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목에서 자리 잡았던 요강이 흙담밑에 웅크린 옛집
너덜너덜 구멍 난 채 덜컹거리는 방문에
대문간 빼꼼이 내다보던 작은 유리 조각은 아직 붙어 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흙이 떨어진 그 방 벽지는 장지문 빛입니다
어린애 손자국 묻은 턱이며 문고리는 차갑지만 그대로입니다
메주 걸던 시렁에 뭔지 모를 빛바랜 붉은 양파 망 하나 걸려 있군요
봄볕이 봉창 넘어 손짓하면 할매 속고쟁이 벗어 이 잡던
아랫목에 감 삭히는 동이가 놓여있었고
팬티 쪼가리로 방바닥 닦던 제법 온기가 있던 방입니다.
청솔가지 지고 큰 풍로 실은 구들장 청소 아저씨 다녀간 후
대소쿠리 잔뜩 이고 온 방물장수 범안골댁 아지매나
곰 같은 누나가 그 따스함을 잊은지 모르지만
아직 봄볕은 들어오고 벽에 색 바랜 국회의원 달력 하나 덜렁 붙어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신조 일당의 기사가 실린 동아일보도 붙어있군요
어느 햇빛 좋은 날, 보리쌀 두 말 이고 시오리길 시장 간 어머니
타박타박 돌아오던 발자국 소리가 아직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