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장면과 “오뎅”

책향1 2007. 7. 8. 10:22
 

자장면과 “오뎅”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읍으로 다니자 색다른 맛을 느낀 음식이 이 두 가지다. 하굣길에 읍 극장 밑에서 팔던 오뎅에 넋이 나갔다. 5원인가 하던 오뎅을 사서 찍어먹던 그 달작지근하던 왜간장에 더 정신이 팔렸다고 해야 정확하다. 겨울이면 김치와 된장밖에 없던 반찬은 투정할 여유도 없었지만 그래도 멀건 된장국 속의 콩덩어리를 먼저 먹겠다고 형과 숟가락으로 경쟁하다 꿀밤도 맞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상도 음식은 매우 짜고 매웠다.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으므로 색다른 음식의 맛을 전혀 몰랐던 어린 시골아이가 오뎅에 찍어 먹던 달디 단 왜간장은 쉽게 말해 환상이었다. 중학 1학년 여름 방학에 처음 맛본 자장면은 세상에 이런 맛도 있구나 하며 감동(?)받았다. 아직도 어설프게 젓가락으로 먹던 모습을 본 주인 아주머니가 곱게 면을 비벼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뎅을 처음 먹던 그날 그 간장 맛에 반해 한개 값으로 왜간장을 넣은 오뎅국물 한 솥을 다 퍼먹고 입이 데여 저녁을 먹지 못했으니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기가 힘든 모습이다. 

 아이들은 자장면과 오뎅을 좀 하찮은 음식이나 간식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과거에도 주식은 아니었다. 둘 다 외래음식으로 자장면의 경우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개선 발전하여 한국적인 음식으로 변모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고 중국본토의 자장면 보다 더 맛이 있다. 재중동포인 마중가 교수도 자신의 저서인「중국인과 한국인」에서 인정했다. 실제 짜장면으로 쓰고 읽히지만 자장면으로 쓰고 읽어야 한다. 중국의 현지 원음은 자짱에 가깝다고 했다. 이는 지난 1989년 외래어 표기법에 중국어가 포함되면서 '짜장면'의 표준 표기법이 '자장면'으로 정해진 가운데 최근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인 57% 가량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관행대로 '짜장면'으로 표기법을 바꿔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에 있던 화교들이 차별받았다며 외국으로 이민 가서도 자장면을 만드는 경우가 있고 한국 여행객들이 그곳에서도 반길 정도이다. 과거 아시아권에는 유일하게 화교촌이 없다고 그 차별의  반증으로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무렵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외국인의 부동산 구입이나 선거권 행사가 자유롭지 않았다.

과거 어린이들 외식의 대명사이던 자장면은 1882년 임오군란 뒤에 1883년 청나라 군대를 따라온 산둥(山東) 지방 출신들이 1884년 설치된 인천의 조계지에 들어오면서 “공화춘”이란 중식당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둥지방 음식인 탓에 그 지방 출신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음식이지만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상하이 지방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으므로 자장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뎅은 이제 '다른 나라 음식이다'라는 거부감이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부산오뎅'을 오뎅의 원조로 생각하여 우리나라가 오뎅의 종주국임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의 서민 음식으로 깊게 뿌리내린 이 오뎅(お田)의 종주권은 유감스럽게도 일본에게 있다. 가까운 중국이나 대만에도 '오렝(黑輪)'이라는 이름의 오뎅 요리가 있지만 이는 통상적인 중국이 탄생지가 아닌 식민지였기에 일본이 전한 음식 문화의 하나가 뿌리내린 변종으로 보인다.

어린아이의 입을 데게 한 오뎅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묵과 함께 국물의 맛을 중요시하지만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국물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또 우리나라의 오뎅은 주로 꼬치 어묵 자체를 지칭하고 그 맛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지만 일본 오뎅은 국물을 의미하고 무, 달걀, 다시마, 어묵, 두부, 문어 등등 갖가지 재료를 첨가할 수 있어 재료에 따라 맛과 종류가 달라진다. 때문에 일본에서 오뎅은 전국적으로도 지역의 특색적인 재료나 맛을 살린 것이 수 백 종이나 된다.

오뎅의 어원은 덴가쿠로 미화어인 접두사 오(お)와 덴가쿠(田樂)의 덴(田)이 결합한 말로 두 가지의 뜻이 있고 한 가지는 모심을 때 부르는 노래이고 하나는 음식이름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로마치(室町 · 1338∼1573) 시대에 모양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오늘날의 오뎅과는 전혀 무관한 듯한  '두부 된장 구이'가  여러 가지 재료에 국물을 내고 맛을 내는 오늘날의 오뎅으로 어떻게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산초(山椒)의 순을 으깨어 섞은 된장을 두부에 발라 구운 음식" 으로 사전에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된장구이 두부가 오뎅의 원형로 보인다.

말하자면 덴가쿠는 된장을 발라 구운 음식이었으며 처음에는 두부를 재료로 하던 것이 점차로 다양하게 변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일본의 오뎅은 술을 같이 파는 전문 오뎅점에서 각광받는 음식으로 변모했다. 그 옛날 두부를 꼬챙이에 끼워 구워 먹던 '두부 된장 구이'가 오늘날의  오뎅 요리가 된 것처럼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 오뎅은 보다 고급스럽고 한편으론 보다 서민적인 맛으로 지금도 끊임없이 변모해 가고 있다. 따라서 길거리에서 파는 오뎅을 "저게 오뎅이냐"고 반문하던 일본인의 표정이나  일본의 과거가  남아 있다는 말에 조금 수긍이 갔다. 

“오뎅”이란 말 자체가 우리말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 “어묵” 이나 “꼬치 어묵”이 올바른 표현이다.

 


2007.7.8. 남해군향토역사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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