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田 번개 走馬看山記
아침 여덟시, 전날 과음한 막수님을 두고 버스로 갈까하며 전활 받지 않는 사이 용케 전화가 오네. 집에서 출발한다고. 이 막수님은 평생을 사진 촬영해오며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그 장비가 너무 부럽더라. 한 대에 육백만원도 넘는 촬영 장비는 누가 봐도 프로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지. '막수'가 칼 마르크스의 한국식 발음이라고 끝까지 우긴다. 하하, 한국식 발음이 아니라 차라리 경상도식 한국어가 아닐까?
서울 지리도 모르고 전날 많이 마신 술 때문이라는 막수님의 핑계아닌 핑계로 운전대는 서툴기 짝이 없는 이 책향의 당연책임. 고속도로 오랜만에 남해를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차안에서 희희낙락. 지루하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고 좋더구만. 그런데 아뿔싸 천안 가까이에서 시속 160km로 기념 촬영 당했네. 들뜬 해방감에 대한 경종이었지. 서울 진입하여 자주 다니던 남산터널과 명동, 남대문, 서울역을 통과하여 삼각지를 ‘돌아가며’ 용산으로 오니 연노란 색의 고층건물 세 동이 눈에 띄어 들어가니 일단 상경 작전은 성공했다.
9세의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고 중학교를 수석 입학하여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소년이 결국 국군 군수사령관까지 올랐다. 그분이 반갑게 맞이한다. 다른 분도 그러하지만 군 출신은 뭔가 이미지가 다르다. 기품 있는 자세며 확실한 말투는 좀 배워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막막하던 남해 시골 어린 소년이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일념으로 돈이 들지않는 군대를 선택하며 장성까지의 힘든 고비를 이긴 의지력이 경탄할 만하다.
막수님 컴퓨터 사신다고 용산 전자 상가로 향하고 필자는 또 다른 분과의 약속으로 사당역으로 출발. 대형카메라 두 개를 맨 어께가 저려온다. 고가 장비를 잃을까봐 걱정하면서 사당역 11번 출구로 나가니 그립던 모습에 무거운 어께가 가벼워진다. 혹 혼자만 보고 싶어하는지도 모르나 하는 염려가 막상 직접 대하니 눈 녹 듯 사라진다. 포근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따뜻한 나라 해외여행은 잘 다녀 오실라나. 저에게 정곡을 찌르는 충고로 마음을 설레게까지 하신다. 이제 내려가면 언제 볼지 모를 님은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다. 여행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도 못 드린 채, 채울 수 없는 바람구멍 뚫린 가슴으로 휑하니 돌아서서 서울역 인근의 예의 숙소 그 주인장을 찾으니 마치 멀리서 온 사위 맞이하듯 친절하다.
6시에 기상을 하니 물도 마시고 싶고 왜 그리 배가 고픈지 모를 일이다. 세면장에는 마침 단수가 되고 양치나 세면은 엄두도 못 낸다. 그냥 수염 기른 채, 눈꼽이 붙은 채로 지기님을 만나러 역사안의 그 뭘까 롯데리아 앞에서 대기를 하니 막수님 그 진한 막걸리 냄새를 피우며 바람을 몰고 유유히 산신령처럼 나타나신다. 그 산신령의 막걸리 냄새가 대한민국 육군 “빠따”보다도, 최루탄 냄새만큼이나 지독하다. 아니, 서울 올라오기 전에도 밤새 술을 마셨다는 그 체력이 경외롭기만 하다. 흰수염도 없는 산신령 본인 말씀이 건강한 체력이 국력이라나.
그 후, 뒤에서 들리는 말씀 “가냘프고 애조를 띤 목소리”에 돌아보니 반가운 지기님이 뛰어오셨다. 커피광인 필자에게 의외로 진한 향이 나는 커피 맛이 좋다. 역내에서 상업적으로 팔리는 커피가 이 정도면 훌륭하다. 뭐 지기님과 왕심니님이 계시기 때문일테지. 또 서울역앞 에스컬레이트 위에서는 오른 쪽으로 한 줄로 서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 한참 전까지 그런 일이 잘 없었는데, 공중 화장실 앞에서 줄 서기는 아직 선진국 수준은 아닐 테지 하며 다음을 기억한다.
도착 시간을 걱정하는 지기님과 왕심니님을 뒤로하고 신용산에 둔 차를 가지러 4호선을 타고 6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앞이다. 차를 주차장에서 몰고 나오니 주차비는 받지 않는다. 아, 그 장군님의 호방스런 말씀 한마디에 무사통과라, 하여튼 기분 좋은 일만 있다.
차를 어제 온 방향을 역으로 몰고 남산 1호 터널을 지나니 통과료를 받지 않는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머리속에서 잡아낸 이론은 올 때의 통과료 2,000원은 ‘도심진입료’이겠지 하며 그냥 통과 걱정에 대한 위안으로 삼는다. 그런데 고속도로 진입을 위해서 한남대교에 이르니 벌써 차들이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이거 약속 시간 맞추기는 도저히 어렵겠고 제발 3시전 도착만이라도 기대하며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리고 그래도 3시를 넘겼네. 택시로 가양동우체국앞에서 찾으니 약속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다 위를 쳐다보니 바로 옆이다.
언뜻, 익히 사진으로 뵈었던 파워풀님이 창문으로 보이시네. 제대로 찾아 왔구나. 미륵 대불님도 물론 사진상으로 익은 모습이지만 항상 정겹다. 필자와 ‘비스무리’ 한 스타일로 좌정을 하시고 언제 한 대포라도 해야 할건데 그놈의 운전 이란 놈이 싫다는 저를 자꾸 잡는다. 활달한 모습에 야성미까지 갖추시고 유명하신 “김여사”는 역시 객지에서도 고생을 하시더군. 어렵게 하산하신 큰 부처님이 한 노래 솜씨로 중년의 중후한 맛을 가미하시고 속세에서 분위기를 잡으셨다.
산새소리 중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가창력을 뽐내시는 분도 계셨네. 눈매가 무척 예쁘다. 행복한 모습으로 회원정보검색을 하게도 만드시구. 보니 관악구에 사시더군. 전에 본 시 중에 “우구이쓰”가 일본어로 꾀꼬리(?)인가 본데 일본 고시가에는 참 많이 등장하는. 이 꾀꼬리로 시대상황, 외로움이나 적적함을 묘사하거나 표현했는데 그래서 님은 시가의 정취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목소리의 소유자시고 시낭송을 하셔도 많은 감흥을 주실 것같다.
파워풀님은 사진 상으로는 항상 큰 얼굴로 나오셨기에 큰 얼굴인줄 알았지만 그게 전혀 아니시고, 균형 잡힌 몸매의 소유자로 그 다양한 장르의 노래는 다 어디 쓰실거유. 노래 솜씨와 율동은 꼭 맞는 찹쌀 궁합으로 분위기를 선도하시니 카페의 소중한 보배시고 고급인력이시다. 사진 찍을 때 그 '김치찌게'란 번뜩이는 유머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시는 능력도 겸비하셨다. 그 선문답같은 해학적인 익살 한마디에 제가 크게 웃고 있는 이유가 있다. 웃음속에 한밭의 어둠은 어김없이 밀려오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일상에서의 일탈로 모두에게 포근함과 정다움은 아쉬움을 남기고 춘삼월을 기약하고 헤어지시니 아직 미래가 있으므로 살만한 세상으로 꾸려지는가 보다. 안주가 없어도 술맛이 단 이유는 인간 냄새가 나기 때문이죠. 왕심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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