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이야기
일전에 지인인 일본여성이 필자에게 “한국드라마에서 왜 라면을 냄비뚜껑에 올려서 먹는가?”고 물었다. “그건 한국인들의 조급성 때문이야. 얇은 냄비 뚜껑에 올리면 빨리 식기 때문”이라 대답한 적이 있다. 라면의 원조국 사람이 한류 영향으로 한국적인 시시콜콜한 모습도 알고 있게 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의 힘이다. 곤로(석유풍로)와 양은 냄비는 라면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의 첫 머리이다. 특히 객지에서 자취를 해본 사람들은 더욱 실감적으로 느끼며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다가온다.
“제2의 쌀”로 불리는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일본이다. 1958년경부터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라면 개발에는 2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라면이 중국의 건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중일전쟁 때 관동군이 중국인의 전쟁 비상식량인 건면의 맛을 보고 종전 후 일본에서 건면을 식용유지로 튀겨서 보관하기 쉽도록 포장하고 별도의 수프를 개발함으로써 라면이 되었다는 설이다. 일본인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설이 있다. 얼마 전 작고한 닛신(日淸)식품 회장인 대만 출신 안토 시로후쿠(安藤百福)가 사업에 실패해 자살을 염두에 두고 바닷가로 나가 포장마차에 들리고 이때 포장마차 주인이 면을 기름으로 튀기는 것을 보고 라면을 만드는 방법을 착안하였다는 것인데, 즉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 기름에 튀기면 국수 속의 수분은 증발하고 국수는 익으면서 속에 구멍이 생기는데 이 상태로 건조시켰다가 필요할 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작은 구멍에 물이 들어가면서 본래의 상태로 풀어지게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일본어 라멘(ラ―麵)은 튀김 면을 의미하는 중국어의 리오미엔(老麵)에서 취음했다. 어원을 보면 후자가 라면 개발의 일반적인 정설로 보인다. 라면이 일본에서 만들어질 당시 담백한 음식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식성을 감안하여 순한 맛을 내되, 당시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지방, 단백질 결핍이 심한 점을 감안해 닭기름에 튀기기로 하였다. 처음엔 수프가 따로 없고 면에 양념 국물을 가미해 튀긴 형태였지만, 치킨 라면은 1958년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본의 밤거리에는 라면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대거 등장하여 서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엄청난 소비량에 힘입어 개발자인 안토를 갑부로 만들었다. 그 해 가을 국수발에 간단한 양념국물을 가한 아지스케면(味附麵)을 “끓는 물에 2분”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판한 것이 그 효시이고, 1959년 에스코크등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라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라면은 면 자체에 양념을 가한 것으로 시일이 경과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어 1961년 명성식품에서 현재와 같이 스프를 분말화하여 별첨한 형태의 라면을 생산하게 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라면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독특한 소비자 중심주의에서 태어났지만, 국물 맛에 지방마다 나름의 특색을 가미하는 기술도 보여 주었다. 오늘날에도 돼지고기, 닭고기 뼈 수프, 미소(일본식 된장), 간장 등 국물 맛을 내는 주재료에 따라 규슈, 홋카이도, 간토 지방의 라면 맛이 다르다. 일본 요코하마에는 라면 박물관이 있으며, 박물관 지하 식당가에는 전국에서 엄선된 8개의 유명 라면집들이 위치해 저마다 특색 있는 맛을 자랑하고 있다. 통상 일본여행을 할 때 라면만 먹는 일본인들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여행객들에게는 부담스럽다. 그 이유는 라면 값이 우리와 비교할 때 만만치 않을뿐더러 단무지도 따로 돈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라면이 등장한 때는 1963년 9월이다. 당시 콩기름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삼양제유의 전중윤 사장이 우연히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던 중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국내 식량 자급문제 해결이 시급함을 깨닫고 일본에서 본 라면이 적절한 대용식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국내에 도입하였다. 하지만 국내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의 출시될 때 처음에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담했다. 그 때 사람들은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라면 값은 10원이었던 데다 밀가루 음식이었고 맛 또한 싱거웠기 때문이다. 