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긴 하지만] 후기
필자주: 전편에 이은 후편이고 그냥 재미로 읽으주십시오.
언젠가 읽은 한수산 씨(?)의 단편 “여자줍기”(?)는 젊은이들의 “여자 꼬시기”에 대해 재미있게 묘사했지요. 창작과 비평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시를 보고 온 편지에 답신을 하는 계기로 오랫동안 서신교환을 서울 처자와 했죠.
당시 전 대학 입시 준비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을 때 시작하여 본격적으로는 신입생일 때 휴교령으로 1년을 쉬면서 했다우. 그러다 어느 날 대구와 서울의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습죠. 대전 역전 왼쪽 지하 중앙다방이 만남의 장소였죠.
그래서 만나고 계룡산 동학사로 오후에 버스를 타고 갔고, 동학사 앞의 상가지대에서 막걸리를 먹다가 살짝 주인장에게 계룡산을 넘어가면 몇 시간 걸리느냐고 물어봤죠. 2시간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속셈을 감추고 산 넘어 공주에서 서울행 막차시간을 2시간을 넣어 계산을 하니 빨라도 4시 정도에 출발해야겠기에 시간을 끌다 드디어 그때쯤 계룡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그해 8월, 1달가량 내내 비가 오고 무덥기 까지. 아무런 장비도 없이 하이힐을 신은 그녀와 함께 피곤한 줄도 모르고 남매탑을 충분히 구경하니 날이 어두워지던군요. 아 그런데 헬기장을 내려서니 앞도 보이지 않고 너무 컴컴한데 그녀의 하이힐의 뒷축마저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아뿔싸 참 큰일 났구나 싶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죠(이 엉큼한 도둑이). 의외로 밤의 산길은 보통이 아니더군요. 경사길 돌들 등등
그래서 전 즉시 운동화를 벗어 신기고도 맨발로 룰루랄라 잘도 내려왔다우. “갑사가는 길”이란 수필이 과거 고교 2학년 국어책에 있죠. 거기서는 그렇게 낭만적인 구도의 길이 밤에는 어쩜 저승 가는 길 같기도 하고 양말만 신은 맨발로 바위를 차기도 하고 밟기도 하고 가시에 찔리기도 했지만 참았죠. 남자 분들은 그 기분 잘 아실 겁니다.
갑사 쪽에 내려오니 밤 10시 경 다된 밥(?)이였죠. 날은 어둡고 막차는 이미 떠나버렸고 잠자리를 찾으니 딱 한곳에 불이 켜져 있는 집으로 들어갔죠. 일반 민가에서 그냥 하는 민박집. 그 땐 정비가 되지 않았고 돌담 집인 그 집 앞에는 소주병을 성인키만큼 쌓아둔 기억들... 주인이 자는 옆방에 들어가서 밥을 달라니 그 야밤에도 주인장이 장작으로 밥을 해서 갖고 오고 절인 깻잎과 호박나물로 함께 맛나게 잡쉈죠. 주인장의 참 순박했던 모습이 오랜 기억과 함께 살아있죠.
그녀나 저나 그때까지 제대로 이성과 뽀뽀도 못해본 처지였으므로 참 어색했죠. 키스를 해도 그녀는 입만 크게 벌리고 하하 또 저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조급성을 발휘해서 고상함도 없이 갑자기 와락 안고 (거칠게) 뭐 제대로 그렇게 저렇게 되었답니다.(상상만 하시고)
그 후 그녀는 저에게 그렇게 거칠었다고 합디다. 다 경험부족 탓이죠.
2002년 쯤 그곳을 지나다 들러봤죠. 그 민박집을. 관광지 정비로 집이 싹없어졌지만 많은 보상을 받은 주인장 밑의 상가지역에서 큰 식당을 하더군요. 그 때의 기억을 저 혼자만이 하는 줄 알았더니 그 분도 그 때의 일을 잘도 기억하시더군요. 결국 저의 갑사 가는 길은 그렇게 험했답니다. 해탈의 길은 고통이지요.
