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고 김삿갓과 영월 대한민국 시인대회
영월 관광안내도. 인터넷 <영월군청 홈페이지>에서 인용
위사진 다음블로그 <영월 주천 고향인빌>에서 인용.
별마로에서 본 영월 시내모습. 관풍정은 그대로 인데 동강은 단종의 슬픈 얼을 감싸 안은 듯 지금도 영월을 가로질러 말없이 흐른다.
난고 김삿갓은 세상 보기 싫어 삿갓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부가 홍경래 난에 굴복한 사실을
자랄 때 듣지 못하고 조부를 성토하는 글로 향시에서 장원을 하였다. 최남단(남해군)에 사는
필자가 강원도 영월이란 말을 들으니 산간 지방 내지는 탄광지대가 우선 연상되었다. 이는
산악지대란 영월의 운명이고 필연일지 모른다. 그래서 김삿갓이 찾아 들고 고씨 동굴이 있고,
청령포가 있을지 모른다. 역설적으로 비극적인 역사 또는 세상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남아
있으므로 후세의 우리가 그 의미를 되새김질 하러 전국에서 많은 문인들이 모였다. 현대의 영월은
그런 비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숨결을 고이 안은 채 새로운 발상을 조용히 꽃 피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초행길의 영월은 멀게만 느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처녀지를 범접하기가
두려웠다. 마치 천기누설하는 기분으로 도착한 영월은 가는 이를 보듬은 듯 맛있는 밥이 익는
마을이었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는 밥익는 냄새라 했던가. 밥이 익어야 누룽지를
코흘리게도 얻어먹을 수가 있다. 준악과 명경지수, 가을 빛은 영월의 고즈녁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영월읍에 자동차로 도착하니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가 부족하지만 초행자의 통과세로 여기며
새로운 영월의 가치를 탁발했다. 너무 서민적인 회색빛 영월의 인상은 외갓집 동네에 온 듯 마음을
다 내 놓았다. 어딜가도 반기는 두터운 정은 배추전 만큼이나 두꺼웠다. 세상의 온갖 고뇌를 몰라한
난고가 왜 영월에 잠들어 있는지 그가 무덤에서 나와 말해 주는 듯하다. 늘 푸른 동강의 물결이
영월을 깊은 잠에서 깨워 지나는 나그네인 우리를 손짓하고 있었다. 마치 첫사랑의 추억처럼.
위사진 동강 어라연 모습 다음카페<천주산악회>
위사진 <우천>선생 작품
가을 빛이 마음을 담은 색이며 머지않을 소생의 밑거름이다. 가을빛이 남자라면 영월도 바로 남성미가 흘렀다. 이 가을 빛이 다가오는 희망의 씨앗으로 영월이 큰 희망으로 소생할 자양분이다.
그 군민들의 자양분이 박물관 고을 영월은 한마디로 박물관 천국으로 만들었다. 곳곳에 크고 작은 테마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문화 기행지로 제격이며 문화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문화의 힘은 무한하다. 동강사진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영월책박물관, 곤충박물관 등 박물관을 명칭으로 사용하는 데만 4곳. 단종 역사관, 김삿갓 문학관, 별마로천문대, 국제현대미술관, 묵산 미술관 등 박물관이란 칭호를 쓰지 않았을 뿐 박물관과 다름없는 곳이 아홉 군데 있다. 유장하게 흐르는 동강과서강, 그리고 주천강 양지녘에도 봄기운이 내려 앉아 산골의 봄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위 일부는 '오필승필리핀어학연수카페'에서 인용) 맨 위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월은 박물관 전시장이다. 다행스럽게 박물관들이 테마는 달리하지만 옹기종기 모여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고 있다. 이 모든 전시장을 하루에 돌기에는 따뜻한 밥한 술이알도 배불리 먹어야 한다. 참 영월에는 참 아름다운 이름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한 가지 '곤드레나물밥' 이다. 주당들은 이말이 듣기 싫겟지만 여기서는 의례히 이말을 들어야 한다. 로마법이므로.... "영월 동강나루 보리 고추장" 한번 잡숴 보시기를 권한다. 보리 내음이 솔솔나는 그맛을 이 곳 남해까지 갖고 오는 행운이 있었다. 원래 고추장을 좋아 하지만 단맛보다 토속적인 약간 거친 맛이지만 우리의 장맛은 원래 그랬다.
