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川里 산책
- 꽃내마을
박곤걸
햇빛 밝은 광명리를 지나서 화천리(花川里)는 학이 나르는 학동리를 못 가서 있다. 신선이 노니는 선도산이 있고 가까이는 천도화가 피는 벽도산이 있다. 또 더 가면 김유신 장군이 칼을 내리쳐 바위를 잘랐던 단석산이 있다.
화천리에 꽃이 피면 사람들의 마음도 꽃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본 듯한 화천리는 이 땅 위에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다. 묵은 가지에 도화꽃이 붉게 피면 봄이거니 하며, 그 나무에 수밀도가 익으면 여름이거니 하며, 평화로움을 누렸으니 무릉도원 거기가 여기 이곳이었던가. 마을 앞을 흐르는 도화천을 건너 도천정사(桃川精舍)를 찾아가는 길섶에 피는 온갖 풀꽃들이 정염의 웃음을 품고 반겨 주는데 마치 꿈길만 같다. 화천리의 산자락에 자라난 작은 풀 한 포기도 자연과 속삭이는 교감이 있어 귀엽고 사랑스럽다. 천년 역사의 발걸음에 채인 돌 하나에도 조상들의 숨소리가 스며 있어 존귀하고 숭고하다.
그러나 내일의 화천리는 어제 화천리가 아니다. 전철역이 들어서고 신도시가 들어앉힌다. 화천리 전철역은 관광도시 고도 경주로 몰려오는 세계인의 발이 될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바뀐다지만 요즘은 일년 만에 문전옥답이 고층 빌딩으로 둔갑한다. 어딘가 분간조차 못하게 회색의 인공 숲이 빽빽하게 들어설 것이다.
대숲이 있는 마을
댓잎에 속살 스친 바람이 숙설거리고
이 산 저 산 목쉰 쑥국새가 울고
별일이 없습니다
전철역이 온다고 신도시가 온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봄 햇살이 쏟아지고
벽도산에 피고 지는 도화꽃이 냇물에 띄워지고
천진한 애들의 눈매가 젖도록
꽃이 너무 곱습니다
밀어붙이는 도우저의 삽날이
꽃피는 마을의 속옷을 벗기고 문명과 살을 섞고
눈물 방울 떨구고 별이 뜹니다
천도 복숭아를 따먹더니 일을 저지르고
처녀애가 쑥국새가 되어
이 산 저 산 목쉰 쑥국새가 울고
별일이 없습니다.
-졸시 <꽃내마을> 전문
하늘이 지어 준 무위(無爲)를 사람이 허무는 인위(人爲)로 땅을 바꾸어 놓는다.
이 꽃내마을은 영영 모습을 잃고 다만 떠나는 이들의 마음에 머물러 있을 뿐, 아주 다르게 낯선 땅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그날 그리움이 울컥 밀려올 제면 그 아픔에 눈을 감는다. 아주 사라져 갈 먼 풍경을 비쳐내어 읽는다. 보릿고개 나락고개를 살아온 아버지의 슬픈 근대사 속에 흑백 사진으로 바래어진 시간들이 손에 만져진다. 목화 심고 삼을 심어 무명베 삼베옷을 짓던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가 귀에 들린다. 산업화에 휩쓸려 고향을 잃었고 인정의 순수마저 잃었다. 문명의 오염에 중독된 질환이 깊어 오늘은 할머니의 약손처럼 영험한 치유를 받고 싶다.
아무 일 아닌 듯 산을 허물고 강을 메우고 유적과 유물이 파헤쳐지고 세시풍속이 파묻히는 절명의 시대 앞에 준엄한 물음의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쿵쾅거리는 기계의 굉음과 함께 파헤쳐진 자연은 묵묵히 숙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연의 숨소리가 멎고 꽃향기와 새소리도 잃게 되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파묻히고 고목이 쓰러질 때 가꾸고 이어 온 미풍양속도 그 맥이 끊기고 묵묵부담으로 매몰되었다.
도화꽃이 띄워지던 냇물에는 묵은 내력을 끌어안고 어제의 세월이 흘러갔다.
다시 화천리는 신화를 창조할 것이다.
