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언론의 말폭탄
지역 언론사의 포퓰리즘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지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지적에 하루속히 언론사 종사자들이 깨달아야 한다. 시정잡배들이나 즐겨 쓸 수 있는 삼류 유행어를 언론사가 생산하고 보급하는 꼴이라면 어찌 언론사의 본분을 망각했다고 할 수 있으며 차라리 언어 순화는 사치로 보인다.
지역에서 건전한 여론형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이유나 경우에도 혼란을 부추기는 선동적 용어나 영원히 원수나 되는 단어의 선택은 언론사의 금물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민과 자라나는 세대라는 사실에 깊이 유념해야 한다. 개인감정을 기사로 표출 말아야 한다.
지난 선거를 전후해 지역 언론들의 단어 선택이 지나치게 격했다. 자신의 성향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함인지 글의 효과를 노리는지는 몰라도 언론으로서의 지나친 용어 선택은 지역 사회를 분열시키고 언어 순화와 아름다운 사회 분위기 조성에 걸림돌이다. 상대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언론이 상궤를 벗어난 사실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얼핏 필자는 SNS상의 격한 말들이 옮겨 온 듯 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특정 정치세력의 반대자로 보이는 사람을 향한 “실제 특정후보가 군민들에게 비판받고 지탄받아야 할 자질이라면 군민들이 표를 통해 심판하고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할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고장난 라디오'를 틀어놓은 듯 상대의 과오만을 되풀이해 공세를 펼치는 것은 군민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선거문화는 아닐 것이다.” (남해미래신문 3월 30일자 2면. 데스크칼럼)라며 고장난 라디오로 비판하거나 다른 신문의 “ 만약 박영일 전 군수가 정치적 목적을 품고 자당 소속 의원들을 지휘할 수 있는 사무국장직을 희망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상상해보는 것조차 소름 돋는다.”
(남해신문 7월 13일 2면 발행인 칼럼)고 하여 특정 개인에게 “소름 돋는다”란 단어구사가 신문사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정치적인 색깔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단어로 보인다.
우선 “소름 돋는다”는 말은 남해신문의 박전군수의 한국당 지역 사무소의 사무국장 직을 지망한다는 내용의 사설 말미에 나온 말이다. 그 글을 누가 작성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아무리 철천지원수라도 산사람을 향해 “소름 돋는다”라 표현하는 것은 모욕에 가깝다. 만약이라는 전제를 했다고 면피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신문사가 개인과 무슨 원한 질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까지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전직 공직자이지만 일개인으로 돌아간 지금 이런 식의 비난은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할 개인감정의 표출로 보인다. 비록 고소 사태가 벌어졌지만 취하가 되었고 이미 공직을 물러난 개인에게 사감이 없다면 남해를 대표한다는 신문의 대표격 글인 발행인 칼럼으로 개인감정을 들어내는 일은 신문사도 부담이 가는 일이다. 무엇이 개인에게 이런 표현을 퍼붓게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독자일 수도 있는 개인을 신문사가 영원히 적으로 삼을 요량인지도 알 수 없다.
그 글의 작성자로 보이는 분은 개인 SNS에서 특정 정치인에게 지나친 편향성을 보이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신문사를 대표하는 편집국장이라면 신문사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러니 편향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해도 반박할 논리가 부족해 보인다.
“고장난 라디오”는 일개인을 비판한 게 아니라 문맥상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거나 (특정 정치인에게) 쓴 소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이는 위의 예와 같이 자기들과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면 비판을 받아야 하는 세력이고 그것도 고장이 난 기계인지는 모르겠다. 달리 표현 가능한 말을 굳이 언론사가 고장난 음향기계에 비유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어쩜 다수 독자에 대한 모욕이다.
필자는 이전부터 언론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왔다. 그런 결과 당사자로부터 SNS상 모욕적인 말이 오른 적이 있다. 언론사로부터 집단으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나친 편향성을 내포하는 단어의 구사야 말로 자신들의 정치성향을 단편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바꾸는 것이 옳다. 더구나 지역의 어느 언론 할 것 없이 정치적인 편향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단정적인 언어 사용은 언론인 자신들의 족쇄로 작용될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언론인 자신들이 순화된 단어나 함의가 많은 단어를 선택하여 우선 독자들의 비판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글을 쓰면서 이 정도의 용의도 없이 쫓기듯 글을 쓰고 공정성을 망각할 정도라면 신문사의 경제적 사정만큼이나 문제이다. 지나친 단어의 선택으로 언론의 편파성을 자인하거나 스스로 의심받을 필요가 없다.
서로 상반되는 견해나 주장을 치우침이 없이 균형 있게 제시하여 독자들의 올바른 판단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여기서 견해나 주장이 정당성과 부당성, 아름다운 것과 추한 문제와 같이 명백히 어떤 가치를 포함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는 경우를 언론사가 위와 같이 문제성 있는 단어구사로 인한 논란이 된 문제가 가치판단을 포함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엄밀하게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체로 그렇게 나누고 이 경우 전자일 수 있다.
2018.7.22. 13;07 남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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