일설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까지 전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맛을 좀 더 맵게 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마늘, 고추 등으로 수프를 보강한 뒤부터 점차 매출이 늘어났으며 유사업체가 난립하게 되었다. 오늘날 라면은 동양에서 주로 소비되지만 인스턴트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서양에서도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데, 물론 서양의 라면은 일본의 싱거운 맛이나 우리나라의 매운 맛과 달리 그 지역에 맞게 현지화 되어있다. 젓가락을 잘 쓰지 않는 서양에서는 플라스틱 포크로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면발이 짧아졌으며,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넣지 않은 라면도 나왔고 국물 대신 크림소스가 들어가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첨가물의 종류를 달리하는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우리만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처럼 라면은 소비자의 구미에 알맞게 변화를 해 가면서 점점 그 소비량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에서의 라면의 위상은 대단하며 우리의 중요한 식생활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소비에 있어서 2005년 기준으로 연간 1인당 라면소비량이 75개에 달하였는데, 이는 라면을 먹지 않는 계층의 인구를 제한다면 실로 엄청난 량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과 소비가 세계 2위이다. 한국인들이 라면을 좋아하는 것은 특유의 조급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김치의 존재가 라면 소비와 직결되어 있는 듯하다. 일본에서도 라면과 김치를 함께 파는 가게가 등장했지만 김치와 라면 맛의 조화는 한국인이 아니면 제대로 알기 힘들다. 라면 1개의 길이는 약 49m로 면모양은 구불구불하게 쌓인 사각형(또는 원형)으로 되어 있다. 라면의 모양이 그런 이유에 대하여는 우선 라면을 만들 때 보관상의 변질을 막기 위하여 일시에 면의 수분을 증발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면을 튀길 때 기름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곡선으로 만들었다. 요리 전 파손이 잘 안 되게 하는 기능이 있으며, 만일 파손 시에도 그 모양이 사납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라면을 조리할 때 그런 공간을 통하여 뜨거운 물이 들어가 면을 전체적으로 동일한 온도로 익혀 그 맛을 좋게 하는 기능이 있다. 흔히 라면의 모양에 대한 이유로 더 많은 양을 담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의견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상식적으로 볼 때 직선으로 차곡차곡 쌓는 게 공간이 생기지 않으므로 면의 양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고, 또한 알량한 상혼으로 볼 때도 외형의 부피보다는 실제의 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라면이 몸에 해롭다고 하는 것은 많은 방부제와 기름의 산화성 때문이다.
일단 익힌 밀가루 음식을 오래 보존하려니 방부제를 많이 써야하고, 기름에 계속적으로 튀기는 과정에서 기름의 산화를 막는 또 다른 첨가물들이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별로 좋을 것이 없다. 일반적인 고열량 외에는 비타민 등이 부족하므로 김치, 계란을 같이 섭취하고, 국물은 과도한 염분으로 인해 가능하면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짜게 먹는 습관이 각종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나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체 내 전해질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 나트륨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금으로 치면 1.3g정도다. 현재 한국인들은 약20g정도를 평균적으로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 5g(약 찻숟가락 1개 분량)을 넘어서면 몸에 해롭다고 본다. 라면 1개당 나트륨 함량은 거의 대부분 1000~2300mg 사이다. 성인 1일 나트륨 권장량이 3,450mg이므로라면 하나 먹으면 반 이상의 나트륨을 먹게 되는 셈이고 김치를 더하다면 지나치다.라면 먹을 때 스프를 반만 넣거나 다 넣어면 국물을 다 안 마시는 방법이 좋다. 인스턴트식품이 우리 몸에 좋은 것만은 아니고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가능하면 자연식품이나 슬로 식품을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
'책향의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화이팅’과 파이팅 (0) | 2007.07.23 |
---|---|
‘화이팅’과 파이팅 (0) | 2007.07.22 |
[스크랩] 대선후보 개인자료 성역인가? (0) | 2007.07.18 |
대선후보 개인자료 성역인가? (0) | 2007.07.17 |
산문 넘어 휘적휘적 걷더라도 (0) | 2007.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