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구로다 가쓰히로,그는 누구인가

책향1 2007. 7. 11. 16:20
 

구로다 가쓰히로, 그는 누구인가.


한국 사람들이 일본 성씨 구로다(黑田)란 말을 들으면 젊은층에서의 연예인을 제외하면 우선 3명이 연상된다. 일본의 보수논객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과  후쿠오카성의 영주로서 후쿠오카 성을 쌓고 임진왜란 때 천주교 신자 중심의 1만 1천명의 제3군을 이끌고  다대포를 출발하여 김해, 한성과  황해도 방면을 유린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함께 조선을 재침략한 구로다 나가마사 (黑田長政 ; 1568~1623)이다. 또 다른 인물은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로  일본의 강압 아래서 맺어진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의 일본 대표이다.

 일본 정부는 측량을 빙자하여 군함 운요호(雲揚號)를 조선 근해에 파견하여 부산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해로측량과 아울러 함포시위를 벌였다. 1876년 정한론이 대두되던 일본 정부에서는 전권대신일행을 조선에 파견하여 운요호에 대한 포격을 힐문함과 아울러 자신들이 미국에게 당한 것을 흉내 내어 개항을 강요하며 맺은 조약이다. 이들 3명의 관계는 필자가 알 수 없다. 다만 3명 모두 시대를 달리하지만 일본 국익을 위해 헌신하고, 무자비한 독설과  거침없는 행동이 공통점이다.

구로다 지국장은 지난달 30일 산케이신문에 게재한 ‘일본여성은 조심을’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며칠 전 일본 유학생인 사가와 준코 씨가 KBS 2TV 오락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대학 강사에게서 ‘자신과 자 주면 성적을 좋게 주겠다.’고 들은 발언을 폭로해 큰 뉴스가 됐다”, “일본 여성들이여, 낮에도 밤에도 한국남성들을 조심해라” 며 일본 여성들에게 자극적인 용어를 구사해 한국 남성 경계령을 내렸다.

구로다 지국장은 일본 여성들에게 “한국 남성의 ‘들이대기’는 (낮뿐 아니라) 저녁에도 조심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한국 남성들은 사가와 준코 씨 예에서 보듯 낮에도 성희롱을 하지만 밤에는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더욱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고 최근의 한류 영향으로 일본 여성들의 한국 남성 선호에 찬물을 끼 얹을 의도로 해석된다.