위 그림은 영월의 유명 전문음식점인 <청산회관> 제공 사진. 아래 일부 글 2007년 10월 11일자 <동아일보>에서 인용.
어디 한번 맛 보시죠. 그 향취가 난고 선생을 이곳까지 불러들인 건 아닌지 매우 궁금하다.
곤드레는 바람에 일렁이는 곤드레 줄기를 나타낸 의태어이고 참고로 일본어로는 구덴구덴이라 하지.
이 밥 한그릇 먹고 난고 흉내 내기는 너무 미안하다. 항상 배주렸던 난고 선생은 문전박대가 다반사였다. 배부르면 금강산 아니 난고 문학관 가는 중간에 있는 고씨 동굴을 구경하면 자연의 신비로움을 그냥 경이롭게만 볼 수 없는 원초적인 욕망이 마음 저편에서 일렁인다. 탄성을 질러야 제격일테지. 가장 필자에게 아쉬웠던 한가지. 지정 식당이 이곳이 아닌 바람에 맛보지 못했다. 에휴.이글 보시는 영월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택배로 1인분만 보내 주시라.
섶다리 다하누촌은 이름부터 아름답다. 이런 마을에 가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그래서 인지 결국 큰 일을 해냈다. 누가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지엇을까.
영월군 주천면 한적한 시골마을 장터에 조성된 한우마을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눈길을 끌고 있다. 농민을 비롯해 프렌차이즈 NH그룹과 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한 정육점, 식당 주인들이 한우 사육농가에서 고기를 바로 사들여 직접 파는 주천 섶다리마을 '다하누촌'.8월 11일 처음 개장한 1천500㎡ 규모의 다하누촌은 최근 마을 면소재지 인구보다 두 배가 넘는 하루 평균 1천700여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정육점과 전문식당도 처음 6개에서 14개로 늘어나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무엇보다 거세한 황소 한우 300g에 8천원을 비롯해 암소 300g 1만4천원, 양념 소불고기 600g 1만원이라는 일반 시중가보다 무려 4배 가량 싼 가격 때문이다.
위 사진과 아래 글의 일부 <영월군청 홈페이지>에서 인용.
영월군 하동면 진별리에 소재하고 있는 석회동굴 주굴의 길이 1,800m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동굴의 하나로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영월읍에서 동남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영월화력발전소에서 동남쪽으로 6km떨어진 남한강 상류 에 있고 난고 문하관 가다보면 이정표가 있더이다. 필자 시인대회 시간 맞추느라 이 자연의 신비를 놓친 것이 천추의 한이군. 고씨굴이란 임진왜란 당시 고씨가족이 피난하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 밖에도 이곳은 수도장 등으로도 이용되었다.
위 사진과 아래 글 일부 <별마로천문대> 홈에서 인용. 별마로 천문대 모습.
영월군 영월읍 영흥1리 봉래산 정상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천문대 모습으로 별마로란 이름은
"별(star)과 마(정상을 뜻하는 마루)와 로(한문 고요할 로)의 합성어로
오염원이 없이 고요하고 조용한 봉래산 정상에서 별을 보고자 하는 소망과 그런 순수한
마음을 공간 개념으로 표현하여 영월 별마로 천문대 특성을 은유적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별마로 천문대는 봉래산 해발 799.8m의 정상에 건립된 공립 시민 천문대이다."
이곳에 오르면 아래 보이는 속세에는 내려가고 싶지않고 영원히 별나라여행만 하고 싶다.
참고로 "마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마루'에서 보시다시피 정상을 의미하는
마루의 고어이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큼 의미부여를 억지로 한것 같아 유감이군.
굳이 고요할 "로"자에 한자의미는 넣지 않아도 될 성싶은데 넣었구만.
우리의 이두 문자체로 적은 일본 유명의 고시집인 만요슈(萬葉集)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명 중에
'마로(麻呂, 摩呂)'가 등장하는데 이는 벼슬 중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모두 한국인이다.
즉 지배게층이란말이었다.
그네들이 부르는 '도래인'이기도 하다.
왜인들은 일부 학자들만 인정하지만 왜곡 하려해도 할 수없는 역사의 진실이다.
위사진 다음카페 <모모영>에서 인용. 시인대회 식전 모습이군.
영월군 하동면의 난고 김삿갓 문학관 전경.
삿갓을 형상화하여 관람객 마음에 쉽게 인식될 수 있게 했다.
