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만필』로 본 김만중의 여성상
『서포만필』에 많은 여성이 등장하지 않아 전체적인 서포의 여성상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일부 등장하는 여성을 통해 그의 여성관이나 이상적인 여성상은 엿볼 수 있다. 서포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대별해 보면 맹후(孟后)와 청루여인(靑樓女人)이다.
『서포만필』 하권에 나오는 두 여인에 관한 기록으로 서포의 서사적인 기록과 평론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선 맹후는 중국 남송 철종의 왕비다. 열전에 의하면 궁중 암투에 의해 두 번이나 폐위를 당하기도 했다. 풍전등화와 같은 왕실을 재건한 대장부다운 여인이지만 모함에는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사실 전례가 없을 만큼 성대한 의례를 거쳐 책봉되었지만 폐출되고 거소가 불타는 치욕을 겪었다. 이런 사실이 도리어 화를 면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이은 화재로 그는 사저로 돌아갔고 때문에 침입한 금(金)나라 사람들에게 포로가 되는 것을 피했다.
금나라 사람들의 분탕질로 유일하게 살아남아 왕실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 송나라 사람을 결집하고 추앙받는 권위자가 되었다. 권위 회복을 한 그녀는 조카인 강왕을 불러 왕실을 잇게 했다. 수렴청정으로 황제노릇을 한 장방창의 부당한 참위(僭位)를 막아냈다. 현명한 판단으로 참언을 물리치고 국사를 개정하며 국기를 바로잡았다. 이는 맹후의 개인적인 고난을 이겨내고 여성의 몸으로 국가 재건을 한 강인한 품성의 여성이었다.
당시는 음행오행과 팔자론, 풍수지리가 성행을 하였으므로 특히 여성과 관련 불행과 박복은 운명으로 믿기 쉬웠다. "박복한 운명으로 태어난 여인"의 처신은 사회적인 한계는 중국이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회적인 관면에서 "박복한 운명 안에서도 그 속으로 작용하고 이루리라 하는 하늘의 뜻이 있으므로 화와 복은 쉽게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불행을 이긴 여성은 그 당시나 현재나 인정을 받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많이 알려진 맹후의 사적을 거론하고 있다. 맹후의 사적 중 구체적으로 어려운 일을 명철하게 해쳐나간 맹후의 현명한 대처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맹후가 폐위되었지만 상대인 유 씨가 주살 당하고, 그 후 도리어 맹후가 만인의 추앙을 받는 지도자로 변신한 것이 얼마나 대단 일인가 라며 반문하고 있다.
서포는 맹후가 운명적으로 불행과 박복하였음에도 이를 이기고, 정쟁의 소용돌이를 해치고 무너진 국가와 사회 기강을 바로 잡은 여인들에게 감복하고 있다. 맹후를 통해 어머니를 보았을 지 모른다.
전란의 와중에 혼자되어 가계를 훌륭하게 이끌었고 자식들 교육에 이바지 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유배객 처지인 자신에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자위이고 인내의 한 방편이었다. 불운한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적인 맹후를 예로 들어 희망을 주고자 했던 의도이다. 그래서 "미쁘도다"란 말로 어머니를 보기도 했다.
「홍순언일화」에 나오는 청루여인은 서포의 눈길을 확실히 잡고 있다. 이이야기는 야담으로 널리 분포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내용이다. 많은 변종 이야기가 생겨날 정도 였다. 개국이래 외교 현안으로 문제가 되었던 종계무오(宗系誣誤)가 명 태조의 신통력 때문이 아니라 공녀인 궁녀의 잘못된 전언이 그 원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 즉 인과풀이에 여인의 등장으로 서포는 무한한 여성의 잠재력을 경외하기에 이르렀다. 역관 홍순언이 사행길에서 만난 청루의 한 여인을 구하고 은혜를 베풀고 구해주었고, 후에 고관의 부인이 된 그녀가 외교 현안을 결정적으로 해결했다.
여기서도 공녀는 최악의 나락에 빠진 여인이지만 그 현실에 만족치 않고 무한한 인내심으로 큰 일을 한 사실은 맹후와 같고, 어머니와도 역경을 이긴 점은 같다. 여주인공이 청루에 들게 되는 상황과 자포자기 않고 확고한 인생 설계와 실현을 위해서 입지를 다지는 모습은 속으로 인내하지만 훌륭한 교육을 이룬 어머니와 동질시하고 있다. 도망친 듯 떠난 홍순언에 대한 내심 발원 등으로 영웅적인 여성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권위주의와 계급적인 편견, 유교적인 성차별을 뛰어넘는 여성의 초월적인 힘에 그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폐위와 명후, 명 황제와 고려 궁녀, 사대부인 홍순언과 청루에 떨어진 여성을 대비하여 서포는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 속에서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 하였지만 유배객인 자신에 대비하여 모성의 위대한 힘을 감성적으로 크게 느끼고 고독함과 불안함 모두를 인내한 방편이었다. 그 시절 서포가 고난을 이긴 여성을 통해 어머니의 위대함을 실감한 시기였다.
2010.09.17 21:25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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