그는 이 말 뿐만 아니라 최근 법원에서 표절 판결이 난 전 KBS 동경 특파원 전여옥 씨가 1994년 쓴 「일본은 없다」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한국에 대해)이런 식의 책은 몇 권이라도 쓸 수 있다.”고 히죽거렸다. 2005년 3월 17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손석희 아나운서와 독도 문제 토론에서 망발을 했다. 최근 필자가 확인 한 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이지스 함을 보유했다고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좋아 하고 있을 때 그는 산케이 신문에 “(미국이 한국에 위성정보제공을 거부해서) 프랑스에 요청했다.”고 했다. 또 조선 통신사에 관한 글에서 그는 "통신이라는 말은 믿음(信)이 통(通)한다 는 뜻"이라고 전제하고 우리나라의 기록에 “왜인”이라고 끝까지 자신들을 지칭했다고 당시 조선인들의 이상한 우월감의 표현 정도로 묘사하면서 끝내 일본 통신사는 조선 땅을 밟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몽골의 일본 침략에 대해 해전에 익숙치 않은 몽골을 고려 해군이 도운 사실을 근거로 (한국은) 일본에 대해 "비수(匕首)"라 했다. 반면 한국의 통일을 일본이 방해한다는 의견에 대해 "통일 한국은 국력이 일본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럴리 없다"고 했다. 최근 그는 김구라, 지상렬, 우승민이 진행하는 XTM 시사버라이어티 ‘도와주십쇼(Show)’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는 가난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구로다 가쓰히로는 1941년 오사카 태생(원적은 규슈 가고시마현)으로 교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교도 통신사에 입사하여 연세대학교의 한국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를 공부하였다. 그는 동포가 많은 오사카에서 학창시절 고물을 줏어 동포 가게에 팔기도 했다. 그 후 교도 통신사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하다 1989년부터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서강대 겸임교수로 일하면서 '일본 문화의 이해'라는 강의를 하였으나 2005년 4월에 취업비자를 취득하지 않은 채 강의를 하다 적발되어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그는「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1983. 모음사), 「구로다 기자가 한국을 먹는다」( 2001. 월간조선사), 「좋은 한국인 나쁜 한국인」(1994. 고려원) ,「판문점의 벽은 무너질까 」(1990. 청계연구소출판국) 등 한국에서 5,6권의 한국관련 책을 발표했고, 일본에서도 20여권을 출간했다. 그의 한국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 교묘한 우월감과 한국사회의 치부를 들어내 일본 내 혐한론자 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책 중 초기에 출간 된 것부터 점점 자신감을 더해 노골적으로 한국 사회를 조롱하는 듯 하다. 일부 내용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알려주기도 하나 그 근저에는 일본인들의 교묘한 우월감의 표출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해서 유명인이 되었던  전남대 일문과 전 초빙교수였던 미즈노 �페이(水野純平)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철저한 왜곡논리의 반한 분자가 된 사실을 보면 그들의 속내와 표변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 ‘도와주십쇼’는  미즈노 �페이 교수를 일본에서 만나 인터뷰를 시도했다. 현재 혹카이도 산업 대학에서 한국문화 등을 가르키는  미즈노 교수는 한국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으면서 “이제 나는 더 이상 한국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인터뷰하려면 시간당 2만엔을 내라. 공짜는 안된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철저한 다테마에에 전국민이 속아 넘어 갔다.

또 다른 주한 일본경제인이던 이케하라 마모루(池原 衛)는 자신의 저서인 베스트 셀러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에서 한국의 경쟁력있는 상품은 '리니지 게임'과 '김치'밖에 없다며 한국문화 씹기에 바빴다. 그는 1999년 백범기념관을 방문하여 성금을 내기도 했다.

공식적인 정보 기관이 없고 '내각정보조사실'밖에 없는 일본은 대사관과 현지 특파원들이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한국 내에서도 주한 일본대사가 언론사 특파원들과 주례 회동을 하면서 고급 정세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재 명분으로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하는 일본 언론의 특파원들이다.

한국여인과 결혼한 시노하라 마사토(篠原昌人)후지 TV 전서울 지국장은 1990년 5월부터 3년 간 국군기무사 소속의  해군 소령한테서 38건의 군사기밀을 빼내 이중 27건을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정기적으로 넘겨주었다. 당시 그는 그 소령으로부터 ‘한반도내 지대공 미사일 배치현황’ , '독도 방어계획'등의 2급 군사기밀 등을 넘겨받아 일본 군사전문지에 기고했으며 ‘걸프전과 한국 안보연구’, 대구 공항을 직접 찍은 사진  등 3급 군사기밀 등을 빼내는 등 취재행위를 벗어난 간첩행위로 구속되었다.

 근세까지 간첩 또는 외국 앞잡이들의 피해가 극심했던 식민지 경험국가인 우리나라는 간첩행위자에게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는 1994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관대한 선고를 받고 강제 퇴거되었지만 그 서류를 받은 일본 무관 2명은 어쩐 일인지 무사하였다. 구로다 씨도 언론인 탈을 쓰고 자국 이익만을 위한다면 앞으로 시노하라 씨처럼 간첩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쩌면 일본 국익을 대표하고 한국인의 자부심을 폄하하는 대변인으로 신종 간첩일 수도 있다. 그는 2006년 10월 언론인으로 보이는 분과의 대담에서 그는 "내 칼럼이나 말과 관련해 한국 언론이 악의적으로 써버리는 경우가 있다.", "산케이를 극우로 생각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라고 했지만 한국 사회의 일부 문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의도적으로 한국인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어 대일 문제 접근에 한국 입장의 도덕성과  대일 협상력의 저하를 노린다. 

