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주: 이글은 경남 남해군의 충무공 저몰유허지인 이락사 주변의 도로 확장으로 일부 벚나무를 베어내는 일에 관한 제가 3,4년 전에 쓴 신문기사입니다. 이락사는 남해관문인 남해대교를 지나 남해읍쪽으로 오면 오른 쪽 길가에 있고 충무공의 유해를 처음 안치한 곳으로 따라서 이락사(李落祠)라 합니다.
사쿠라斷想
사쿠라가 벚꽃을 뜻하는 말이란 것은 잘 알려진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일본말중의 하나이다. 흔히 사용하는 나쁜 의미의 일본말은 ‘곤죠’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원래 근성(根性)의 일본어로 일본말로는 나쁜 의미는커녕 좋은 뜻이다. 일에 전념하고 끈기가 있다는 말이다. 사쿠라의 경우 일본에서도 우리 말속의 함축된 나쁜 의미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국민일보 5월 3일자의 백화종 주필은 “사쿠라에 관한 추억”에서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야당 내의 강, 온파를 두고 “가장 선명한 체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쿠라가 많아 뒤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여 정치적“사쿠라”에 대한 추억을 말하면서 이말의 어원을 “일본에서 말고기를 쇠고기로 속여 팔자 (값싼 가짜인 말고기가) ‘사쿠라’가 ‘가짜’의 다른 표현이 됐다”고 했다. 본디 일본에서는 먹는 말고기를 사쿠라니꾸(櫻肉)라 불렀다. 즉, 사쿠라고기인 말고기가 사쿠라처럼 분홍빛을 띤다고 애칭으로 부른 말이다. 최근의 일본에서는 흔해진 쇠고기보다 말고기가 훨씬 비싸다. 정력제로 통하는 말고기육회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최근에 필자가 사쿠라에 대한 생각이 불쑥 난 것은 도로 확장으로 이락사 부근의 가로수문제를 여러 관련 부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연훼손 운운 하는 사실을 보고나서다. 어디서 본 관련 부서의 해명은 큰 나무는 이식을 하고 작은 나무는 없애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논쟁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필자도 무척 궁금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골프장 논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속적으로 한 쪽이 굴복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공격을 하여 치명타를 입히려는 일부의 네티즌은 문제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점은 서로에게 결국은 공리 공상으로 결말이 날 가능성이 많은 소모성논쟁으로 자제를 해야 한다.
벚꽃 가로수 논쟁에서 많은 일부네티즌들은 좋은 글을 통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알린 점은 디지털 문화의 긍정적인 면이라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이락사 부근의 벚나무는 반대하는 쪽이다. 벚나무는 일본의 상징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과거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던 어떤 일본인은 입구의 벚나무들의 장관을 보고 한 시름 놓았다고 했다. 그들은 항상 여행을 하기 전에는 사전에 여행지에 관한 지식을 알고 간다. 이미 일본에서는 독립기념관내의 처참한 고문 장면 재현과 같은 것이 알려져 위축이 되어 있었는데 입구의 자신들의 상징을 보고는 별 탈이 없을 것으로 안도한다고 했다. 그럼 그런 경우가 이락사 주위에서도 벌어지지 않는다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본 사람들은 과거 왜 경협 차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차관과 고문 재현실을 연계했는지 쉽게 알 수가 있다. 일본의 러일전쟁 영웅인 도고도 자신은 이순신장군에 비하면 하사관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다녔다.
벚나무는 일본의 상징이고 국화이다. 혹자는 일본의 국화(國花)가 국화(菊花)라고도 하나 일본 왕실의 문장이나 상징이 국화이다. 벚나무가 제주도 원산이라고 하며 역사 유적지의 벚꽃 축제나 벚나무를 옹호하는 경우는 우리 자신들의 잘못을 자위하는 듯하는 하다. 새삼 여기서 일본인들의 악행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나 의병들을 붙잡아 목을 치고 사체를 가마솥에 넣어 끓여 붙잡힌 다른 의병들에게 마시게 한 경우도 머지않은 우리 역사기록에서 볼 수 있다.
역사는 이런데 우린 여기서 벚꽃 축제도 열었다. 그 무렵 현충사가 있는 충남 온양의 신정호수에서는 장엄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눈을 부릅뜨고 전진하는 모습으로 못난 우리를 꾸짖는 듯 했다.충남 천안시가 능수버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하여 아름드리나무까지 전부 베어내고 새로운 수종을 심은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천안시는 능수버들로 상징되는 삼거리 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었다. 시내 곳곳을 찔레꽃과 봉숭아, 맨드라미, 은행나무, 조팝나무 등으로 가꾸어낸 사실은 찔레꽃 등도 훌륭한 조경수가 된다는 점을 몰랐던 필자의 무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은 일부 ‘언론’이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망스럽다.독자들의 알권리를 독자들이 특정 언론에게 부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군민을 오도하려는 처사‘는 버려야 한다. 바로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쪽 소식도 읽어내는 시기에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자기 판단에 맞는 기사만 기사화하는 것은 정보의 편식만을 강요하는 무서운 집념이다. 즉 이번의 벚나무 논쟁에서도 네티즌의 글을 인용하더라도 기자들 자신들의 논리에 맞는 글만 인용했던 점은 차라리 싣지 않은 것만도 못해보였다. 좀더 차분한 마음으로 여러 논쟁을 지켜보며, 많은 의견들이 시너지 효과로 살기 좋은 남해를 만드는데 참고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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