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이야기
한국계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는 첫 한국방문에서 어머니와 함께 짬뽕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는 음식을 말했다. 대학교 강의 중 연로하신 교수가 학생들에게 중국요리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니 대뜸 학생들은 자장면, 짬뽕을 말했다. 그만큼 짬뽕은 자장면과 함께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중국음식이다. 하지만 정통 중국요리에는 포함이 안 되고 지방음식 정도라 할 수 있다고 그 교수가 지적했다.
짬뽕이냐, 아니면 자장면이냐. 중국집에 가면 어쩌면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한다. 국물이 있고 얼큰한 짬뽕과 국물이 없고 담백한 자장면은 이름만큼이나 대조적이다. 짬뽕은 차가운 바람이 칼날처럼 옷깃을 파고드는 겨울 주당들의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간단한 소주 안주로 뜨끈하고 칼칼한 짬뽕 국물이 특히 간절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황신혜밴드는 자신들의 히트곡 ‘짬뽕’에서 “바람 불어 외로운 날 우리 함께 짬뽕을 먹자”고 노래하며 기염을 토했다.
‘웃기는 짬뽕(짜장)’ 같은 역설적인 유머까지 등장했지만 이와 같이 한국에서 대표적 중국음식으로 사랑받는 짬뽕이 정작 중국에는 없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중국어 전문가들은 짬뽕을 중국어로 꼭 표기하자면 ‘차우마미엔’(炒碼麵)‘이라고 쓸 수 있다지만, 실제 중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음식이라고 한다. 흔히 자장면은 일본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짬뽕이 해물요리가 많은 상하이 지방 출신이 많은 일본에서 개발된 것은 당연하다.
짬뽕은 1899년 일본 규슈 항구도시 나가사키(長崎)에 있는 중국음식점 ‘시카이로’(四海樓) 주인 진헤이쥰(陳平順)이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항구도시 인 탓으로 19세기말 나가사키에는 화교를 비롯해 많은 외국인들이 살았다. 특히 배불리 먹지 못하는 가난한 중국 유학생들도 많았다. 배를 곯는 유학생을 안타까워한 진헤이쥰은 값싸면서도 배부른 음식으로 해물, 채소 등 다른 요리를 만들고 남은 재료들을 웍(중국식 냄비)에 쓸어 넣고 볶았다. 그리고 쓸모없는 닭뼈와 돼지 잡뼈 등을 우린 국물을 더하고 국수를 말았다. 이것이 짬뽕의 탄생이다. 지금도 증손자가 그 자리에서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은 ‘나가사키 짬뽕’의 탄생지라는 이름 덕분에 관광객이 많이 찾으며 2층에 짬뽕박물관도 있다. 처음 개발된 짬뽕은 닭뼈 국물로 뽀얗고 하얗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맵지 않고 시원한 편이었다. 사실상 새빨갛고 매운 짬뽕은 한국에서 처음 탄생했다.
짬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나카사키 항에서 부두 노역을 하던 푸젠성 출신 중국인들은 아침 인사를 ‘샤뽕(식사하셨습니까)’이라고 했는데, 이를 일본인들이 짬뽕으로 바꿔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샤뽕’은 ‘밥을 먹다’는 의미의 ‘츠판’(吃飯)의 사투리이다. 이 츠판이 일본에서 ‘찬폰’(ちゃんぽん)으로 변했다.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짬뽕’으로 굳었다.
오키나와에는 ‘찬푸르’라는 전통 음식이 있는데 이를 현지인들은 ‘짬뽕’이라고 한다. ‘찬푸르’도 ‘츠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짬뽕의 탄생과정으로 인해 짬뽕은 한중일 3국의 공통어이며 현재의 한국 짬뽕은 한중일 3개국 문화의 결정체라 할만하다. 짬뽕은 일본어에서도 우리말에서처럼 쓰임새가 비슷하다. 흔히 비속어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뒤섞는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엄연한 표준어다.
한국 짬뽕의 뿌리는 인천 북성동 일대의 차이나타운에 있다. 산둥성에는 차오마찬이란 음식은 야채를 볶아 국물을 넣고 맑게 끓인 국수이고, 일제강점기 제물포의 중국인들은 리어카에 화로를 싣고 즉석에서 만든 음식을 즐겨 먹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장면이고 차오마찬이다.
이 차오마찬이 화교들의 교류와 일본의 영향으로 짬뽕으로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아 우동이 개발됐다는 설이 있다. 우동은 고추가루를 넣지 않고, 볶지 않은 야채로 끓여 낸 한국식 차오마찬인 셈이다.
매운 짬뽕은 한국이 원조이고 김치의 진화 과정처럼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 국물이 짬뽕의 상징이다. 오늘도 소주 한잔과 짬뽕국물이 주는 이미지는 서민 생활의 한 단면이라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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