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돈가스라 하지 말자.

책향1 2007. 7. 6. 14:43
 

「돈가스」라 하지 말자.





서양음식이라고는 이름도 제대로 몰랐던 어린시절 필자가 "돈가스"를 먹어보기 전에 이름만 들었을 때는 ‘돈 놓고 무슨 냄새’ 맡는 음식인 줄 알았다. 왜 영국에 한자 ‘꽃부리 영(英)’자를 쓰는지 몰랐다. 언젠가 연애편지를 대필 해준 대가로 친구 녀석이 사온 맥주 3병을 보고 일본에서 30여년을 사신 아버지 왈 “비로를 사왔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어린 나의 생각에는 의문투성이였다. 누가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이러한 오랫동안의 의문점이 하루아침에 풀린 것이 필자가 비로소 대학에 들어가서 외국어를 전공하고 나서다.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한자어로 된 대다수의 외국 국가명들이 중국이나 일본에서 차음한 한자로 불리고 있다는 점을  그때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비로”는 영어 비어(beer)의 일본식 발음인 “비루”이다.


언어 관습이 어법에 틀리고 아무리 어려운 단어라도 관습화되어 버리면 우리말 또는 외래어 로 바뀐다.  요즘도 과거의 자장면처럼 어린이들의 외식의 대명사처럼  연인들의 품위 있는 외식의 대명사라 할만한 돈가스는 우리말로는 너무 어색한 말이다. 일본 강점기를 거치는 사이 서양 문물이 일본식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하나둘이 아니다. 이런 점은 우리들의 운명이라 치부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국수적인 생각으로 순우리말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이들의 말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줄만한 주위 사람들이 별로 없던 탓에 그냥 습관적으로 부르던 국적불명의 돈가스에 대한 명확한 어원을 밝히고자한다.


“돈가스”가 일본어지만 흔히 돼지고기가 주재료이므로 한자로 돼지 돈(豚)자가 붙은 줄로 알기 쉽다. 하지만 돈은 접시 위에 올린 덮밥이란 의미로 우리의 자전에는 나오지 않는 우물정(井)자 안에 점을 찍어 일본에서 만든 한자(丼) 즉 일본국자의 일본식 발음이다. 음식 자체가 돼지고기이지만 이런 의미보다는 접시 위의 덮밥이란 의미로 돈자를 붙인 것이다.


일본에서 “3대 양식”이라면 돈가스(포크 커틀릿), 카레라이스(커리 앤 라이스), 고로케(고르킷)라 한다. 이중 "돈가스"는 675년 덴무(天武) 왕의 불교윤회관에 따라 엄격히 살생을 금지한 이래 1200년 동안 육고기를 먹지 않다가 서양문명을 줄기차게 도입하던 당시의 왜소한 체격과 체력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한 메이지(明治) 왕이 1872년 직접 육고기와 우유를 먹으며 장려 운동을 펼치면서 만들어진 일본화한 양식이다. 돈과 포크 커틀릿(pork cutlet)의 일본식 표기인 가쓰레쓰에서 줄인 말이다. 가쓰가 일본어의 이기다(勝)란 말과 동음이므로 시험철의 수험생들이 자주 먹게 되어 널리 전파되었다. 일상용어가 음식 이름과 같아서 대리만족을 즐기는 점은 일본에서  애기 백일상 등에서 축하하는 말로 "오메데 다이(도우)"라고 하고 "다이"는 물고기  도미이므로 도미를 음식상에 내는 경우와 같다.  일혼양재(日魂洋裁)의 결정체로 불리는 돈가스가 탄생한 것은 1921년 고교생 나카니시 게이지로에 의해서 였다.


돈가스의 원조는 다소 퍽퍽한 맛이 나는 오스트리아의 전통음식 슈니첼이다. 순 살코기로 밀가루 등으로 옷을 입혀 튀겨내어 채소나 과일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동부 유럽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 돈가스를 즐기면서 이 말에 대한 어원까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귀찮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어린이들의 호기심도 채워주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차제에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다. 따라서 “돈가스”라는 의미도 모르는 말을 줄 창 쓸 것이 아니라 다소 어색할지 모르지만 “돈육튀김덮밥”이나 그대로 “커틀릿”(cutlet)으로 하면 어떨까 비오는 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