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성애 도의원-남해시대 기사

책향1 2014. 7. 10. 08:43

저는 남해출신 도의원입니다!
화제의 인물 -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도의회 입성한 이성애 도의원
[409호] 2014년 07월 08일 (화) 11:16:46 김광석·김창근 기자 nhsd@hanmail.net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곧이곧대로형 성격
용성큰스님 독립운동자취 함양 `화가원` 복원해낼 것  


   
 
   '굴기'라는 말이 있다. 벌떡 일어서는 것을 말한다.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는 한껏 몸을 낮추고 있다가 바야흐로 때가 왔음을 알고는 우뚝 일어서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을 배정받아 경남도의회에 입성한 이성애 향우의 이야기는 `굴기`라는 바로 그 말을 연상케 한다.  

 창원의 어느 향우 독자가 본사에 전화를 했다. "남해사람 이성애 향우가 도의원이 됐는데 왜 이 소식은 신문에 안 나오느냐"고.

 본지는 지난달 26일 오후 새누리당 경남도당을 찾아가 이번 주 화제의 인물 주인공인 이성애 의원을 만났다. 등원일이 며칠 안 남았는데도 그녀는 도당사무실에 나와 이것저것 일을 챙기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그의 책상은 여전히 쌓인 일거리들이 가득했다. 6월 30일 오후 6시까지는 여성팀장으로서의 직무를 빈틈없이 수행할 것이라는 그의 말, 그 말을 하는 그의 품세에는 무언가 남다름을 느껴지게 하는 포스가 실려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여기서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일 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도당 사무실에는 아직 6·4지방선거를 치러냈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각 시군 단체장선거 결과를 나타낸 현황판에는 당선자들의 웃는 얼굴에 아직 꽃이 달려 있었다. 공천자를 내지 않았던 하동군 칸에는 후보자 사진이 없었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 당선된 김해시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사천시, 의령군 칸 말고는….
 
이성애 도의원은
 
 성주 이 씨인 이성애 도의원의 친정은 서면 장항마을이다. 남해군청에서 사무관으로 정년퇴임한 이복세(77) 씨가 그녀의 부친이다. 그녀는 2남 3녀 중 장녀로 1960년생이다. 남해여중, 남해여고(12회)를 나왔다. 대학은 늦깎이로 주경야독을 했다. 창신대와 한국국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경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졸업 후 경영학 박과과정의 마지막 코스를 밟고 있다.

   
 
 인터뷰 전날 열린 재창원남해군향우회(회장 제석평) 월례회에서 그녀는 창원시의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된 이민희 의원과 함께 축하의 꽃다발을 받았다. 그동안 그녀가 향우회 활동도 열심히 해왔다는 말이다. 그녀의 도의회 입성은 향우회를 더욱 결속시키는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비례대표 1번은
 
 이성애 도의원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정치신인이었던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91년 민주자유당 남해하동지구당 위원장인 박희태 의원사무실이 여성부장을 공모했다. 그녀는 5대 1의 경쟁을 뚫고 여성부장으로 선정 되었다.

 그녀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95년 6·27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른 기억은 그녀에게 아직 생생하다. 그녀는 당 후보가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고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던 지도부에 대한 실망감을 사직서로 대신했다. 5년간의 여성부장 생활을 그렇게 미련 없이 접었다.

 2000년 한전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창원으로 이사를 했다. 2001년 한나라당 중앙당이 경남도당 여성팀장을 공채했다. 이번에도 그 자리는 그녀의 것이 됐다. 하지만 2002년 갑자기 대기발령이 내려졌다. 곧이곧대로 업무 처리를 하는 그녀가 버겁다고 느낀 여성위원장의 모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에야 알았다. 사정을 잘 아는 중앙당 사무총장이 중앙당의 더 높은 직급으로 발령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정당치 않은 것에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8년이 흘렀다. 2010년 다시 그녀에게 기회가 다가왔다. 여성팀장 공채에 또 붙었다. 4년 후 지방선거…, 비례대표 1번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비례대표 1번 배정은 곧 당선증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결과는 그녀였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천관리위원들이나 도내 국회의원 등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통과했다.
 
문화복지위원회 원해
 
 이성애 도의원은 도의회 상임위원회 중 문화복지위원회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오래전부터 세워 온 원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함양 백운산 자락에 화가원이라는 선원 터가 있다. 6·25 때 소실된 채 방치되고 있는 이 선원은 독립선언 33인 민족대표 중의 한 분인 용성 큰스님(1884~1940)의 역사를 품고 있다. 용성 큰스님은 한국불교의 청정수행 기풍을 세운 인물이자 독립운동을 이끈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유서 깊은 화가원을 국가문화재로 지정·복원시켜내는 것이 그녀의 원이다. 호불호와 맺고 끊음이 분명한 그녀의 성격처럼 한 번 원을 세우면 끝까지 성사시켜나가는 것이 그녀의 삶의 자세다. 화가원이 독립운동의 성지로 거듭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그녀에게 남편은 "무리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살살 하라"고 하면서 묵묵한 지지를 보내준다고 한다.
 
저는 남해도의원입니다
 
 이성애 도의원은 남해가 자기를 키웠다고 표현했다. 남해사람이라고 말하려면 자신에게 남해인의 정신을 얼마나 뿌리 깊게 간직하고 있느냐는 자문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옳은 일에 한번 마음을 내면 끝까지 이루어내고자 하는 그 심지야말로 남해인 정신의 요체라고 말한다. 자신 또한 남해인의 자긍심을 한 번도 잊은 적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이 있다고 설명한다.  

 "남해 도의원은 2명입니다. 저도 남해사람이니까요" 남해군에 관련된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말이다. 그녀의 표현대로 하자면 남해도의원 이성애다. 민의의 전당 도의회에서 뛸 남해도의원! 이성애 의원의 활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