자연과 인생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켜 세계와 한국을 다리 놓는 21세기에 감동을 더하는 신생의 관광도시로 탄생한다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 꽃내마을
박곤걸
햇빛 밝은 광명리를 지나서 화천리(花川里)는 학이 나르는 학동리를 못 가서 있다. 신선이 노니는 선도산이 있고 가까이는 천도화가 피는 벽도산이 있다. 또 더 가면 김유신 장군이 칼을 내리쳐 바위를 잘랐던 단석산이 있다.
화천리에 꽃이 피면 사람들의 마음도 꽃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본 듯한 화천리는 이 땅 위에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다. 묵은 가지에 도화꽃이 붉게 피면 봄이거니 하며, 그 나무에 수밀도가 익으면 여름이거니 하며, 평화로움을 누렸으니 무릉도원 거기가 여기 이곳이었던가. 마을 앞을 흐르는 도화천을 건너 도천정사(桃川精舍)를 찾아가는 길섶에 피는 온갖 풀꽃들이 정염의 웃음을 품고 반겨 주는데 마치 꿈길만 같다. 화천리의 산자락에 자라난 작은 풀 한 포기도 자연과 속삭이는 교감이 있어 귀엽고 사랑스럽다. 천년 역사의 발걸음에 채인 돌 하나에도 조상들의 숨소리가 스며 있어 존귀하고 숭고하다.
그러나 내일의 화천리는 어제 화천리가 아니다. 전철역이 들어서고 신도시가 들어앉힌다. 화천리 전철역은 관광도시 고도 경주로 몰려오는 세계인의 발이 될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바뀐다지만 요즘은 일년 만에 문전옥답이 고층 빌딩으로 둔갑한다. 어딘가 분간조차 못하게 회색의 인공 숲이 빽빽하게 들어설 것이다.
대숲이 있는 마을
댓잎에 속살 스친 바람이 숙설거리고
이 산 저 산 목쉰 쑥국새가 울고
별일이 없습니다
전철역이 온다고 신도시가 온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봄 햇살이 쏟아지고
벽도산에 피고 지는 도화꽃이 냇물에 띄워지고
천진한 애들의 눈매가 젖도록
꽃이 너무 곱습니다
밀어붙이는 도우저의 삽날이
꽃피는 마을의 속옷을 벗기고 문명과 살을 섞고
눈물 방울 떨구고 별이 뜹니다
천도 복숭아를 따먹더니 일을 저지르고
처녀애가 쑥국새가 되어
이 산 저 산 목쉰 쑥국새가 울고
별일이 없습니다.
-졸시 <꽃내마을> 전문
하늘이 지어 준 무위(無爲)를 사람이 허무는 인위(人爲)로 땅을 바꾸어 놓는다.
이 꽃내마을은 영영 모습을 잃고 다만 떠나는 이들의 마음에 머물러 있을 뿐, 아주 다르게 낯선 땅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그날 그리움이 울컥 밀려올 제면 그 아픔에 눈을 감는다. 아주 사라져 갈 먼 풍경을 비쳐내어 읽는다. 보릿고개 나락고개를 살아온 아버지의 슬픈 근대사 속에 흑백 사진으로 바래어진 시간들이 손에 만져진다. 목화 심고 삼을 심어 무명베 삼베옷을 짓던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가 귀에 들린다. 산업화에 휩쓸려 고향을 잃었고 인정의 순수마저 잃었다. 문명의 오염에 중독된 질환이 깊어 오늘은 할머니의 약손처럼 영험한 치유를 받고 싶다.
아무 일 아닌 듯 산을 허물고 강을 메우고 유적과 유물이 파헤쳐지고 세시풍속이 파묻히는 절명의 시대 앞에 준엄한 물음의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쿵쾅거리는 기계의 굉음과 함께 파헤쳐진 자연은 묵묵히 숙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연의 숨소리가 멎고 꽃향기와 새소리도 잃게 되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파묻히고 고목이 쓰러질 때 가꾸고 이어 온 미풍양속도 그 맥이 끊기고 묵묵부담으로 매몰되었다.
도화꽃이 띄워지던 냇물에는 묵은 내력을 끌어안고 어제의 세월이 흘러갔다.
다시 화천리는 신화를 창조할 것이다.
자연과 인생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켜 세계와 한국을 다리 놓는 21세기에 감동을 더하는 신생의 관광도시로 탄생한다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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