동문재래시장 한구석 노상에 쭈그리고 앉아 노점상 단속반이라도 올까봐 마음 조리는 모습으로 살펴가며 상추 몇 잎, 술 한잔 값어치도 안 되는 서너 푼 어치 정도밖에 안 담긴 상추바구니를 이리저리 굴리며 “아지방! 아지망! 하며 오가는 뭇 사람들에게 ”혹꼼만 상 갑서. 막 싱싱 헌 거우다. 싸게 하영 드리쿠다 양! 호꼼 폴아 줍서. 양“ 하며 애원하듯 했다.
그 할머니의 모습은 ‘60년대초 내가 지금의 초등학교 4~5학년시절 부르(통종상추)와 깻잎 몇 잎을 우영밭(집내 붙어 있는 텃밭)에서 뜯어다 열 다섯장 정도 한줌씩 묶어 이 시장 노상에서 3~5원에 팔아서 연필과 잡기장(종합공책)을 샀던 추억을 마치 흑백 영화 스크린처럼 눈앞에 펼쳐놓는 것 이였다.
시대가 흐르면서 토종 부르는 거의 사라지고 잎이 둥글고 넓으며 결구성(結球性)인 개량종 양상추가 하우스를 이용하여 사시사철 재배되어 재래시장, 또는 농산물 공판장 및 대형마트에 직송하면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욕구를 항상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토종 부르(상추)는 봄에 잎이 나기 시작하여 여름 내내 뜯어먹고는 초가을에 절정을 이루면서 씨가 맺혀 그 씨를 다음 봄에 파종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자에 떨어졌던 씨앗 중 강한 것은 겨울잠을 자다가 따뜻한 봄날 자연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자라나면 우리는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반갑게 또 뜯어먹곤 했다.
지금처럼 생선회나 불고기에 쌈을 싸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하얀 녹말 고름 뚝뚝 떨어지는 좀 시구릉한(씁쓸한)맛 나는 그 부르를 마늘과 풋고추를 잘게 썰어 놓고 깻가루 살짝 뿌려 메워만든 된장에 보리밥 한술 싸서 먹으면 보리밥 한 그릇이 모자라 더 먹었으면 하지만 생활이 보릿고개라 먹고 싶은 것도 인내하며 참아야 했던 그 시절을 나는 몇 분 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동료들은 술이 거나하게 되어갔으며 사업이야기, 직장이야기, 지난 경영학 석사논문 패스과정의 어려운 추억들을 모조리 꺼내면서 까지 술자리는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던 차 옆에 있던 일명 망태라는 녀석이 나를 보더니만 “ 야 이 친구야!
자네 지금 술 안 마시고 무슨 생각하고 있나. 옛 애인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면 집에 둔 마누라 생각하는 거야? 야 빨리 한잔하고 2차 가서 링게루(맥주)나 한 두병 더 맞지. 으윽 취한다.“ 하면서 그 곳을 나오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들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터라 “야 캔이나 한 두개씩 사고 노래방이나 가서 목구멍에 바람이나 집어 놓으면서 목구멍 청소나 좀 하는 것이 어떠냐? ” 했더니 옆에 있던 강철녀석이 왈 “야 너 미쳤니? 노래방은 무슨 노래방이야! 우리가 지금도 학생이니? 간만에 만났는데 흔한 단란주점 정도는 가야 안 되겠니? 더치페이 하면 부담도 없지 않은가 이 사람아! ” 라고 하자 대부분 단란주점을 단란하게 선호하는 것 이였다.
“아직도 아이엠에프가 끝 난지 얼마가 안 되었는데...” 하며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마지못해 따라 사면서도 그 할머니 생각에 잠기면서 걸었다. ‘열한시가 다 되어 가는 이 시간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따뜻한 아랫목에서 저녁식사나 배불리 드셨는지. 상추는 많이 팔았는지?
나는 2차 가서도 그 할머니생각을 하면서 「모정의 세월」 등을 온갖 풍부한 감정을 동원하여 목이 터져 라고 부르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으며 또 상추생각이 꼬리를 이어 속담까지 생각하게 한다.
‘상추밭에 똥싼 개’ (한번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은 나쁜 일이 드러날 때마다 의심을 받는다는 뜻.) 그 날 저녁은 상추 먹다 온통 어느 할머니의 하루가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는 저녁이 되어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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