삿갓 쓰고 죽장 하나 짚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영월한 자유시인'으로 세상의 고뇌를 잊으려했던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 당대 천재시인 난고 김병연의 문학혼을 기리는 난고 김삿갓문학관과 유적지가 있는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훌훌 떠나보자. 영월읍에서 약 22km이다.
난고 김삿갓문학관은 강원도 시책 사업인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하나로 지난 2003년 10월 개관했다. 문학관에서는 난고 김삿갓 선생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1층은 기획전시실과 영상실로 기획전시실은 김삿갓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정암 박영국 선생의 연구자료 및 유물뿐 아니라 금옥(金玉), 황녹차집(黃綠此集), 동국시(東國詩), 필휴집(必携集), 해동시선(海東詩選), 대동기문(大東埼聞), 대동시선(大東詩選) 등 김삿갓과 관련된 서적이 전시되어 있으며 영상실에서는 김삿갓의 생애를 상영한다. 총 66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란만장했던 김삿갓의 생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2층은 1939년 이응수作의 김립시집 외 구한말에서 현대까지 각종 서적, 간행물, 논문,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는 난고문학실이 위치하고 있다.
또 일대기실은 김삿갓의 출생, 성장, 사망 과정 등에 대해 소개하고 김삿갓 주거지 복원 모형, 김삿갓 가계도, 김삿갓 시, 방랑생활 당시 지었던 시 등이 전시하고 있으며 자료실에는 김삿갓이 입고 신었을 법한 갓, 신발, 삿갓, 두루마기 등과 함께 팔도전도, 뮤지컬김삿갓 비디오테이프 및 각종 김삿갓 캐릭터 물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 한 수 소개하면...
담양 죽물시장에서 다 헤진 삿갓 버리고 다시 사면서 지은 시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나오는 대로
옳고그름은 따지지 말고 그저 그런대로
손님접대는 집안형편대로
물건사고 파는 것은 시세대로
만사는 다 내맘대로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위사진 다음 카페 <대한민국여기저기>에서 인용. 아래 글은 다음지식에서 전문 인용. 청령포.
청령포 나루터이군. 참담한 심정 억누르고 이 길을 지났을 단종을 생각하면 가슴을 여리게 하더군. 단종과 김삿갓 어떤 의미로 현대인의 가슴에 남을까?
청령포는 단종이 세조 2년(1456)에 노산군으로 낮추어져 처음 유배되었던 곳이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곳이다.
단종이 유배되었던 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휩쓸려, 단종은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이므로, 조정에서는 영조 2년(1726)에 일반민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하여 금표비(禁標碑)를 세웠고, 단종이 기거하던 곳을 의미하는 ‘단묘재본(端廟在本) 부시유지(府時遺止)’라는 비문을 새긴 비를 영조 39년(1763)에 세웠다.
청령포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서강의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아온다.
위사진 다음카페 <법글회>에서 인용. 아래글 <문화재정보센터>에서 전문 인용.
단종의 장릉 모습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글을 마치려고 하니 문학관 가다 본 동막골이란 간판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적지 않고서 배길 재간이 없는가 보다. 반전영화라 할 수 있는 웰컴투 동막골세트장을 가려면 영월에서 미탄으로 가는 지방도에서 샛길로 들어서야 한다. 사실 샛길이라기보다는 농로에 가까운 길이다.
위 사진 영화 <웰컴투 동막골> 홈페이지에서 인용.
너무나 긴 글을 읽어주신 분께 감사 드린다. 사진과 글을 사전 양해도 얻지 못하고 올린 점 우선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위 사진 <우천> 선생 작품. 이 가을이 모든 분께 화사함과 보람과 희망을 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아래 글은 다음카페<시를 사랑하는 서정마을>에서 인용
김삿갓 만나러 가는 길
이효녕
구절초 꽃이 바람결에 날리며
거리에 풍경을 바라보네
꽃잎 몇 겹 겹쳐도 내일의 생시 같은
꽃잎들의 그늘 뒤편
달처럼 떠오른 햇살이 침을 주네
아름다운 꿈을 이야기 하지 못한
바람이 흐느끼는 한 낮
꽃잎들이 땅 위에 구름으로 뜨네
미소의 끝자락에서 목말라 서성거리던 그리움
어딘가로 사라진 기억의 흔적
영겁의 인연 속에 꽃잎이 핀 듯 하고
보는 이 없지만 시(詩)로 열린 길
또 한 생명의 흔적을 엮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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