동시에 일본 우익의 배설구로 일본 정부와의 유효적절한 역할 분담에 따른 중책을 수행하는 듯한 모습이다. 유사 이래 이어져 내려온 왜구들의 노략질에 진절머리가 난 한국인들이다. 지금도 그들은 위안부 문제에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명성황후를 살해하고도 낭인들 짓이라며 일본 정부의 계획이었음을 부인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민간인들과의 역할 분담으로 정부가 하기 민망한 짓을 민간인들이 적극 대행하게 하고 끝내 그 책임을 회피한다.

일본에 대해서 애증이 교차하는 느낌이나 표현들이 많다.  ‘미워하지만 본받을 점이 많다'는 말이 그 중 한가지이다. 지일 인사들은 한국이 일본으로 부터 배운 것은 "화투와 다꾸앙" 뿐이라 했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구로다 씨나 이케하라 씨의 글 내용처럼 우월감과 열등감이 그들의 이중성과 함께 동시에 교차하는 듯 하다. 그들의 이중성은 베네딕트 여사의 「국화와 칼」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이승만 전대통령은 1939년 겨울부터 1941년 봄까지 거의 1년 반 동안 미국에서「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를 저술했다. 이승만은 이 책에서 일본이 세계제패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에 도전할 것을 예언하면서, 미국이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힘으로 일본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것이 지금의 세계대전의 기원이었다고 말하고, 그렇게 된 데에는 1882년의 조미 수호조약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1941년 7월에 책이 출판되자 「대지」의 작가 펄 벅은 “무서운 책”이라고 격찬했다. 전쟁을 선동한다고 비방하던 미국인들은 다섯 달 뒤에 진주만공습이 있자 이승만을 “예언자”라고 말했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미국인들이 앞에서 허리를 굽신거리는 일본인들에게 속지마라“ 고 했다.

 얼마 전 한국인과 아시아인들이 보란 듯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의 미 의회 통과를 앞두고 부시에게 직접 사과하며 조아렸다. 고이즈미(小泉) 전 총리는 부시 대통령 앞에서 미국 대중 문화의 우상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흉내 내기도 했다.

  이 사건이 그들의 이중성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약자가 절규하는 사과요구는 못들은 체하고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강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중성이 여실히 나타났다. 일부러 고유의 이중성을 발휘하여 약자에게는 모욕감을 안겨주고 있다.

과거 경제 협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본의 정치인은 어릴 적 한국인에게 얻어맞은 악연을 내세울 때가 있었다. 구로다 씨도 고물을 동포에게 팔 때 한국인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생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구로다 씨도 특유의 이중성으로 지한파로 행세하면서 일본 내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하고 한국에 대한 엉터리국가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아베나 고이즈미, 그가 노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인들의 굴복이거나 아니면 친일세력의 집권일지 모른다.

중국지도자의 지적처럼 오국주의(誤國主義)가 일본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의 장래는 없다. 국익을 우선한 일본 언론들이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6월 24일 1백6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 세계언론자유지수’ 보고서에서 일본의 경우 점증하는 민족주의 탓에 언론 자유도가 14단계나 하락한 51위로 추락했다. 반면 한국은 작년에 비해 3단계 오른 31위를 기록, 아시아권에서 뉴질랜드(18위)에 이어 가장 언론자유를 누리는 국가로 분류됐다.

과거 미국 언론들이 국익보다 진실 보도를 앞세워  니카라과 우익 콘트라 반군과 칠레 우익 쿠데타를 지원한 네오콘에 대한 보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일본의 오국주의를 막는 길이다. 이런 사실을 2005년 4월 20일 최고 권위의 일본기자 클럽 상까지 수상한 구로다 씨는 제대로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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