필자주: 전편에 이은 후편이고 그냥 재미로 읽으주십시오.
언젠가 읽은 한수산 씨(?)의 단편 “여자줍기”(?)는 젊은이들의 “여자 꼬시기”에 대해 재미있게 묘사했지요. 창작과 비평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시를 보고 온 편지에 답신을 하는 계기로 오랫동안 서신교환을 서울 처자와 했죠.
당시 전 대학 입시 준비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을 때 시작하여 본격적으로는 신입생일 때 휴교령으로 1년을 쉬면서 했다우. 그러다 어느 날 대구와 서울의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습죠. 대전 역전 왼쪽 지하 중앙다방이 만남의 장소였죠.
그래서 만나고 계룡산 동학사로 오후에 버스를 타고 갔고, 동학사 앞의 상가지대에서 막걸리를 먹다가 살짝 주인장에게 계룡산을 넘어가면 몇 시간 걸리느냐고 물어봤죠. 2시간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속셈을 감추고 산 넘어 공주에서 서울행 막차시간을 2시간을 넣어 계산을 하니 빨라도 4시 정도에 출발해야겠기에 시간을 끌다 드디어 그때쯤 계룡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그해 8월, 1달가량 내내 비가 오고 무덥기 까지. 아무런 장비도 없이 하이힐을 신은 그녀와 함께 피곤한 줄도 모르고 남매탑을 충분히 구경하니 날이 어두워지던군요. 아 그런데 헬기장을 내려서니 앞도 보이지 않고 너무 컴컴한데 그녀의 하이힐의 뒷축마저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아뿔싸 참 큰일 났구나 싶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죠(이 엉큼한 도둑이). 의외로 밤의 산길은 보통이 아니더군요. 경사길 돌들 등등
그래서 전 즉시 운동화를 벗어 신기고도 맨발로 룰루랄라 잘도 내려왔다우. “갑사가는 길”이란 수필이 과거 고교 2학년 국어책에 있죠. 거기서는 그렇게 낭만적인 구도의 길이 밤에는 어쩜 저승 가는 길 같기도 하고 양말만 신은 맨발로 바위를 차기도 하고 밟기도 하고 가시에 찔리기도 했지만 참았죠. 남자 분들은 그 기분 잘 아실 겁니다.
갑사 쪽에 내려오니 밤 10시 경 다된 밥(?)이였죠. 날은 어둡고 막차는 이미 떠나버렸고 잠자리를 찾으니 딱 한곳에 불이 켜져 있는 집으로 들어갔죠. 일반 민가에서 그냥 하는 민박집. 그 땐 정비가 되지 않았고 돌담 집인 그 집 앞에는 소주병을 성인키만큼 쌓아둔 기억들... 주인이 자는 옆방에 들어가서 밥을 달라니 그 야밤에도 주인장이 장작으로 밥을 해서 갖고 오고 절인 깻잎과 호박나물로 함께 맛나게 잡쉈죠. 주인장의 참 순박했던 모습이 오랜 기억과 함께 살아있죠.
그녀나 저나 그때까지 제대로 이성과 뽀뽀도 못해본 처지였으므로 참 어색했죠. 키스를 해도 그녀는 입만 크게 벌리고 하하 또 저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조급성을 발휘해서 고상함도 없이 갑자기 와락 안고 (거칠게) 뭐 제대로 그렇게 저렇게 되었답니다.(상상만 하시고)
그 후 그녀는 저에게 그렇게 거칠었다고 합디다. 다 경험부족 탓이죠.
2002년 쯤 그곳을 지나다 들러봤죠. 그 민박집을. 관광지 정비로 집이 싹없어졌지만 많은 보상을 받은 주인장 밑의 상가지역에서 큰 식당을 하더군요. 그 때의 기억을 저 혼자만이 하는 줄 알았더니 그 분도 그 때의 일을 잘도 기억하시더군요. 결국 저의 갑사 가는 길은 그렇게 험했답니다. 해탈의 길은 고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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