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과 인터넷
“세상이 망하려면 먼저 말이 망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말과 글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네 가지 대죄(大罪)에 넣어 엄히 벌하였다. 또 부처같이 자비로운 분도 악한 혀를 벌하기 위해 발설지옥(拔舌地獄)을 만들었고 우리 향당(鄕黨)의 습속은 망발(妄發)한 입을 찢었다.”고 작가 이문열 씨는 방송인 전여옥 씨와의 신작 소설 ‘선택’의 반페미니즘 논쟁중 1997년 4월 30일자 동아일보에서 말했다.
일전에 본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글로 명예훼손으로 고발 운운하며 직접 본인을 찿아 온 몇몇 언론 종사자를 보며 이글이 문뜩 떠올랐다. 나이나 주위의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만 낸 모습이 좀 더 도덕성과 진리성이나 참을성이 요구되고 독자들 보다 지적무장이 잘 되어야할 참언론인의 모습에서 일탈한 듯 해 안타깝기도 했다.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것은 그 당사자가 그렇게 생각하면 처벌 여부나 진실성, 공익성 등과 관계없이 이론적으로는 실정법에 저촉되는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친고죄에 속한다. 이런 점이 너무도 쉽게 인간적인 면이나 여러 다른 요인은 생각하지 않고 고소만 능사라고 여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평범한 일반 시민이 일상 생활 중에 이런 법률적인 것까지 상세하게 알고 생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언론인도 일반인에게는 공적인 인물일 수 있으므로 잘못된 기사나 행동은 당연히 비판 받아 마땅하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실정법에 저촉이란 것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사람 자신의 잣대일 경우가 많다. 그 당사자가 법관이 아닌 이상 실질적으로 무엇이 명예를 명확하게 훼손했는지 여부와 그 당사자 자신의 신분의 적시 여부나 글 내용의 진실성, 공익성 등이 처벌 여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일반적으로 여겨진다. 그 당사자의 신분이라면 정치인이나 언론인, 공무원 등 공적인 사람일 경우 미국에서는 법률로써 그 비판을 허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익성을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해자의 명예를 중시해야하는가 인터넷의 특성을 존중해야하는가는 사회 공익성에 맞춰져 있다는 말일 것이다.
지난 7월 가수 문희준이 소속사를 내세워 ‘문희준 자살’이라는 등의 내용을 올린 네티즌을 상대로 고소한 일이 있다. 이에 즉각 많은 네티즌들이 ‘S.M대첩’이라며 별도로 모여 오프라인 대책모임을 연 적도 있다. 여기에는 공익성과 관련이 적어 보이는 당사자의 자살이라는 허위 사실이라든가 ‘무뇌충’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점은 분명 익명성 등을 이용한 네티즌들의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2001년 7월 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있다. 신설된 이 법에 따르면 온라인 명예훼손에 대해 최고 징역 7년 이하 또는 5천 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일반 명예훼손죄보다도 엄한 처벌이라 할 수 있다. 신속하고 광대역화할 수 있는 사이버 특성상 그렇게 되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대검 사이버 담당자들도 실토하다시피 실질적인 적발과 처벌은 무척 어려운 실정이다.IP의 추적이나 글 내용의 진실성, 공익성을 검토하면 실질적인 처벌에 무리가 따른다는 뜻일 것이다. 현재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사이버 소송 결과 구속자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무조건 형사적인 고소, 고발이 남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사이버 사범이 2000년에 97명에다 구속 27명. 2001년 231명에 구속 31명.2002년 273명에 구속 18명이라는 경찰청 통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에서 너무나 쉽게 나오는 고발운운은 어쩌면 상대방을 기죽이기 위한 한 방편으로도 보여질 수 있고 밝은 사회를 지향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자제할 줄 아는 넓고 따스한 가슴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우리 지역의 명예훼손 관련 사건은 3년여를 끌어 왔던 어떤 유명인과 언론인과의 송사 사건일 것이다. 이 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언론인과 공직자란 관계가 법률적인 판단에서 가장 우선시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공직자는 공익을 위한 언론 보도에 취약하다는 점과 공적인 큰 인물이 되려면 자기비판에 인내력이나 포용력을 보이면 더욱 듬직하고 큰 인물로 보인다.. 자기에 대한 비판에 귀가 얇아서야 큰 인물이 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보이기 십상이다. 필자가 쓴 글로 추정하여 30여 편의 출력물을 갖고 다니며 결정적인 허점이나 노리는 점이나 실수를 기다리며 벼르고 있는 모습은 공공성과 공익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이 있는 언론 관계종사자들의 올바른 처신이 아닐 것이다. 필자 역시도 이제 중립성이 요구되는 일에 많은 자제력을 갖도록 노력하며 객관성을 유지할 것이다. 형사 고발건이 일본의 몇 백배가 된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우리가 직시하여 모든 이가 아름다운 우리 지역 사회 건설을 위해 양보하고 노력하자.
기자는 기사로써 모든 평가를 받을 각오를 항상 다져야 한다. 자신에게 일어 날 수 있는 불편부당한 일은 독자에게 조용히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이해를 시켜야 본연의 임무를 다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기사의 신뢰성의 강화나 언론의 정도를 추구한다고 독자들은 믿을 것이다.
대구U대회에서 탈북자를 도와온 독일인 의사 폴리첸 씨나 우익인사들을 향해 뛰어가는 무서운 얼굴의 북한 기자는 기자라는 사실을 잊고 진실보도는 도외시하고 정치적인 잿밥에 관심이 더 큰 과실을 저질렀다. 공산국가의 기자나 출장 나온 사람 대부분 감추어진 기관원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사실을 감상적일 수 있는 통일론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 사회 작금의 실상이다. 기자가 보도보다는 다른 임무에 더 관심이 큰 일종의 포악한 해프닝으로 기사로 자신의 모든 역량이나 능력을 발휘하여 독자로 하여금 평가를 받는 일을 모르는 독재 국가 시스템의 한계를 일개 기자가 스스로 들어낸 사건으로 자유 민주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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